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부활주일에 ‘보지 않고 믿는 믿음’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부터 몇 주간 동안 믿음에 관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믿음은 가장 중요합니다. 그런데 믿음에 대한 오해가 너무 많습니다. 잘못된 믿음을 진짜 믿음으로 착각하기도 합니다. 잘못된 믿음에 대한 결과를 놓고 혼란스러워 하고 당황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정리되면 신앙생활에 대로가 열립니다.
믿음의 본질
에베소서 2장 8,9절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첫째, 믿음은 나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믿음은 내가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노력하면 믿음을 얻을 수 있다고 오해합니다. 그래서 자꾸만 나도 모르게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기 보다는 인간적인 방법, 노력, 생각이 앞섭니다. 그러다보니 이상한 믿음으로 가버린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인줄 알고 붙잡았는데 나중에 보니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그런 믿음을 가지면 가질수록 믿음으로부터 더 멀어집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믿음의 본질은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우리는 믿음을 단순히 적극적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파생된 영향력일 뿐 본질은 아닙니다. 우리는 믿음의 부스러기를 붙들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좋아야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 좋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은 제쳐두고 자꾸 복만 달라고 합니다. 믿음의 핵심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득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혜택을 받는 것도 아닙니다.
셋째, 믿음은 믿음에 이르게 합니다.
믿음은 우리에게 희망과 기대를 줍니다. 그러나 희망과 기대가 믿음은 아닙니다. 믿음은 우리에게 열정과 헌신을 줍니다. 그러나 열정과 헌신이 곧 믿음은 아닙니다. 믿음은 기적과 능력을 베풀어줍니다. 그러나 기적과 능력이 믿음은 아닙니다. 성경과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순수한 믿음의 실체는 우리가 규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에 접근할수록 우리는 또다시 나 자신을 깨고 오만의 옷을 벗고 이성의 옷을 벗고 순간순간 겸손해집니다. 믿음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요.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믿음을 가졌다면 행함으로 믿음이 커지지 않습니다. 믿음이 믿음을 낳습니다. 한번 믿으면 두 번 믿게 되고, 두 번 믿으면 세 번 믿게 됩니다. 그렇게 계속해서 믿음이 나의 믿음을 더 깊고 크게 만듭니다. 믿음을 가지면 고난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위기를 맞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이 있으면 만사형통한다고 오해합니다. 아닙니다. 병들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의 마음속에 율법적인 믿음의 오해가 풀리기를 축원합니다. 내 안에서 이런 생각들을 하나씩 제거하고 버릴 때 보배로운 믿음이 싹트기 시작하고, 그 믿음은 기적과 축복을 만들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시는 하나님
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택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먼 훗날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진리를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놀랍고 결정적인 사건을 보여주십니다. 예수를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내가 구원을 받기위해서는 아무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행위도 필요 없다, 값도 치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냥 예수 믿으면 구원받고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사실, 이 말이 얼마나 유치합니까? 이렇게 단순하게, 아무 대가도 치르지 않고 그냥 믿으면 된다는 말은 잘 가슴에 와 닿지 않습니다. 이것이 무슨 소리인지 알기 위해 고생한 사람이 아브라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라는 한 이방인, 하나님이 없던 사람, 믿음이 없던 사람, 상식과 경험과 이성으로만 살아왔던 사람을 택하시고 믿음으로 사는 법을 가르쳐 주십니다. 믿음의 비밀을 보여주십니다. 따라서 이 아브라함의 믿음의 사건을 잘 이해한다면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유치하고 단순한 입놀림이 아니라 상상할 수 없는 우주의 비밀과 심오함과 능력과 기막힌 것들이 숨어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것이 느껴져야 예수의 능력이 내안에 오기 시작합니다. 