좋은 말씀/-매일 묵상

하나님 나라(5) / 정용섭목사

새벽지기1 2024. 5. 6. 06:04

하나님 나라(5)

 

오늘 그대에게 들려줄 판넨베르크의 글은 다른 때보다 조금 기오. 한 패러그래프를 몽땅 인용하는 탓에 그렇게 되었소. 인내심을 갖고 함께 들어보십시다.

 

하나님을 미래의 힘이라고 생각함으로써 ‘하나님’이라는 말은 새로운 구체성을 획득한다. 우리가 ‘미래의 힘’이라고 말할 때 훨씬 더 현실적인 과거나 현재와 비교해서 무미건조하고 막연한 미래라는 개념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미래는 공허한 세계가 아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실제로 미래를 어떻게 경험하는가를 연구해보면 분명하게 드러난다. 미래는 어느 정도 예견할 수 있고 계획할 수 있는 게 사실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사람들은 항상 삶을 위협하거나 성취를 약속하기도 하는 어둡고 불확실한 힘인 미래에 직면한다. 과학 철학에서 전개되어야 할 여러 가지 논거를 생각할 때 미래의 모호성에 대한 경험은 단지 현재의 무수한 특수 조건들에 대한 지식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는 게 분명하다. 오히려 이 미래의 모호성 경험은 자연의 사건들 내면에 있는 본질적인 불확실성이나 모호성을 가리킨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사건들의 우연성에 대하여 말한다. 이전에 하나의 가능성에 불과했던 어떤 것이 특정한 시점에서 이 우연성에 따라 결정된다. 이 우연성은 결코 계획적인 행위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의 원인들을 고려하고 그것들을 인간적으로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려는 모든 노력의 전제이다. 과거와 현재의 포로가 아니라 미래에 직면할 때 겸손은 용기의 좋은 반려자가 된다.(77)

 

위 글에서 두 단어를 기억하시는 게 좋겠소. 미래의 힘과 우연성이라오. 오늘은 미래의 힘에 대해서만 한 마디 하겠소. 그걸 설명하다보면 우연성은 저절로 따라올 거요. 사실은 내가 한 마디 할 것도 없겠구려. 이미 판넨베르크 선생이 다 설명했으니 말이오. 며칠 전에 이미 내가 그 미래성 개념을 전단했었소. 그러니 그의 말을 반복하지는 않겠소. 다만 이 기회에 우리가 그 개념을 실존적으로 느껴봅시다.

 

10년 전의 그대와 오늘의 그대를 비교해 보시오. 10년 전에 그대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소? 10년 전의 그대에게서 오늘의 그대 모습을 예견할 수 있겠소? 그렇다고 말할 수도 있고,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을 거요. 신문기자가 되는 꿈을 꾸던 사람이 실제로 신문기자가 되는 일은 일어나요. 원하는 사람과 결혼할 수도 있소. 그러나 그런 일이 늘 기계적으로 일어나는 거는 분명히 아니라오. 오히려 우리의 운명은 예상하지 못한 일에 휩싸일 때가 더 많소. 더 많은 정도가 아니라 늘 그렇소. 오늘 우리가 이렇게 인터넷으로 대화를 나누게 되리라는 것은 10년 전에는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일이오. 10년 동안 그대와 나 사이에 우연한 일이 반복되는 과정을 통해서 결국 이렇게 인터넷으로 만났소이다. 여기에 미래의 힘이 작용했소이다. 이렇게 미래에서 역사를 끌어가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라오. 미래로 개방된 역사가 바로 하나님의 계시이며, 통치이며, 하나님 자신이라도 말할 수 있소.(2010년 2월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