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을 묵상하면서 우리가 한 가지 기억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누가복음에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많은 일들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예수님만 하실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오늘날 교회가 해야 할 일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우리 신앙인들이 어떤 것을 경험하며 살아야하며, 신앙인들의 삶에 어떤 일들이 일어나야 하는지를 미리 보여주시고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누가복음을 묵상할 때마다, 예수님의 일을 묵상할 때마다 내 안에, 내 가정 안에, 내 삶에서 일어나야 할 일들, 우리 교회가 해야 할 일들을 계속해서 묵상하시고 삶에 적용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놀라운 기적은 지금도 있습니다. 말씀의 능력은 예수님 당시나 오늘날이나 동일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하신 그 일들이 내 안에 일어나기를 사모하십시오. 이것이 신앙인의 삶입니다.
예수님의 사역 1 – 말씀을 가르치심
예수님께서 하셨던 수많은 일들을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31절, 3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갈릴리 가버나움 동네에 내려오사 안식일에 가르치시매 저희가 그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말씀이 권세가 있음이러라.”
첫 번째,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의 우선순위는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가르치셨고, 구원과 천국을 가르치셨습니다. 때로는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비유를 통해서 설명하셨고, 때로는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 사역의 중심은 말씀 사역이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듣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또한 주님은 다수를 위한 말씀사역 뿐만 아니라 소수를 위한 제자양육사역을 하셨습니다. 열두 사람의 제자, 70인의 제자는 특별히 예수님께 택함을 받아서 직접 훈련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의 우선순위는 언제나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백성들에게 가르치고 제자들을 양육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씀에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말씀이 선포될 때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교회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말씀으로 훈련하는 일입니다. 말씀을 읽고 배우는 것을 미루지 마십시오. 시간이 있을 때, 여유가 있을 때 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하루 일정에 최우선순위로 결정하십시오. 예수님께서 사역의 중심에 말씀을 두셨듯이 우리들도 삶의 중심에 말씀을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최선이 아니라 차선이라면 여러분의 영혼은 병들기 시작합니다. 삶에 심각한 문제가 생깁니다. 그러나 말씀이 최선이라면 그 말씀이 여러분을 치료합니다. 그 말씀이 여러분을 회복시킵니다. 그 말씀이 진리가 무엇인지 깨닫게 해줍니다. 그 말씀이 하나님의 꿈을 꾸게 하고 비전을 품게 합니다. 그 말씀이 여러분이 얼마나 존귀한 존재인지 여러분의 정체성을 온전히 회복시킵니다. 성경에서 일어났던 놀라운 기적들을 체험하게 합니다.
또 한 가지 간과할 수 없는 것이 일대일 제자양육입니다. 아직 양육을 받지 못했다면 양육을 받으십시오. 아직 연결이 되지 않았으면 교회에 계속 전화하십시오. 양육을 받으셨으면 일대일 지도자 과정을 공부하십시오. 여러분이 배운 것처럼 누군가를 양육하십시오. 예수님께서 하셨듯이 우리는 끝없이 제자를 양육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역 2 – 귀신을 쫓으심
33절입니다.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크게 소리질러 가로되.”
예수님께서 행하신 두 번째 사역은 귀신을 쫓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귀신이 어떤 존재이며 우리 안에서 어떻게 역사하는지 이해해야 합니다. 33절에 보면 ‘더러운’ 귀신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깨끗한 귀신은 없습니다. 귀신은 더럽습니다. 귀신은 사람을 더럽히기 위해서 들어옵니다. 괴롭히기 위해서 들어옵니다. 우리에게서 좋은 것들을 빼앗아 가기 위해 귀신이 들어옵니다.
여러분, 귀신들려서 행복하다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저의 아버지께서도 목회하셨기에 종종 귀신 쫓는 것을 보았습니다. 귀신은 우리를 지배하려 합니다. 귀신은 예수님시대에도 있었고 오늘날에도 있습니다. 귀신은 들어오기도 하고 나가기도 합니다. 단 자기 마음대로 들어오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허락을 해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내 의사와 내 마음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들어오시지 않듯이 내가 의지적으로 귀신을 영접하지 않으면 절대로 내 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귀신도 인격체이기 때문입니다. 귀신들린 사람들은 다 귀신을 영접한 것입니다.