구원의 능력이 오기 시작합니다. 용서의 능력이 오기 시작합니다. 보혈의 능력이 내안에 임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내가 나를 설득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설득하는 것입니다. 내가 나에게 확신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확신을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흔들리지 않고 나중에 순교까지 합니다. 내가 받는 보상이 없고, 대가도 없고, 내가 가는 길이 화려하지 않고 광야 같은 길일지라도 십자가를 지고 그 길을 갑니다. 이 믿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바로 이 믿음을 구하십시오. 순결한 믿음, 보배로운 믿음, 예수 그리스도에 이르는 믿음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의 선물 ‘믿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어떻게 부르셨는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어떻게 믿음을 주셨는지 잘 살펴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주실 때까지 25년, 막벨라 굴에 장사될 때까지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사람으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믿음은 이삭을 통해, 이삭의 믿음은 야곱을 통해, 야곱의 믿음은 열 두 지파를 통해 계속 흘러가게 하셨습니다. 그 믿음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에게로 흘러와 놀랍고 감동적이고 심오하고 상상할 수 없는 믿음의 축복을 받게 하셨습니다. 창세기 12장 1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아브라함에게서 발견하는 믿음은 무엇입니까? 첫째, 믿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잘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찾아간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오셨습니다. 아브라함이 도를 닦아서 하나님께 간 것이 아닙니다. 참된 신앙인은 하나님을 겸손하게 바라봅니다. ‘주여 이 죄인을 불쌍히 여기소서!’ 이것 밖에는 할 말이 없습니다. ‘하나님 긍휼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할 말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돌보시지 않으면 제가 어디로 갑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지켜주시지 않으면 누가 저를 보호하겠습니까. 저를 긍휼히 여기소서.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믿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나에게 믿음을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먼저 찾아오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말씀에서 나오는 믿음 둘째, 믿음은 하나님이 말씀함으로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라는 표현을 보십시오. 창세기 1장을 보면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하면 빛이 있었습니다. 창조의 원리는 말씀입니다. 말씀이 있었기 때문에 빛도 있고, 태양도 있고, 하늘도 있고, 땅도 있고, 공기도 있습니다. 말씀이 없으면 믿음은 없습니다. 말씀 없는 믿음은 허공을 치는 것과 같습니다. 믿음은 내 생각, 내 비전, 내 묵상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믿고 신뢰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말씀이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다려야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것은 이삭이지 이스마엘이 아닙니다. 이삭이 태어나지 않았다고 해서 이스마엘을 만들면 안 됩니다. 여러분, 믿음은 그런 의미에서 기다림입니다. 기다릴 수 없으면 믿음이 될 수 없습니다. 어린 아이를 임신하면 엄마는 열 달 동안 기다려야 합니다. 급하다고 열 달이 되기 전에 아이를 낳는 엄마는 없습니다. 믿음은 기다림입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뜻은 ‘의인은 기다림으로 산다’는 뜻입니다. 약속의 믿음과 희망의 믿음의 차이가 이것입니다. 말씀이 없는 것은 희망입니다. 말씀이 있는 것은 약속입니다. 익숙한 것에서 떠나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믿음을 주시기 위해서 하신 말씀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떠나라’이고 둘째는 ‘가라’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내용입니다.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집착에서 떠나야합니다. 자아에서 떠나야합니다. 과거에서 떠나야합니다. 여러분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다 끊어야 합니다. 그래서 힘듭니다. 누구든지 변화는 원하지만 실제로 변하기는 어렵습니다. 변화하기 위해서는 자기 실수, 자기 부족함을 인정해야 하고, 자기를 부인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본토, 고향,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본토는 고향입니다. 