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계 14:13)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 안에 있는 충만한 생명력이 여러분의 심령에 넘치시길 기도합니다.
하늘에서 또 다른 음성이 들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 안에 있는 충만한 생명력이 여러분의 심령에 넘치시길 기도합니다.
하늘에서 또 다른 음성이 들립니다.
그것은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라는 음성이었습니다.
지금 계시록의 시점은 마지막 일곱 대접 재앙을 남겨 놓은 상황에서 두 증인들이 적그리스도와 대적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많은 순교자가 나올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많은 순교자가 나올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따라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이 점점 많아져 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들에게 복이 있도다라는 음성은 성도의 죽음을 하나님이 귀하게 보신다는 시편 116편 15절의 말씀과 일맥 상통합니다.
이에 대하여 성령이 응답하시기를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쉴 것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이에 대하여 성령이 응답하시기를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쉴 것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성도들은 죽음 이후에 하나님의 품 안에서 온전한 안식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성령님의 확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성도의 죽음은 당신의 자녀들을 그들의 집으로 불러들이는 의미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성도의 죽음은 당신의 자녀들을 그들의 집으로 불러들이는 의미가 있습니다.
집을 떠나 바깥 세상에 일하러 간 자녀들을 집으로 다시 불러들여서
그들과 더불어 휴식하며, 잔치하며, 축제를 벌인다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성도의 죽음은 하나님 편에서는 기쁘고 즐겁고 또 복되고 귀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하기에 성도의 죽음은 하나님 편에서는 기쁘고 즐겁고 또 복되고 귀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어떤 일을 하기 위해서 오랫 동안 집을 떠났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얼마나 여러분의 마음에 기쁨을 주는 가를 상상해 보면 하나님의 마음을 여기서 읽을 수 있습니다.
한편 성도의 죽음은 성도의 편에서는 아버지가 주신 사명을 마무리 하고,
한편 성도의 죽음은 성도의 편에서는 아버지가 주신 사명을 마무리 하고,
이제 영광스럽게 아버지께 귀환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정말 수고를 마감하고 참된 안식, 영과 육의 온전한 안식으로 들어간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성도의 죽음은 결코 슬픈 일이 될 수 없으며, 비극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하기에 성도의 죽음은 결코 슬픈 일이 될 수 없으며, 비극이 될 수 없습니다.
도리어 성도의 죽음은 기쁨의 날이며, 감사의 날이며, 축제의 날이 됩니다.
비록 세상에 함께 있던 지체들과 잠시 떨어진다는 의미에서 인간적인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있을 수 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게 보아서 성도의 죽음은 감사와 기쁨의 사건인 것입니다.
세상의 관점이 아닌 하나님의 관점에서 성도의 죽음 더 나아가서는 우리 자신의 죽음을 바라보고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서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복된 신앙생활 누리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세상의 관점이 아닌 하나님의 관점에서 성도의 죽음 더 나아가서는 우리 자신의 죽음을 바라보고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서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복된 신앙생활 누리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출처] 정성욱교수의 요한계시록 묵상 215 (계14:13)|작성자 다윗의 물맷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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