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그는 살아나셨다(13)(막16:6)

새벽지기1 2024. 4. 18. 06:27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막16:6)

 

부활에 관한 설명에서 어려운 점은 우리가 그것을 아직 직접적으로 경험해보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전대미문의 사건입니다. 부활의 주님이 여기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확인해볼 수 있겠지만, 그는 이미 하나님의 우편으로 옮기셨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단 한번 일어난 그 부활을 우리가 확인할 길은 없습니다.

 

단 한번으로 끝난 사건이며, 그래서 우리가 확인할 길이 없다면 결국 그것은 일어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 아니냐 하고 질문할 수 있습니다. 그런 질문은 불가지론의 입장입니다. 부활은 확인이 불가능한 것이고 알 수 없는 것이기에 그것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문제 제기를 우리 기독교인들은 불편하더라도 피하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어서 어쩔 수 없다고 비난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그들의 질문은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신앙을 건강하게 만드는 약이 될 수도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이 진리라고 한다면 그런 질문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더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즉 기독교 신앙의 극단적인 교조화와 관념화를 막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인류 역사에서 한번밖에 일어나지 않은 부활 사건을 실증적인 과학적 사고방식에 익숙해 있는 현대인들에게 어떻게 변증할 수 있을까요? 이건 단번에 끝나는 문제가 아닙니다. 종말에 이를 때까지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역사의 끝인 종말이 이르면 모든 생명이 확연하게 실증적으로 드러날 테니 더 이상의 논쟁은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역사 한 복판에서는 진리의 차원에서 논쟁해야만 합니다. 예수의 부활이 왜 모든 인간의 미래를 결정하는 사건인지를 보편적 진리의 틀 안에서 해명해야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