친척은 가족들입니다. 아비는 부모입니다. 다시 말해 당신이 친하고 익숙하고 가장 영향력을 주고 있는 것에서 떠날 때 하나님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어서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가려서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더러운 유리창은 닦아야 밖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근본적인 혁명입니다. 나를 버리는 것이 근본적 혁명입니다. 집착을 버리는 것이 근본적 혁명입니다. 옛사람이 변하여 새사람이 되고, 죄인이 변하여 의인이 되는 것. 이 철저한 자기 부정, 철저한 자기 포기가 믿음의 시작입니다. 인간의 본성은 떨어지지 않으려고 합니다. 자꾸 붙으려고 합니다. 여러분들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더 가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돈, 사람, 지식도 더 가져야합니다. 가진 것이 없어서 불행한 것이 아닙니다. 욕심 때문에 불행한 것입니다. 인간의 본성은 자기를 보호하려하고, 더 보완하려하고, 더 놓기 싫어합니다. 주변의 사람을 자꾸 끌어들여서 보호막을 만듭니다. 그리고 그것을 믿음이라 착각합니다. 그래서 막상 보면 믿음은 없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다 있지만 하나님이 없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소유가 아니라 포기입니다. 집착이 아니라 자유입니다. 안주가 아니라 떠남입니다. 그래도 막상 떠나려면 불안합니다. 낭떠러지에 빠지는 것 같고 죽는 것 같습니다. ‘내가 이렇게 하면 되는 걸까?’라는 생각이 자꾸만 듭니다. 뭔가 끈이라도 붙잡아야 살 것 같습니다. 마지막 보루까지 놓게 되면 굉장히 당황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내 도움이시고 내 구원이심을 알게 됩니다. 약속의 땅으로 가라! 둘째, ‘가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은 가는 것입니다. 목적을 향해 가는 것입니다. 믿음은 방황이 아닙니다. 우연도 아닙니다. 실수도 아닙니다. 목적이 이끄는 삶입니다. 어떤 사람은 실수로, 우연히 잘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로또가 아닙니다. 믿음은 약속입니다. 믿음은 길을 가는 것입니다. 믿음은 약속의 땅으로 가는 것입니다. 길이 보이지 않고 험하고 좁더라도 그곳이 약속의 땅이기에 가는 것입니다. 비바람이 쳐도 그 길을 가는 것입니다. 믿음을 가지면 비바람도 있고 폭풍도 있습니다. 위기도 있고 죽음도 있습니다. 진짜 믿음 있는 사람은 죽을 때를 압니다. 손해 볼 때를 압니다. 위기에 처해야 비로소 그 사람의 믿음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현실보다는 현실저편에 있는 약속의 땅을 바라볼 때 우리는 더 힘을 얻습니다. 더 의욕이 넘치고, 말할 수 없는 내적인 힘이 생깁니다. 이것이 영적인 힘입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이 힘이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셋째,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2절, 3절입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이 말씀을 보면 네 가지 약속이 나옵니다. 첫째 큰 민족을 이룰 것이다, 둘째 네 이름을 창대케 할 것이다, 셋째 내가 너를 복의 근원이 되게 할 것이다, 넷째 내가 너를 절대적으로 보호할 것이다 입니다. 약속은 성취형이 아니라 미래형입니다. 이미 이루어진 것은 약속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것을 믿으십시오. 아브라함은 죽을 때까지 그 약속이 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도 약속을 보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애에 약속이 성취되지 않을지라도 상관없습니다. 여러분이 아니면 여러분의 자녀가 약속을 이룰 것이요, 자녀가 안 되면 자녀의 자녀들이 이룰 것입니다. 이것이 약속입니다. 민수기 23장 19절에 보면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는 말씀이 있습니다. 믿음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의 경우 일차적인 믿음이 생기는 것이 25년이 걸렸습니다. 25년이 아니라 일생이 걸린다 할지라도 방향만 맞으면 상관없습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의 방향이 잘 가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방향을 잘 잡으셨습니까? 이대로 계속가면 잘 될 것 같습니까? 여러분 예수 믿고 구원받는다는 것을 단순한 피상적인 말로 이해하지 마십시오. 여기에는 우주적인 심오한 능력 있는 비밀이 있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오늘부터 계속해서 믿음에 대한 묵상이 깊어지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안에 성령 안에서 이루어지는 믿음이 아름답게 열매 맺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오 주여.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옵소서. 나의 믿음 없는 것을 용서해 주시고 믿음에 대해 오해했던 것을 용서해 주시고 하나님주신 믿음을 어린아이처럼 받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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