여러분 귀신은 사탄의 종입니다. 사탄이 귀신들을 시켜서 사람들에게 다가옵니다. 성령님은 한번 들어오시면 영원히 우리 안에 계시지만 귀신은 들어왔다 나갔다 반복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끝없이 이 귀신과 영적 전쟁을 하면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귀신은 허락하지 않으면 우리 안으로 들어오지는 못하지만 끝없이 우리 곁에서 유혹하고 속삭입니다. 이것이 영적전쟁입니다. 이 시대에도 얼마나 귀신이 역사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음란, 쾌락, 타락, 육신의 영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지배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귀신의 노예가 되어서 불행하게 살아가는 인간들을 해방시키러 오셨습니다. 예수님 안에 자유가 있습니다.
귀신의 정체
34절에 귀신이 어떤 존재인지 나와 있습니다.
“아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놀라운 일은 귀신이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귀신은 예수님이 하나님임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기에 귀신은 그분을 두려워합니다. 요즘 믿는 사람들은 귀신을 막연하게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귀신이 믿는 사람들을 두려워합니다. 예수의 이름 앞에 귀신은 꼼짝 못합니다. 지금도 사탄은 인간을 점령하기 위해서 온갖 문화로, 잘못된 것으로 계속해서 유혹합니다. 우리는 이것들을 인식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대적해야합니다. 귀신을 절대로 무서워하지 마십시오. 귀신이 어떤 존재인지 35절~37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꾸짖어 가라사대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귀신이 그 사람을 무리 중에 넘어뜨리고 나오되 그 사람은 상하지 아니한지라 다 놀라 서로 말하여 가로되 이 어떠한 말씀인고 권세와 능력으로 더러운 귀신을 명하매 나가는도다 하더라 이에 예수의 소문이 그 근처 사방에 퍼지니라.”
예수님께서 귀신을 꾸짖으셨습니다. 귀신도 인격체이기에 꾸짖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귀신에게 스트레스를 푸십시오. 속상하고 원망스럽고 누군가를 욕하고 싶을 때 사람이나 하나님이 아니라 귀신에게 하십시오. 귀신은 인격체이기에 얼마든지 조롱하고 원망하고 욕하고 저주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죄가 아닙니다. 상관없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귀신은 자신을 저주하지 못하도록 자신이 점령한 사람의 혀를 말을 못하도록 합니다. 제가 귀신을 쫓을 때 “당신 안에 들어있는 귀신을 저주하십시오. 꾸짖으십시오”라고 하면 혀가 돌아갑니다. 이런 경우를 참 많이 봤습니다.
여러분, 이제부터는 귀신을 두려워하지 마시고 귀신을 꾸짖으십시오. 대적하십시오. 요즘 귀신에 얽매여 사는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기도생활을 할 때 이 귀신을 꾸짖고 대적하는 기도를 많이 하십시오. 사탄은 여러분의 행복을 깨뜨리기 위해, 부부의 행복을 깨뜨리기 위해, 자녀와의 관계를 깨뜨리기 위해 열심히 일합니다. 그럴 때마다 그것에 넘어지고 그가 의도하는 대로 분노하고 절망하고 절규하고 소리치면 그때는 완전히 사탄의 밥이 되는 것입니다. 그럴수록 예수의 이름으로 대적하고 꾸짖고 선포하고 야단을 치고 저주하십시오.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셨기에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합니다. 왜냐하면 사탄의 역사가 계속해서 있기 때문입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사탄은 방해자입니다. 노략자입니다. 우리의 좋은 것을 빼앗아 갑니다. 행복과 평강을 깨뜨리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호락호락 쉽게 넘어가지 말고 믿음으로 인내하면서 대적하고 선포하고 꾸짖으십시오. 사탄이 얼씬거리다가 일곱 길로 도망가는 역사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의 사역 3 – 병을 고치심
세 번째 예수께서 하신 중요한 일은 38절, 39절입니다.
“예수께서 일어나 회당에서 나가사 시몬의 집에 들어가시니 시몬의 장모가 중한 열병에 붙들린지라 사람이 저를 위하여 예수께 구하니 예수께서 가까이 서서 열병을 꾸짖으신대 병이 떠나고 여자가 곧 일어나 저희에게 수종드니라.”
예수께서 행하신 세 번째 사역은 병을 치료하는 사역이었습니다. 인간의 병은 범죄의 결과입니다. 인간이 죄를 짓기 전에는 병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의 영혼이 구원을 받으니까 육체도 회복된다는 사실입니다. 죄를 지음으로 육체가 병들었는데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아 완전히 새로운 피로물이 되니 육체도 그 죄악에서 구원을 받는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병이 든 베드로의 장모의 집에 가서 베드로의 장모를 꾸짖지 않고 병을 꾸짖었습니다. 여러분도 이제부터 여러분의 병을 꾸짖기 바랍니다. 예수이름의 능력을 사용하십시오. 예수님께서 하셨듯이 질병을 꾸짖으십시오. 예수님께서 병을 어떻게 대하셨는지 40절과 41절을 보십시오.
