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그가 살아나셨다(5)(막16:2)

새벽지기1 2024. 4. 13. 06:38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막16:2)

 

솔직하게 우리 자신에게 질문해 보십시다. 우리가 무덤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이 어느 정도로 실감이 날까요? 우리가 살아가는 겉모습만 본다면 죽음과는 전혀 무관해보입니다. 이 세상에서 천년만년 살기나 할 것처럼 삽니다. 웬만큼 사는 사람들의 집에는 필요 없는 물건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습니다. 옷, 신발, 가방, 가구, 책, 음향기기 등, 우리가 죽을 때까지 아무리 써도 다 쓰지 못할 정도로 많습니다.

 

우리가 일주일 뒤에 죽는다고 가정해 봅시다. 최신형 디지털 티브이를 새로 장만할 사람은 없겠지요. 1백만 원짜리 메이커 가방이나 양복을 살 사람도 없겠지요. 지금 갖고 있는 모든 것이 쓰레기처럼 보일 겁니다. 집도 필요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몸뚱이에 얹혀살아야 할 우리가 모든 소유를 당장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소유욕은 생존 본능이기도 하기에 무조건 매도할 수도 없습니다. 문제는 소유가 우리의 삶을 파괴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말이 설교 조로 들린다면 용서하십시오. 저는 여러분에게 종교적 교훈을 드리기 위해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닙니다. 삶에 나타나는, 또는 숨겨진 적나라한 모습을 솔직하게 들여다보자는 것뿐입니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의 소유가 우리 삶을 파괴하지 않을까요? 아무도 그 기준을 말해 줄 수는 없습니다. 다른 방식으로 질문해봅시다. 우리가 몇 살 때까지만 물건을 사들이고, 그 뒤로는 먹고 숨 쉬며 생존하는 것에만 마음을 둘 수 있을까요? 그것도 제 삼자가 기준을 말해 줄 수는 없습니다.

 

중세기 한 시절 유럽에서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즉 죽음을 기억하라는 말이 중요하게 회자될 때가 있었다고 합니다. 인간만이 죽음을 예상하고 기억할 줄 압니다. 예수의 ‘무덤으로’ 가던 여성 제자들도 바로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