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재의 수요일 / 정용섭목사

새벽지기1 2024. 5. 5. 06:59

그대, 오늘은 ‘재의 수요일’이라오. 성회(聖灰)수요일이라고도 부르오. 오늘부터 사순절이 시작되는 거요. 사순절(四旬節)은 부활절 전날부터 거꾸로 계산해서 주일을 뺀 40일 기간을 가리키오. 전통적으로 사순절에는 몇 가지 전통이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사순절의 시작인 재의 수요일과 연관된다오. 신자들이 교회에 가서 재를 이마에 바르는 거요.

 

그대여, 우리는 모두 재로 돌아가오. 오래 살든 짧게 살든 어느 누구도 가릴 것 없이 우리는 똑같이 먼지로 돌아가오. 여기에는 왕으로 살았든 거지로 살았던 아무런 차이가 없소이다. 성자로 산 사람과 악당으로 산 사람도 역시 마찬가지라오. 모두 불쌍한 운명이 아니겠소?

 

내 말을 너무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마시구려. 인생은 재의 저주를 받았으니 비탄에 빠져서 살아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오. 오히려 정 반대요. 우리가 재로 변한다는 사실이 바로 구원의 기쁜 소식이라는 말을 하려는 거요. 이게 억지처럼 들리시오? 잘 생각해보시구려. 만약에, 만약에 말이오. 우리가 죽은 뒤에도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의 차이가 그대로 유지된다면 얼마나 불공평한 일이 되겠소? 우리 모두 재로 변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공평하다는 의미요. 그 공평한 심판이 바로 구원이 아니겠소?

 

위 말을 오해할까 염려되는구려. 모두 재로 변하니 이 세상에서 그냥 되는대로 살아도 좋다는 말이 아니라오. 오히려 정 반대요. 재가 된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아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알게 될 것이오. 평화와 정의가 삶의 화두로 자리를 잡을 것이고, 본질적인 것에 마음을 걸어둘 거요. 참된 안식의 근거가 무엇인지도 알게 될 거요.

 

죽어서 재가 되는 것 말고 우리에게 아무런 미래가 없다는 말로 들으면 곤란하오. 부활의 희망은 어디로 갔는가, 하고 이상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 같구려. 바로 이 대목에서 말이 막히는구려. 재가 된다는 엄연한 사실과 부활생명에 대한 희망 사이에서 어떤 접촉점을 찾아야만 이런 궁금증에 대답할 수 있소. 오늘 그것까지 말하기는 힘드오. 어떤 분명한 대답이 있는 게 아니라 부활생명에 대한 각자의 생각에 따라서 다른 대답이 주어지기 때문이라오. 이것만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소. 재와 부활은 모순이 아니라는 거요. 재가 될 준비를 해야만 부활생명을 조금이나마 맛볼 수 있을 거요. 그대와 나는 재요.(2010년 2월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