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하용조목사

어부들을 제자로 부르시다

새벽지기1 2018. 1. 25. 08:00


누가복음은 1장부터 4장까지 크게 두 가지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메시아다’라는 것과 ‘예수님에게 살리는 능력과 권세가 있다’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혼자 일하시지 않고 사람과 팀 사역을 준비하신 것입니다.  


배 위에 오르신 메시아  


1~2절입니다. “무리가 옹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쌔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호숫가에 두 배가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예수님께서 갈릴리 호숫가에 있었는데 사람들이 말씀을 들으려고 예수님 주변을 둘러쌌습니다. 영적으로 배가 고픈 사람들은 하늘에 대한 소식을 듣고 싶어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적으로 배고픈 사람들, 회복되고 싶은 사람들을 바라보시고 동시에 복음의 통로로 사용할 사람들, 시몬 베드로, 야고보, 요한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에는 살아나야 할 많은 사람들과 이들을 살리기 위해 사용할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럴 때 꿈의 사건, 비전의 사건이 일어납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중국 사람들을 살리고 싶어 하실 때 이들을 살리는 일을 할 사람들도 생각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서 여러분을 찾을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살리기를 원하실 때 우리 중의 누군가가 선택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것이 아름다운 인생입니다. 이 소명의 사건이 3~4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띄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사람들이 하도 많아서 예수님은 배를 띄우고 설교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하기 전에 한 가지 예수님에 대해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낭만을 아셨다는 것입니다. 천국 복음을 전파하는 것도 중요하고 사람을 살리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유와 낭만을 잃지 않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여러분이 여유와 낭만을 잃지 않기를 바랍니다. 목적을 향해 달려가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누리는 잔잔한 기쁨과 즐거움을 잃어버리면 안 됩니다. 그 여유와 낭만을 잃어버리고 즐거움을 잃어버리고 기쁨을 잃어버리고 오로지 사역만 하는 사람은 얼마 가지 못하고 지칩니다. 짜증을 냅니다. 그러나 사역을 하면서, 영적 전쟁을 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사람, 여유를 잃지 않는 사람, 낭만을 잃지 않는 사람, 기쁨을 잃지 않는 사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잔잔한 즐거움을 잃지 않는 사람은 마라톤 경주와 같은 사역을 하면서도 끝까지 기쁜 마음으로 행복하게 달려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성령충만입니다.

성령충만은 ‘할렐루야’라고 계속 외치는 것이 아니라 작은 것 가운데서 멋을 알고 인생의 맛을 알고 사는 것입니다. 여유와 낭만과 따뜻함과 멋스러운 예수님의 아름다운 면이 여러분에게도 임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순종이냐 불순종이냐 


예수님께서 배 위에서 설교하시다가 그 배의 주인인 시몬에게 한 말씀하셨습니다. 그 한마디가 시몬의 모든 것을 뒤집어 놓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말을 정확히 번역하면 “고기를 잡기 위해서 깊은 데로 가라 그리고 그물을 던져라”입니다. 베드로에게는 순종하지 않아도 될 5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첫째, 베드로는 이미 밤새도록 일했습니다. 둘째, 밤새도록 잡았는데도 불구하고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날 밤은 일진이 나빴다는 것입니다. 셋째, 몸이 피곤했습니다. 넷째, 그물을 다 씻어놓았습니다. 힘들여 씻은 그물을 다시 던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다섯째, 그들은 어부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목수요, 그들은 어부였습니다. 전문가가 자신있게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일입니다.


이처럼 순종할 수 없는 많은 이유가 있었지만 마음만 먹으면 예수님께 순종할 수 있는 이유도 있었습니다. 첫째, 바다에는 물고기가 많다는 것입니다. 밤새도록 고기를 잡을 수 없었지만 그물을 던진 곳보다 바다가 더 넓습니다. 둘째, 그물을 씻을 힘이 있으면 그물을 던질 수 있는 힘도 있습니다. 셋째, 그들은 어부입니다. 마음만 먹으면 그물을 던지는 일을 쉽게 할 수 있었습니다. 넷째, 시몬 베드로는 바로 전 누가복음 4장에서 좋은 경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시몬의 장모가 열병에 걸렸을 때 예수님께서 고쳐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몫, 하나님의 몫 순종할 수 있는 이유가 있고 순종할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순종할 수 없을 것 같고 또 저렇게 보면 순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갈등합니다. 고민합니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었지만 베드로는 결단했습니다. 그리고 행동했습니다. 그 순종의 끝자락에서 기적이 일어납니다.


