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이 불붙는 것 같고 답답하여 견딜 수 없다!
(렘20:7-18: 예레미야의 고뇌와 탄식)
▶본문
7.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권유하시므로 내가 그 권유를 받았사오며 주께서 나보다 강하사 이기셨으므로 내가 조롱 거리가 되니 사람마다 종일토록 나를 조롱하나이다
8.내가 말할 때마다 외치며 파멸과 멸망을 선포하므로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내가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 거리가 됨이니이다
9.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10.나는 무리의 비방과 사방이 두려워함을 들었나이다 그들이 이르기를 고소하라 우리도 고소하리라 하오며 내 친한 벗도 다 내가 실족하기를 기다리며 그가 혹시 유혹을 받게 되면 우리가 그를 이기어 우리 원수를 갚자 하나이다
11.그러하오나 여호와는 두려운 용사 같으시며 나와 함께 하시므로 나를 박해하는 자들이 넘어지고 이기지 못할 것이오며 그들은 지혜롭게 행하지 못하므로 큰 치욕을 당하오리니 그 치욕은 길이 잊지 못할 것이니이다
12.의인을 시험하사 그 폐부와 심장을 보시는 만군의 여호와여 나의 사정을 주께 아뢰었사온즉 주께서 그들에게 보복하심을 나에게 보게 하옵소서
13.여호와께 노래하라 너희는 여호와를 찬양하라 가난한 자의 생명을 행악자의 손에서 구원하셨음이니라
14.내 생일이 저주를 받았더면, 나의 어머니가 나를 낳던 날이 복이 없었더면,
15.나의 아버지에게 소식을 전하여 이르기를 당신이 득남하였다 하여 아버지를 즐겁게 하던 자가 저주를 받았더면,
16.그 사람은 여호와께서 무너뜨리시고 후회하지 아니하신 성읍 같이 되었더면, 그가 아침에는 부르짖는 소리, 낮에는 떠드는 소리를 듣게 하였더면, 좋을 뻔하였나니
17.이는 그가 나를 태에서 죽이지 아니하셨으며 나의 어머니를 내 무덤이 되지 않게 하셨으며 그의 배가 부른 채로 항상 있지 않게 하신 까닭이로다
18.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나와서 고생과 슬픔을 보며 나의 날을 부끄러움으로 보내는고 하니라
▶해석과 설명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권유하시므로 내가 그 권유를 받았사오며
주께서 나보다 강하사 이기셨으므로 내가 조롱 거리가 되니
사람마다 종일토록 나를 조롱하나이다’(7절)
여기서 ‘권유하다’는 히브리아 ‘파타’라는 단어로 ‘유혹하다’ ‘속이다’는 의미가 있다.
“주님, 주님께서 나를 속이셨으므로, 내가 주님께 속았습니다.
주님께서는 나보다 더 강하셔서 나를 이기셨으므로,
내가 조롱거리가 되니, 사람들이 날마다 나를 조롱합니다.” 이런 뜻이다.
이는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함으로서 오는 곤고한 상황을 묘사한 것으로,
예레미야 자신이 기대했던 결과와는 상반된 결과,
즉 백성들이 회개는커녕 더욱 완악해진 것을 체험한 결과에 대한 낙담과 절규다.
‘주께서 나보다 강하사 이기셨으므로 내가 조롱 거리가 되니’
이는 예레미야의 소명 당시 자신은 예언자가 될 수 없다고 소명을 거절했으나(렘1:6),
하나님께서 월등히 강하셔서 자신을 예언자로 세우심으로(렘1:7-10) 순종했으나,
끝내는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었다는 탄식의 토로다.
◦‘내가 말할 때마다 외치며 파멸과 멸망을 선포하므로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내가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 거리가 됨이니이다’(8절)
본절은 예레미야가 당한 박해의 원인이다.
즉, 예레미야가 박해을 당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신실하게 증거한 결과라는 것이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9절)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이는 예레미야 선지자의 소명과 현실사이에서 오는 괴리에 대한 심리적 갈등이다.
이는 하나님의 심판의 경고가 백성들의 회개는커녕 더 악하게만 만들고,
또한 자신에 대한 박해만 더 가중시키느니
차라리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전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일시적으로 갖게 된 것이다.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견딜 수 없나이다’
이제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던 예레미야의 심정으로,
계속되는 박해와 성과 없는 선지자직 수행으로 인해 선지자직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들지만,
그렇다고 선지자로서의 소명을 포기할 수 없는 심경을 솔직히 표현한 것이다.
