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스테반황

사탄의 꾐

새벽지기1 2019. 3. 14. 07:08


사탄의 꾐 (7월 7일) 

) -->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갈라디아서 3:1)

) --> 

각 개인의 도덕적인 죄악보다 더 무서운 죄는 거짓 복음에 빠지는 것이다.

지금 갈라디아 교회를 복음의 눈으로 보지 않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교회이다.

오히려 더 신들이 나있고 열심들을 내고 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뚜렷한 표시를 해 주는 할례를 행하고 금식 기도 및 여러 규례적인 율법 조항들을 지키려는 모습이다. 따라서 더 멋있고 힘 있고 조직적이고 건강하게 보이는 교회가 갈라디아 교회였다.

무슨 도둑질이 있는 것도 아니고 더러운 정치 싸움이 있는 것도 아니며 세상에서 손가락질을 받을 추문이 도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율법을 강조하는 가르침에 빠져들고 있었다.

) --> 

복음의 마음을 가진 바울은, 더 나아가 복음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은,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삼위일체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은 지금 이 갈라디아 교회를 보면서 가슴이 찢어지고 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사탄에게 꾐을 받아 사탄에서 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 꾐이 무엇인가? 바로 십자가를 떠나는 것이다.

) --> 

십자가는 복음을 상징한다. 하나님의 가장 깊은 지혜인 복음을 축약한 것이 ‘십자가’이다.

그런데 십자가를 떠난 교회는 사탄의 꾐에 넘어간 교회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갈라디아 교회는 십자가를 떠난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뭔가를 약간 추구한 다른 복음을 믿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당신들은 십자가를 떠났습니다.”라고 말한다면 어이가 없어 할 것이다.


그 이유는 그들은 적어도 예수님에 대하여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행여나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완성할 수 있다는 가르침도 이들 나름대로는 더 예수님을 확실하게 믿고자 그 저주스러운 “다른 복음”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동기가 적어도 정직하고 선하였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깊게 생각해 보자. 왜 갈라디아 교인들은 그렇게 빠르게 “다른 복음”을 받았을까? 필자 생각에는 ‘의’ 때문이다.

인간의 가장 깊은 본성 속에는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의’말고, 자신들이 세우고 싶은 의가 있다.

) --> 

그러나 성경은 십자가를 감소시키고 십자가를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그 어떠한 것도

결국은 사탄의 꾐이라고 증거하고 있다.

특별히 신앙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 --> 

성경은 십자가와 율법을 비교한다. 율법이라는 것은 선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율법이 십자가 없이 인간들과 연결될 때 독자성으로 등장한다.

즉, 하나님을 의지하려는 믿음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율법의 개념이 나타난다.

놀랍게도 이 개념은 아담과 하와에게 있었던 개념이다. 하나님 없이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처럼 되겠다는 것이다. 내 맘대로 하겠다는 것이다.

) --> 

십자가는 인간이란 존재를 아는 하나님께서 친히 인간을 위하여 베푸신 유일한 구원의 길이다.

성령의 역사로 인하여 겸손하게 된 자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게 된다.

하나님이 보는 내 모습이 어떠한지 알게 된다.

그는 자기 자신을 볼 때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보시는 데로 본다.

따라서 오직 십자가의 은혜만을 절대적으로 의지하게 된다.




'좋은 말씀 > 스테반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가 해야 할 단 한가지의 일  (0) 2019.03.24
진짜와 가짜   (0) 2019.03.21
무엇을 외치리이까   (0) 2019.03.13
거울 같으신 여호와 하나님   (0) 2019.03.11
하늘의 기쁨   (0) 2019.0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