기적의 끝자락에서 주님의 제자가 되는 부르심의 사건이 일어납니다. 부르심에 응답한 그 끝자락에서 베드로를 통해서 수없이 많은 사람이 살아나는 놀라운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5~7절입니다.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리한즉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를 손짓하여 와서 도와달라 하니 저희가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습니다”는 말은 순종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입니다. “말씀에 의지하여”는 순종해야 할 이유입니다. 그렇게 갈등하다가 베드로는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라고 결단하고 행동합니다. 믿음으로 결단하고 행동한다고 해서 자동으로 그물이 내려지고 배가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결단을 했다고 해도 자신이 직접 그물을 던지고 배를 저어야 합니다. 이것이 힘든 것입니다. 시몬 베드로가 순종해서 깊은 데로 노를 저어 갈 때에 주님은 무엇을 하고 계셨을까요? 시몬 베드로가 끝까지 고민하고 갈등을 할 동안 예수님은 바다에 수없이 많은 물고기를 모으고 계셨을 것입니다. 신명기 1장 33절을 보면 “그는 너희 앞서 행하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의 행할 길을 지시하신 자니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애굽을 떠나서 순종한 백성들을 위해서 하나님은 장막 칠 곳을 미리 찾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순종하면 사건이 일어납니다. 아무 일도 일어날 것 같지 않지만 그곳에서 놀라운 사건이 일어납니다. 순종은 우리의 몫입니다. 역사는 하나님의 몫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도저히 기대할 수 없는 방법으로 역사하십니다.  또 하나의 사명  이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결단하고 출발하면 다시 돌아서지 않고 끝까지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요즘 고민되고 갈등되는 일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프가니스탄을 위해서 헌금해라”라고 하시는데 ‘다른 데 쓸 곳이 있는데’하며 고민하고 갈등하지 마십시오. 결단하고 헌신하면 그 헌금이 사람을 살릴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항상 우리는 헌신의 마지막까지 고민하고 갈등합니다. 선교사로 나가는 분들은 비행기를 타는 순간까지 갈등합니다. 믿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나아가는 것입니다. 선교지에서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을 먹을 때, 아이들이 집에 가고 싶다고 울며 떼를 쓸 때 갈등합니다. 그러나 그 갈등을 넘어 고민을 넘어 한발자국 나아갈 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베드로가 그물을 던져서 한 마리도 고기를 잡지 못했습니다. 베드로가 스스로 생각할 때 얼마나 비참했겠습니까? 그때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은 마지막이라고, 절망이라고 말할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바로 이 때가 주님을 만날 수 있는, 우리가 주님께 순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추락하더라도 멋있게 추락하고 싶은 것이 인간입니다. 집이 지금 망하더라도 펑펑 쓰면서 멋있게 망하고 싶은 것이 인간입니다. 빈털터리 같이 한 마리도 고기를 잡지 못한 그 순간에 주께서 말씀하시면 멋지게 반응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순종하십시오. 그 때 역사가 일어납니다. 나는 가진 게 있다고, 내 능력으로 해보겠다고, 내 경험으로 해보겠다고 버티지 마십시오. 허망한 모습, 허탈한 모습가운데 주님께서 말씀하시면 그냥 순종 하십시오. 그러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 때에 예수님께서 “이후로는 네가 사람을 낚으리라”는 더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9~11절입니다. “이는 자기와 및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을 인하여 놀라고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일러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저희가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물고기를 낚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을 낚는 인생을 살게 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순종하고 반응하는 그 베드로에게 또 하나의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순종은 순종을 낳는다   


