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낮은 곳에서 부르는 생명의 노래'

우리의 현실보다 더 엄연한 현실 중의 현실

새벽지기1 2020. 2. 12. 06:51


우리의 현실보다
더 엄연한 현실 중의 현실


이 세상사람 누구도 현실을 도외시하고 살아갈 수는 없다.

현실 앞에는 급박하고 중요한 많은 일들이 있기에

그 이상의 더 중요하고 더 절적인 것들을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부정적 현실주의자들이나 심지어 그리스도인들조차

오늘의 현실이 성경말씀대로 살 수 없는 실정임을 계속 털어놓는다.

현실 속에서 고민하는 문제들과 당위성들에 대한 성경적 대안을 내놓아

그럴 때마다 언제나 현실을 볼모로 삼으며 실제적으로 고통당하고 있는

현실적 상황들을 열거하며 몸의 언어로 생명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기독교는 초월만을 말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땅을 외면하고 하늘의 이상에만 매달려 있는 비현실주의자가 아니시다.

인간이 처한 현실의 고통과 뒤틀림을 외면하고 딴청만 부리는 분이 아니시다.

예수님이야말로 가장 철저한 현실주의자로 사셨고 또한 가장 높은 하늘의 영광을 추구하며 사셨다.


그 증거는 이것이다.

예수님은 이 땅에 서식하는 인생의 모든 허무와 고난, 상처를 치유하시는 회복자로 오셨다.

모든 피조물의 탄식과 고통으로부터 인류의 궁극적인 구원의 문제를 위해 이 땅에 오셨다.

그것의 실천은 죄로 인한 이 땅의 저주와 심판과 죽음의 문제를 해결한 십자가의 사건이었다.
죄로 인해 초래된 죽음의 문제처럼 사실적이며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당면 과제가 또 어디 있겠는가?

예수님은 바로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이 땅에 오셨고,

일생을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을 보여주고자 하셨다.

그것의 자리는 죽음의 자리고, 또한 부활을 통하여 그 현실적인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

그런데 어리석은 인간들은 ‘현실의 문제’를 꼭 빵이나 돈의 문제로만 생각하고 있다.


빵이나 돈은 살아있는 존재로서만 현실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현실이란 말도 생명을 가지고 살아있을 때에만 존재하는 것이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겠는가?(막8:36).

그러니 현실을 말하려거든 거울 앞에서 자신의 목이 단단하게 붙어 있는가를 확인한 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은 한 순간에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늙어서 병들어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될까?

직장을 잃고 자신이나 가족을 돌볼 돈이 없으면 어떻게 될까?

가족, 건강, 돈과 명예가 해체되고 이 모든 현실조차 해체되는 그 순간이 다가오는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어떠한가?

보다 더 한 궁극적인 현실이 어디 있겠는가!

이 모든 조건들은 언제나 시시각각 현재 진행형이지 어찌 먼 미래에만 놓여있다고 생각하는가!


현실을 앞세워 말하려거든 내게 주어진 이 현실보다 더 절적인 현실 앞에 놓인 엄연한 현실을 기억하자.

하나님의 존재와 그분의 창조와 그분의 통치와 섭리가 작동하고 있다는 엄위한 현실과 사실 말이다.

내게 주어진 이 현실 자체도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안에서 주어진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의 삶의 방향성의 방법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만이

우리 인생의 가장 현실적이고 궁극적인 문제다.

예수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는 현실을 직시하자.

가장 절적인 현실은 가장 궁극적인 것에 잇대어 우리들의 현실 속에서 작동되고 있다.

결국 사느냐 죽느냐의 현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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