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인간 문명과 언어 혼란 / 정용섭목사

새벽지기1 2024. 5. 7. 05:52

인간 문명과 언어 혼란

 

여기 하양과 대구는 봄바람으로 가득했소. 오래 헤어졌던 사랑하던 사람으로부터 만나자는 약속을 받은 것 같은 기분이 이런 것일지 모르겠구려. 몸만이 아니라 영혼마저 생기가 도는 듯한 경험이라오. 이건 돈으로도 살 수 없소. 우리가 한 평생을 살면서 이런 경험을 자주 하는 건 아니라오. 아니지. 경험은 자주 할지 모르나 곧 망각하고 만다오.

 

오늘 그대에게 전할 말은 어제의 연속이오. 어제의 글이 1편이고, 오늘의 글이 2편이오. 똑같은 바벨탑 사건을 주제로 한 짧은 설교 요약문이라오. 바벨탑이라는 문명 앞에서 소통을 힘들어하는 우리의 모습이 어떤지 살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오. 내일 다시 만납시다.

 

창세기 기자가 전하는 바벨탑 사건은 비극적으로 막을 내렸다. 그들은 바벨탑을 끝까지 완성하지 못했다. 하늘까지 탑을 쌓아보려고 했지만 하나님은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그들이 지면에 흩어지지 않으려고 탑을 쌓기 시작했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오히려 흩으셨다. 가장 결정적인 사건은 그들의 언어가 혼란에 빠졌다는 것이다. 언어 혼란, 이것이 바로 당시 최고의 건축을 시도하던 바벨탑 사건의 결과였다. 창세기 기자의 이런 관점은 옳은가? 문명을 향한 인간의 욕망은 결국 언어를 파괴하는가? 그래서 삶 자체를 파괴하는가? 하나님의 심판은 결국 인간이 자초한다는 뜻인가? 

 

바벨탑의 언어 혼란 이후로 사람들은 서로 다른 말을 쓰기 시작했다. 한국 사람이 러시아 사람과 대화를 할 수 없다. 서로 대화하려면 외국어를 배워야 한다. 이게 얼마나 불편한 일인지. 언어 혼란은 단순히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는 차원만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끼리도 역시 언어의 혼란을 경험한다. 지금 한국의 대통령이 사용하는 언어를 우리는 이해하기 어렵다. 아마 대통령은 우리의 말을 알아듣기 힘들다고 호소할 것이다. <4대강 정비사업>을 그들을 4대강 살리기라고 말하지만 우리의 귀에는 4대강 죽이기로 들린다. 더 나아가서 운하를 뚫기 위한 속임수로 들린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예 대화가 되지 않는다. 서로의 언어가 소통이 아니라 막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소통 부재는 단지 말의 기술에서 오는 게 아니라 세계와 자연을 보는 눈의 차이에서 온다. 세계관의 차이가 언어의 차이까지 만든다는 말이다. 지구를 이용해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에만 마음을 두는 사람이 있다. 이들은 바벨탑을 건축하던 사람들처럼 이름을 내고 싶어서 자연을 최대한 이용한다. 그들은 그런 물질적인 풍요가 없으면 불안해하는 사람들이다.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경제 대국이 되는 것을 최대의 정치적 목표로 세운다. 아무리 원전이 위험해도 그게 돈이 된다면 얼마든지 만들어서 사용하고 팔기도 한다. 경제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수십만 년, 수백만 년에 걸쳐 자연이 만든 강과 바다까지 상품으로 만들려고 한다. 우리는 소비와 소유와 재화와 경제를 신으로 삼는 이들과 언어 소통을 하지 못하는 상태에 내몰려 있다. 이 비극적인 상황을 어찌 할 것인가?

 

류시화 시인이 편역한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는 인디언 추장들의 연설문 모음집이다. 인디언들이 살고 있는 땅을 사고 싶다는 백인들의 요구를 인디언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에게 땅은 돈으로 사고파는 물건이 결코 아니다. 그 대지에 살고 있는 모든 동물들이 바로 자신들의 형제이며, 자매였다. 사슴의 땀과 사람의 땀은 똑같다. 그 대지의 호수와 아지랑이는 모두 그들의 누이였다. 땅을 팔라는 말은 자신들을 팔라는 말과 똑같았다. 한참을 말을 타고 달리다가도 잠간 서서 자기 영혼이 따라오기를 기다렸다는 인디언들은 백인들의 흥정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인디언들이 땅을 팔지 않으면 백인들은 강제적으로 빼앗았다. 문명 세계에서 온 백인들은 때로는 합법적으로, 때로는 불법적으로 인디언들의 땅을 약탈했다.

 

지금 우리는 함안보 공사 현장에 나와 있다. 낙동강이 유린당하는 현장이다. 우리의 형제가 폭력을 당하는 현장이다. 우리의 누이가 성폭력을 당하는 바로 그 현장이다. 대통령의 치적을 남기기 위해, 그 잘난 토목 건설 경기를 일으키기 위해 우리의 형제와 자매들을 불구로 만들고 있다. 대다수의 민중들은 이 현장을 외면하고 있다. 오늘 문명의 가면을 쓴 야만을 어찌할 것인가?(2010년 2월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