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하용조목사

주님의 일을 예비하는 세례요한

새벽지기1 2018. 1. 16. 08:10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나서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죽임을 당한 세례요한은 말 그대로 불꽃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예수님을 세우기 위해 자신은 무대 뒤에서 조연으로 지냈던 세례요한의 짧은 인생에서 우리는 정말 깊은 하나님의 메시지들을 발견합니다. 


암흑을 걷어내는 ‘광야의 소리’


1~2절입니다.

“디베료 가이사가 위에 있은 지 열다섯 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왕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왕으로,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왕으로,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이 구절에서 당시 팔레스타인의 상황이 얼마나 힘들고 복잡했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디베료는 로마황제입니다. 본디오 빌라도는 로마황제가 세운 유대총독입니다. 그리고 유대 나라 안에 여러 명의 자치적인 분봉왕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헤롯은 가장 악랄한 왕으로, 세례요한과 예수님이 사역을 하셨던 갈릴리 나사렛 지역의 분봉왕이었습니다.

정치 뿐만 아니라 종교계도 굉장히 복잡했습니다. 2절을 보면 “안나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라 했습니다. 우리는 얼핏 봐서 잘 모르지만 이 말은 굉장히 복잡한 말입니다. 대제사장은 한 명 밖에 세울 수가 없는데 두 명이 세워졌다는 것은 당시의 종교상황을 짐작케 합니다.

로마가 통치하면서부터 대제사장 자리는 영적인 기름부음받은 자리가 아니라 로마 정권과 야합하는 정치권력의 핵심지로 부상했습니다. 그래서 대제사장의 자리를 놓고 온갖 인간적인 암투가 오갔습니다. 2절은 가야바가 공식적인 대제사장임에도 불구하고 원로인 안나스가 눈에 보이지 않는 권력을 행사했다는 뜻입니다.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혼란스런 상황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음 둘 곳이 없었을 것입니다. 이럴 때 사람들은 ‘하나님은 왜 이 세상을 방치하고만 있는 것일까’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하나님은 조용히 일하고 계셨습니다. 


빈들에 임한 하나님의 말씀


2절에 보니 ‘하나님의 말씀이 빈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정치지도자들과 종교지도자들이 있는데, 하나님은 빈들에 있는 요한을 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전혀 뜻밖의 장소에서 전혀 뜻밖의 인물에게 임한 것입니다. 이것은 아드보가트 감독이 월드컵 선수를 뽑는데 박지성 선수도 있고 박주영 선수도 있는데 박종길 목사를 선택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모든 신앙생활은 성전을 통해서 이뤄졌습니다. 그런데 성전이 아닌 광야의 빈들에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습니다. 이것은 기존의 제도적인 종교질서를 순식간에 뒤엎어 버리는 파격적인 일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갈릴리의 이름 없는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게 하신 것도 파격이지만 수백 년의 침묵을 깨고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할 구약시대를 맺는 마지막 예언자를 세례요한으로 택한 것은 놀랄만한 일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예상할 수 있다면 이미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저는 전혀 보지도 듣지도 못한 은혜가 여러분에게 임하기를 바랍니다. 세례요한에게 주신 하나님의 절체절명의 사명이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예비하라’입니다. 4절~6절입니다.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바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함과 같으니라.”

이 말씀은 구약성경 이사야 40장 3절부터 5절을 인용한 말씀입니다. 여기서 나타난 지형적인 표현들은 우리의 마음의 상태, 영혼의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왕의 왕이신 주님께서 우리의 영혼으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영혼의 고속도로가 깔려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영혼의 골짜기가 메워져야 합니다. 골짜기는 열등감입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들의 모든 열등감들이 메워지기를 축원합니다. 저는 여러분들의 교만과 자존심과 아집과 독선이 다 깎이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야 영혼의 고속도로가 깔리는 것입니다. 이 길로 주님이 오십니다. 그러면 그분이 내 영혼 속에서 열매를 맺을 수가 있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


여기 세례요한의 새로운 메시지가 짤막하게 나오는데 세 가지 주제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회개의 촉구입니다. 세례요한의 메시지를 듣고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왔습니다. 7절부터 9절까지 보십시오.

“요한이 세례 받으러 나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세례요한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교만을 꾸짖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은 아브라함의 자손들이기 때문에 가만히 있어도 천국에 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세례요한은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들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너희를 선택했기에 너희들이 대단한 것이지 너희들이 대단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선택한 것이 아니다’라는 뜻입니다.

또한 세례요한은 심판이 임했음을 알립니다. 마음이 강퍅하고 위선에 가득 차 있는 사람을 가차 없이 심판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등장의 시작입니다.


