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존재는 하나님의 통치와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종교 철학의 언어로 말한다면 신들의 존재는 그들의 힘이라는 것이다. 유일신을 믿는다는 것은 유일의 힘이 모든 것을 통치한다고 믿는 것을 의미한다. 사도신경의 제 1항을 해설하면서 루터는 천지를 창조할 수 있는 신만이 참된 신이라고 말했다. 자기를 모든 것의 주인으로서 드러내시는 신만이 참되시다. 이것은 유한한 존재자들을 떠나서는 하나님이 하나님일 수 없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은 확실히 다른 어느 누구 또는 어떤 것 없이도 지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과 같이 이해하는 게 옳다. 유한한 존재자들을 지배하는 힘을 가진다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본성이다. 하나님의 신성은 그의 통치이다.(75)
그대에게 오늘 말할 내용은 아주 초보적인 것이라서 재미없을지 모르겠소. 그래도 관심을 끄지 말아 주시오. 두 가지 점에서 그렇소. 초보적인 거라도 모를 수 있다는 게 하나요. 아니,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잘 모른다는 게 더 적절한 표현인 것 같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는 말이 바로 이런 뜻이기도 하오. 다른 하나는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라 하더라도 반복을 통해서 그 앎이 심화될 수 있다는 것이오. 뜸을 들인 걸 용서하시구려.
그대, 잊지 마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 ‘통치’요. 통치는 말 그대로 다스림이오. 다스림이 가능하려면 힘이 있어야 하오. 바람도 힘이오. 진화와 유전도 역시 힘이라오. 위에서 판넨베르크의 선생이 분명히 말하고 있지 않소. 하나님 존재는 하나님 통치와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고 말이오. 하나님은 고유한 힘으로 세상을 통치하는 분이라오. 창조가 바로 하나님의 행위이며, 힘이며, 통치이오.
이와 달리 하나님을 공간의 어떤 존재자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소이다. 마치 왕들처럼 무소불위의 힘을 행사하는 존재자로 생각하는 거요. 그런 생각은 하나님 나라가 통치라는 말과 어긋나는 거라오. 표면적으로는 최고의 높이로 올리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을 피조물로 격하시키는 것이오. 왜 그런지 아시오? 내 설명에 조금만 더 귀를 기울여주시구려.
사람들은 하나님을 이미 완료된 어떤 절대자로 생각할 때가 많다오. 헬라 신화에 나오는 제우스가 그런 신(神) 표상의 전형이오. 올림푸스 산이라는 공간에 자리하고 모든 신들을 제압하며 인간 역사에 직접적으로 간섭하는 이가 제우스요. 성서의 신 표상은 전혀 다르오. 그에게는 공간이 필요 없소이다. 그래서 성전도 필요 없소. 그의 형상을 만들어서도 안 되고 그에게 이름을 붙여서도 안 되오. 그는 사람의 그 어떤 인식 범주 안에 들어올 수 없는 분이시오. 그럴 수밖에 없소. 그분은 미래의 힘이기 때문이오. 미래로부터 지금의 세상과 역사를 통치하기 때문이오. 그가 지금 종말에서 우리에게 오고 있기 때문이오. 마치 죽음이 우리에게 화살처럼 날아오듯이. (2010년 2월20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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