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그가 살아나셨다(10)(막16:6)

새벽지기1 2024. 4. 16. 05:26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막16:6)

 

천사가 계속 말을 이어갑니다. “그가 살아나셨”다는 겁니다. 이 말을 들은 여자들은 이게 무슨 뜻인지 전혀 몰랐을 겁니다. 뒤에 나오는 8절에 따르면 여자들은 무서워서 무덤에서 도망하고 아무에게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당시에 누가 이 말을 알아들었겠습니까?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건 아예 불가능한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

 

헬라어 원어로 보면 “살아나셨”다는 단어는 수동의 의미입니다. 예수님이 어떤 마술과 같은 능력으로 다시 살아난 것이라기보다는 하나님에 의해서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는 뜻입니다. 이 부활 사건에서 주도적으로 활동한 이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에게만 이 부활 사건이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그분만이 창조주이기 때문입니다. 부활은 곧 창조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행위는 기존의 것을 변형하는 능력이 아닙니다. 그런 능력은 천재적인 물리학자나 생물학자들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그런 것과 전혀 차원이 다릅니다. ‘무로부터의 창조’(creatio ex nihilo)입니다. 이게 무슨 뜻인지를 알아야 창조와 부활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무(無)로부터의 창조는 무와 유의 차이를 전제합니다. 무와 유는 질적으로 다른 세계입니다. 장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루살이와 코끼리는 무게가 같다고 말입니다. 그 둘은 존재론적 차원에서 동일하다는 뜻입니다. 하루살이도 존재하는 것이고, 코끼리도 그렇게 존재하는 것입니다. 진화의 차원에서 보더라도 단세포 생명이 시작했다는 사실이 지능을 가진 동물로 진화하는데 결정적입니다. 없는 데서 무엇을 있게 한 하나님의 능력만을 창조적인 것입니다. 그에게만 부활 능력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