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그가 살아나셨다(8)(막16:5)

새벽지기1 2024. 4. 14. 06:22

 

'무덤에 들어가서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라매'(막16:5)

 

어제 묵상에서 천사는 바로 고대인들의 하나님 경험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경험은 확실한 겁니다. 확실하지만 직접적일 수 없는 하나님 경험을 고대인들은 천사를 매개로 설명했습니다.

 

위의 설명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말이 안 되는 거라고요. 생각해 보십시오. 태초에서 종말에 이르는 전체 역사를 통해서만 그 실체를 드러내는 분을 우리가 어떻게 지금 여기서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는 말인가요? 다만 그분은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그걸 우리는 계시라고 말합니다. 그 계시가 곧 하나님입니다. 신학적으로 그것을 하나님의 ‘자기 계시’라고 합니다. 계시는 하나님 자신의 드러남이지 다른 어떤 것을 내세우는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경험에서는 우리가 세상에서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일단 접어놓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비견할만한 것이 이 세상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게는 존재유비(analogia entis)가 불가능하다는 칼 바르트의 말은 옳습니다. 본문에 천사는 바로 그런 사태를 문학적 수사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천상적 존재를 통해서 하나님의 임재를 전하고 있습니다. 

 

이런 경험은 사람을 큰 충격으로 몰아갑니다. 위 구절에서 여성 제자들도 천사를 보고 놀랐습니다.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의 모든 생각과 경험을 넘어서는 어떤 존재, 또는 어떤 힘에 사로잡혔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게 천사를 경험할까요? 이는 곧 어떻게 하나님을 경험하는가라는 질문과 똑같습니다. 각자 다르겠지만, 그 결과에서 나타나는 공통되는 현상은 생명의 깊이로 인한 놀라움입니다. 그렇습니다.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 경험은 놀라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