◦‘나는 무리의 비방과 사방이 두려워함을 들었나이다
그들이 이르기를 고소하라 우리도 고소하리라 하오며
내 친한 벗도 다 내가 실족하기를 기다리며
그가 혹시 유혹을 받게 되면 우리가 그를 이기어 우리 원수를 갚자 하나이다’(10절)
‘고소하라 우리도 고소하리라’
이는 예레미야의 심판 경고에 대한 백성들의 반응이다.
즉 백성들은 자신들의 죄를 고발하는 예레미야를 맞고소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예레미야의 사역에 반기를 든 것으로, 예레미야의 선지작직에 대한 의구심을 품게 함으로서
하나님이 아닌 백성들을 선심을 사고자 하는 술책이기도 하다.
이것은 예레미야의 사역을 무력화시키고자 하는 고도의 술책이었다.
‘내 친한 벗도 다 내가 실족하기를 기다리며’
이는 예레미야가 얼마나 많은 적들에게 에워싸임을 당했으며, 얼마나 외롭게 사역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즉 평소에 예레미야와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조차 그의 타락과 법죄를 유도하며 범죄 하기를 고대한다는 것이다.
◦‘그러하오나 여호와는 두려운 용사 같으시며
나와 함께 하시므로 나를 박해하는 자들이 넘어지고 이기지 못할 것이오며
그들은 지혜롭게 행하지 못하므로 큰 치욕을 당하오리니
그 치욕은 길이 잊지 못할 것이니이다’(11절)
11-13절은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에 대한 예레미야의 신뢰와 찬양이다.
본 절은 ‘그러나 주님은 내 옆에 계시는 힘센 용사이십니다.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으로 나를 박해하는 사람들이, 힘도 쓰지 못하고 쓰러질 것입니다.
그들은 지혜롭지 못하므로 실패하여 영원히 잊혀질 수 없는 수치를 당할 것입니다.’
이런 뜻이다.
◦‘의인을 시험하사 그 폐부와 심장을 보시는 만군의 여호와여
나의 사정을 주께 아뢰었사온즉 주께서 그들에게 보복하심을 나에게 보게 하옵소서’(12절)
이는 예레미야의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보여주는 것이다.
‘주님은 의로운 사람을 시험하시고, 생각과 마음을 감찰하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예레미야는 자신의 억울한 사정을 주님께서 아시오니
주님께서 그들에게 내 원수를 갚아 달라는 탄원이다. 그것을 꼭 보고 싶다는 것이다.
이는 예레미야 개인의 원한이나 저주가 아니라,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는 무법한 자에 대하여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기를 바라는 그의 기도라고 볼 수 있다.
◦‘여호와께 노래하라 너희는 여호와를 찬양하라
가난한 자의 생명을 행악자의 손에서 구원하셨음이니라’(13절)
‘여호와께 노래하라 너희는 여호와를 찬양하라’
앞에서 예레미야는 하나님을 이렇게 표현했다.
‘여호와는 두려운 용사 같으시며’(11절)
‘의인을 시험하사 그 폐부와 심장을 보시는 만군의 여호와여’(12절)
이제 예레미야는 그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는 것이다.
‘가난한 자’
여기서 가난한 자란 경제적의미의 가난한 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레미야 자신을 포함한 주님을 위해 박해 받는 모든 의로운 자를 가리킨다.
◦‘내 생일이 저주를 받았더면, 나의 어머니가 나를 낳던 날이 복이 없었더면’(14절)
<새번역 성경>내가 태어난 날이 저주를 받았어야 했는데. 어머니가 나를 낳은 날이 복된 날이 되지 말았어야 했는데.
14-18절은 예레미야가 자신의 탄생에 대한 저주를 하는 내용 이다.
이 부분은 지금까지 내용과는 괴리가 있는 일종의 <삽입 문단>이다.
더구나 예레미야는 앞에서 하나님을 찬양했다.
학자들은 예레미야가 선지자 바스훌에 의해 구타를 당하고 감금되어 있을 때, 혹은 감금 당했을 동안 스쳐간 상념을 여기에 기록하고 있다는 견해가 힘을 얻는다.
