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이산지 김요단선교사

어떻게 재판할 것인가? (역대하 19장)

새벽지기1 2019. 11. 6. 16:32


6 재판관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재판하는 것이 사람을 위하여 할 것인지 여호와를 위하여 할 것인지를 잘 살피라 너희가 재판할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심이니라
7 그런즉 너희는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삼가 행하라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불의함도 없으시고 치우침도 없으시고 뇌물을 받는 일도 없으시니라 하니라
8 ○여호사밧이 또 예루살렘에서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과 이스라엘 족장들 중에서 사람을 세워 여호와께 속한 일과 예루살렘 주민의 모든 송사를 재판하게 하고
9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진실과 성심을 다하여 여호와를 경외하라


여호사밧은 유대땅을 두루 다니며 재판관들을 세우고 그들에게 어떻게 재판할 것인지 교훈을 준다.

이스라엘 된 내 안에도 하루에 수십번씩 수많은 재판이 일어난다.
선악과 따먹고 내가 선악을 구별하는 기준이 되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그 재판은 누군가 옳지 않은 사람이 죄인으로 등장하고 그에 대한 송사가 시작된다.
선교사가 그렇게 하는 것이 과연 맞는가? 아니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옳지 않다.

너무 천박하다. 너무 예의 없다. 너무 율법적이고 복음을 모른다. 기본이 안되어 있다.
그러면서 저사람은 그러한데 나는 아닌것처럼, 나는 그래도 저정도는 아니지, 저것보단 낫지라며 자기의를 충족시킨다.
이것이 얼마나 악한지를 알았고 그래서 그일을 관두고 싶은데 얼마나 신속하게 거침없이 진행이 되는지...

제어되지 않는 기계처럼 멈춰지지가 않는다.

솔직히 어떤 일들을 보면서 아무생각도 없을 수는 없다. 판단이 안된다면

그게 이상한걸수도 있겠다. 생각을 멈출 수는 없다.
악한건 악한것으로 선한것은 선한것으로 보고 느낄수밖에 없다.


오늘 본문을 보면서 이스라엘에 무슨 송사가 이리도 많아서 재판관이 필요한가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이세상이 끝나는 날까지 죄인의 사회인 이세상에는 송사가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나 역시도 죽는 날까지 내 안에 송사가 계속 될 수도 있겠다.

이런 나에게 오늘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재판할때에 하나님을 위하여 할 것인지 사람을 위하여 할 것이지 잘 살피라.
어떻게 하는것이 하나님을 위한 재판이 되고 어떤것이 사람을 위한 재판이 되겠는가?

잘모르겠어서 하나님께 지혜를 구했다.
그때 마음에 깨닫게 되는 것은 모든 송사에 하나님이 재판관 되게 하시는 것,
선과 악의 기준이 나로부터 하나님께로 옮겨지는 것이 하나님을 위한 재판이 되는 것임을 알게 하신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재판관되게 하시도록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그것은 기도라는걸 바로 알게된다.

그일에 주님이 주관자가 되시도록 주님께 그일을 의탁드리는 것이 내가 할일이었다.


말씀은 계속된다. 하나님께선 재판할때에 함께 하신다.
너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행하라.
내 안에 여러 관계안에서 그리고 내 스스로 안에서도 여러가지 송사가 찾아온다.
그 송사앞에서 다른 이를 정죄하거나 스스로 참소당하지 않는 방법은 그때에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얼마나 두렵고 떨리는 일인가
그 찬란한 하나님의 임재 앞에 있는 사람은 결코 누군가를 정죄할수 없다.

하나님은 사단이 참소하는 것을 정말 싫어하셨고 밤낮 참소하던 그를 쫓아내셨다.

그런데 그짓을 어찌 하나님 보좌앞에서 똑같이 할 수 있단 말인가?


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이 나를 위해 어떤 일을 완성하셨는지 기억하고 그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면

난 더이상 사단에게 참소를 당할 이유가 없다.

모든 송사를 주님께 의탁한다.
그 송사를 판결하는 일은 나에게 끊임없이 고통을 주었고 자유를 빼앗았었다.

무거운 짐이었다. 내가 구지 판결하지 않아도 된다.


나의 무거운 짐을 주님께 맡긴다.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면 그 모든 송사와 심판이 십자가에서 이루어졌음을 보게 된다.
실상 인류를 향한 모든 심판은 십자가에서 끝이났다.
그래서 십자가는 복음이다.
내 마음에 일어나는 모든 송사들 그 답도 십자가임을 기억하고 그 십자가로 결론을 삼는다.
나의, 형제의, 세상의 죄를 완전히 도말한 십자가가 최종 선고이었다.
그래서 모든 송사의 자리는 하나님을 위한 재판이 되고 하나님을 가장 영화롭게하는 십자가가 자랑되는 자리가 될 것이다.

오늘도 내안에 송사가 시작되면 즉시 십자가로 나아가자.
사단으로부터 시작된 이 송사의 자리가 오히려 하나님을 위한 복음을 영화롭게 하는 자리가 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