오늘 말씀에서 몇 가지 깨달음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의 순종은 또 다른 순종을 낳는다는 것입니다. 그물을 내려 물고기를 잡으라는 말씀에 순종하니까 주님께서 “나를 따라 오너라”라는 말씀에도 순종합니다. 여러분, 작은 것 하나에 순종해 보십시오. 그러면 제자의 삶까지 순종하는 놀라운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 기도할 때 기도하시고 헌금할 때 헌금하십시오. 십일조에 한번 순종해 보십시오. 그러면 인생을 드리는 놀라운 또 다른 순종을 하실 수 있습니다. 둘째, 예수님은 각 사람에게 적합한 방법으로 역사하십니다. 사업가는 사업 현장에서 부르시고, 사업을 통해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십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산에 가서 곰 잡아라, 토끼 잡아라’ 하지 않았습니다. 어부인 베드로는 어업 현장에서 부르십니다. 각자의 현장에서 사람을 낚고 사람을 살리는 놀라운 제자의 비전과 꿈을 주십니다.  


더 깊은 은혜의 바다로 


셋째, 예수님은 누군가를 사용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군가를 쓰고 싶어서 베드로를 부르신 것입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이 예수님의 마음에 딱 맞는 사람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이 민족이 주님께 쓰임받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은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역사하시지만 모든 사람을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사용하시지는 않습니다. 여러분의 가족을 위해 당신을 사용하기를 원하십니다. 넷째, 예수님은 때때로 우리의 자만심을 꺾으십니다. 늘 해오던 일이 잘되었는데 그날따라 잘 안됩니다. 그러면 자존심이 꺾이고 자만심이 꺾입니다. 그 때를 우리는 실패라 말하지만 실상은 그 때가 바로 주님께서 역사하실 때입니다. 우리가 초라한 모습으로 있을 때 자만심이 꺾일 때 주님은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십니다. 우리의 자존심이 꺾일 때에 주님께서 우리에게 도전을 주십니다. 9~11절 말씀을 보면 제자들이 그 물고기를 잡은 이후에 놀랐다고 했습니다. 많이 놀랄수록 영적으로 깊어집니다. 크리스천의 영성은 도를 닦는 것 아닙니다. 말씀이 오고 고민하고 갈등하고 순종하고 결단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에 놀랍니다. 그리고 또 말씀이 옵니다. 그 때 또 고민하고 갈등하고 결단하고 행동하면 그 사건의 열매를 보고 또 놀랍니다. 또 삶의 현장에서 그렇게 살다가 내 자존심이 깨집니다. 자만심이 깨집니다. 경험과 믿음 사이에서 불신과 믿음 사이에서 내 능력과 하나님의 역사 사이에서 고민하고 갈등하다가 믿음으로 결단하고 행동했는데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또 놀랍니다. 이렇게 많이 놀라는 만큼 영적으로 성숙해 집니다.  


결단하고 행동하라  


삶의 현장에서 주의 말씀에 진실과 진리와 주의 법도를 가지고 결단하며 나가십시오. 도저히 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나의 가진 것을 드린다’고 결단하고 행동했을 때 놀라고 또 놀라면서 영적인 깊은 바다로 나가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장 12절에서 16절입니다.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맞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 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곧 베드로라고도 이름 주신 시몬과 및 그 형제 안드레와 및 야고보와 요한과 빌립과 바돌로매와 마태와 도마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셀롯이라 하는 시몬과 및 야고보의 아들 유다와 및 예수를 파는 자 될 가룟 유다라.” 예수님은 다양한 성격의 사람을 불렀습니다.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을 불렀습니다. 한 가지 기억할 것은 예수님께서 밤이 맞도록 기도하시고 제자들을 선택하셨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으로 순종을 선택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선택하고 결단만하지 말고 행동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 결과 많은 기적과 놀라움으로 영적인 깊은 바다로 나아가고 당신을 통해 죽은 영혼이 살아나는 놀라운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말씀과 나의 경험 사이에서 고민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현실과 믿음사이에서 고민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순종할 수 없는 수많은 이유와 순종할 수 있는 수많은 이유가운데 고민하고 갈등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하나님 결단하게 하옵소서.

행동하게 하옵소서.

영적인 깊은 바다로 나아가며 일평생 사람 낚는 어부로 살아가는

그 부르심의 사건이 우리 가운데 일어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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