“해 질 적에 각색병으로 앓는 자 있는 사람들이 다 병인을 데리고 나아오매 예수께서 일일이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고치시니 여러 사람에게서 귀신들이 나가며 소리질러 가로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꾸짖으사 저희의 말함을 허락지 아니하시니 이는 자기를 그리스도인줄 앎이러라.”
예수님은 처음에 병에 대해서 꾸짖으셨는데 이번에는 안수하십니다. 자신에게 찾아온 각색 병든 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안수했더니 그 안에 들어있던 귀신들이 떠나가고 육체의 질병도 회복되었습니다. 여러분, 지금도 우리가 손을 얹어 믿음으로 안수기도를 하면 그 손을 통해 하나님께서 치유하는 광선을 발하여 고치실 것입니다.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픈 곳이 있으면 그 병을 꾸짖으시고 그곳에 손을 대어 예수의 이름으로 안수하며 기도해야합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깨어서 기도하십시오
이 세 가지가 곧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오셨습니까? 이런 경험을 하면서 살고 계셨습니까 아니면 남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구경만하고 살아오셨습니까? 저는 우리 교회 안에서 이런 일이 계속해서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의 교회 안에서 여러분의 가정 안에서 예수님의 세 가지 중요한 일들을 날마다 경험하면서 살아가기를 축복합니다. 그런데 또 한 가지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와 같은 사역을 무슨 근거로 하신 것일까요? 42절 말씀 입니다.
“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나오사 한적한 곳에 가시니 무리가 찾다가 만나서 자기들에게서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매.”
우리는 성경 곳곳에서 한적한 곳에 계시는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기도하셨습니다. 기도가 예수님의 사역의 힘이었습니다. 기도가 예수님의 삶의 중심이었습니다. 여러분의 삶의 중심도 기도여야 합니다. “내가 이렇게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응답하셨다”고 간증할 수 있어야합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을 위해서 죽을 때까지 기도하십시오. 언젠가 자녀들에게 “나는 우리 어머니 아버지의 기도 때문에 오늘날 이런 사람이 되었다”는 말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얼마 전 미국의 풋볼 영웅인 하인즈 워드가 우리나라에 왔었습니다. 매스컴을 떠들썩 하게 했던 그는 신실한 크리스천입니다. 그 어머니가 기도로 그 아들을 키웠습니다. 말씀으로 키웠습니다. 종교적인 색체 때문에 언급이 되지 않았을 뿐입니다.
여러분 기도 외에는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기도는 능력입니다. 이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얻지 않으면 예수의 이름으로 병을 고치거나 귀신을 쫓아내거나 말씀을 가르칠 수 없습니다. 기도하면 말씀이 있고, 기도하면 귀신을 쫓는 역사가 있고, 기도하면 봉사가 있고, 기도하면 섬김이 있고, 기도하면 병 고치는 역사가 있습니다. 기도가 없으면 여러분의 신앙은 힘이 없습니다. 무너지는 것입니다. 자나 깨나 우리는 기도해야합니다. 기도가 살아있어야 합니다.
부르심에 합당하게 사십시오
마지막으로 43절, 44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로 보내심을 입었노라 하시고 갈릴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더라.”
사람들은 예수님을 붙잡았습니다. 그랬더니 예수님께서 “나는 다른 곳에 가서도 복음을 전해야한다. 나는 이것을 하기 위해서 왔다”라시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삶을 가만히 보십시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인지를 아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삶은 그분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세례요한도 이 땅에 온 목적대로 살았습니다. 사도바울도 이방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보내심을 받은 대로 일생을 이방인 구원을 위해서 살았습니다. 여러분의 삶은 어떻습니까? 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까? 보내신 목적을 알고 있다면 지금 여러분의 삶은 그 목적대로 이뤄지고 있습니까? 지금 여러분의 삶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대로 진행되고 있습니까?
우리는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분의 꿈을 꾸어야합니다. 말씀을 묵상함으로 그분의 비전을 품어야합니다.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치고, 말씀을 선포하고, 구원을 이뤄가는 일들을 하면서 살아야합니다. 직업, 성별, 나이는 상관없습니다. 누구나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면서 사는 것이 위대한 인생이요, 하나님 나라에서 큰 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의 이 세 가지 사역이 여러분의 삶의 내용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우리 교회의 내용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기도로 이 사역을 이뤄 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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