한편 자신의 생일을 저주하는 14-18절 내용은 욥3:3-12의 내용과 거의 일치한다.
이 부분 역시 학자들은 예레미야가 욥기의 내용을 알고 있었고,
욥의 탄식과 고백에 공감을 했으며, 그래서 이 내용을 자신의 고백으로 차용해 왔을 것으로 추정한다.
◦‘나의 아버지에게 소식을 전하여 이르기를
당신이 득남하였다 하여 아버지를 즐겁게 하던 자가 저주를 받았더면,’(15절)
<새번역 성경>나의 아버지에게 '아들입니다, 아들!' 하고 소식을 전하여, 아버지를 기쁘게 한 그 사람도 저주를 받았어야 했는데.
득남 소식은 언제나 기쁜 소식이다.
하지만 예레미야가 이런 표현을 쓴 것은 사역에서 오는 낙담으로 인해
자신의 출생을 기뻐할 수 없었던 심정을 이렇게 토로하고 있는 것이다.
◦‘그 사람은 여호와께서 무너뜨리시고 후회하지 아니하신 성읍 같이 되었더면,
그가 아침에는 부르짖는 소리, 낮에는 떠드는 소리를 듣게 하였더면, 좋을 뻔하였나니’(16절)
<새번역 성경>바로 그 사람은 주님께서 사정없이 뒤엎어 놓으신 성읍들처럼 되어서, 아침에는 울부짖는 고통 소리를 듣고, 대낮에는 전쟁의 함성을 들었어야 했는데.
득남 소식을 전한 자에 대한 계속되는 저주다.
하지만 그 내용은 ‘득남 소식을 전한 자’를 저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처한 극한 상황 속에서 자신의 심경을 피력한 것이다.
◦‘이는 그가 나를 태에서 죽이지 아니하셨으며
나의 어머니를 내 무덤이 되지 않게 하셨으며
그의 배가 부른 채로 항상 있지 않게 하신 까닭이로다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나와서 고생과 슬픔을 보며
나의 날을 부끄러움으로 보내는고 하니라’(17-18절)
<새번역 성경>내가 모태에서 죽어, 어머니가 나의 무덤이 되었어야 했는데, 내가 영원히 모태 속에 있었어야 했는데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나와서 고생과 슬픔을 보며 나의 날을 부끄러움으로 보내는고 하니라
17절의 ‘그’에 대한 해석이 난해하다.
학자들 가운데에는 ‘그’를 하나님으로 보는 경우가 지배적이다.
하지만 본 절은 예레미야 자신이 태에서 죽지 않고 태어난 것을 저주하는 것이라기보다는
현재의 고통이 극심하여 현실을 탈피하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럽다는 것이다.
예레미야 당시 사역자의 극한 고뇌가 담긴 내용이다.
▶묵상과 적용
◦소명와 현실사이!
본문은 예레미야가 선지자직을 수행하는 데서 오는 고충을 탄식적으로 토로한 내용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권유하시므로 내가 그 권유를 받았사오며
주께서 나보다 강하사 이기셨으므로 내가 조롱 거리가 되니
사람마다 종일토록 나를 조롱하나이다’(7절)
이는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함으로서 오는 곤고한 상황을 묘사한 것으로,
예레미야 자신이 기대했던 결과와는 상반된 결과,
즉 백성들이 회개는커녕 더욱 완악해진 것을 체험한 결과에 대한 낙담과 절규다.
주님의 부르심(렘1:7-10)으로 순종했으나,
끝내는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었다는 소명과 현실사이에서의 갈등이다.
여기서 우리는 복음 전파의 이중적 결과에 대하여 알아야 한다.
즉, 복음 전파는 분명 구원 받기로 택정한 자에게는 하나님의 기회가 되지만,
완고한 죄인들에게는 그들의 죄성이 더욱 드러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고,
오히려 죄인들의 핍박을 초래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박해 받는 상황이든지 평화로운 상황이든지’ 복음을 증거하기에 힘써야 한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9절)
이는 하나님의 심판의 경고가 백성들의 회개는커녕 더 악하게만 만들고,
또한 자신에 대한 박해만 더 가중시키느니
차라리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전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일시적으로 가졌지만,
그렇다고 선지자로서의 소명을 포기할 수 없는 심경을 솔직히 표현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예레미야와 사도 바울의 심장은 같다고 볼 수 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고전9:16)”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렘20:9)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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