오랜 침묵을 깨고 임한 말씀은 참으로 무서운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면 화들짝 놀라서 다 도망갈 것 같았는데 아니었습니다. 그 사람들 중에는 세례요한보다 똑똑하고 권위가 있는 사람도 있었지만 세례요한의 메시지에 꼼짝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영적인 권위입니다. 성령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에게는 세상이 어쩌지 못하는 영적인 권위가 있습니다.

세상적인 가치에 치중하는 사람일수록 자신이 어쩔 수 없는 거룩한 존재를 두려워합니다. 부자들은 돈으로 움직일 수 없는 사람을 두려워하고, 권력자는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사람, 야심이 없는 사람을 두려워합니다. 겉으로는 주님 한분만으로 만족한다면서 속으로는 돈에 꼼짝 못한다면 세상은 더 이상 교회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여러분이 영적인 권위를 회복하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들이 순수하게 말씀대로 살고, 그 말씀을 과감하게 선포할 때 영적인 권위가 회복될 것입니다. 


구체적인 행동을 요구하는 ‘회개’


둘째, 세례요한은 물어보는 무리들마다 답을 다르게 해줍니다. 10절에 무리들이 물어보니 11절에서 세례요한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대답하여 가로되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것이니라 하고.”

당시 평균 생활수준은 높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은 옷 두벌 있는 자가 옷 없는 자에게 나눠주라고 합니다. 옷 두벌을 나눌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이 말은 ‘가난하지만 너희들이 항상 남과 나눠줄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런 습관을 들이라’는 뜻입니다. 수직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수평의 나눔이 있어야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들이 작은 것에서부터 이웃들과 나눌 수 있는 훈련을 하기를 축원합니다.

이어 세례요한은 세리들에게 “정한 세금 외에는 늑징치 말라”고 했습니다. 기존의 세금 외에는 편법으로 다른 세금을 막 걷지 말라는 것입니다. 당시 세리들은 로마정부들과 지방정부들을 대신해서 세금을 거둘 뿐만 아니라 거기에 자기들의 수수료까지 붙여서 이익을 챙겼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백성들은 너무 힘들어 했습니다. 그러지 말라는 것입니다.

군인들에게는 세 가지를 당부합니다. 사람들에게 강포하지 말고, 무소하지 말고, 받는 요를 족한 줄로 알라고 했습니다. ‘강포’는 힘으로 공포감을 줘서 돈을 갈취하는 것입니다. ‘무소하지 말라’는 거짓으로 고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거짓으로 고소해도 재판부는 군인들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받는 요’는 봉급입니다. 자기 정상적으로 받는 수입에 만족하지 않으니까 불만과 욕심을 내서 그런 일을 저지르니 그러지 말라고 했습니다.


세례요한의 서릿발 같은 메시지는 당시의 최고 권력자였던 헤롯에게도 들이닥쳤습니다. 헤롯은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와 불륜의 관계를 맺고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 있었습니다. 누가 감히 잔혹한 왕에게 그 잘못을 지적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세례요한은 두려움 없이 지적했고, 그 때문에 헤로디아의 미움을 사서 옥에 갇혀 나중에는 사형까지 당합니다. 헤롯은 감옥에 갇힌 세례요한을 두려워했습니다. 그 악한 권력자도 하나님의 분명한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을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장차 오실 메시아를 맞이하라


셋째, 세례요한의 메시지는 장차 오실 메시야에 대한 기대를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15~17절입니다.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혹 그리스도신가 심중에 의논하니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것은 남을 칭찬하는 일입니다. 남의 기쁨을 함께 기뻐하는 것입니다. 비록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는 자로 세웠지만 세례요한은 초창기에 예수님 이상으로 폭발적인 민중의 인기를 끌어 모았던 인물입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자신이 메시아가 아닐까 하는 착각에 빠질 수도 있었습니다. 실제로 사람들도 구름떼처럼 모였고, 일부 사람들은 메시아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때 세례요한의 진가가 드러납니다. “나는 오실 메시야의 신들메의 풀기도 감당치 못한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갈등 없이 조연의 자리로 내려왔습니다. 


물 세례와 불 세례


그러면서 “나는 물로 세례를 주나 그분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줄 것”이라고 말합니다. 요한의 물 세례는 말씀에 찔린 영혼이 ‘내 옛사람을 버리겠다’는 단호한 결심입니다. 진정한 요한의 물 세례는 회개의 영이 임하는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요한의 사명입니다. 그러나 장차 오실 메시야는 성령 세례와 불 세례를 줍니다. 성령 세례는 예수님의 부활 이후 오순절 마가다락방에서 시작됩니다. 요한의 물 세례는 회개의 세례입니다. 옛사람을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성령 세례는 새사람을 입는 것입니다. 요한의 물 세례는 거룩을 깨닫는 것이요, 예수님의 성령 세례는 거룩을 행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요한의 물 세례는 옛사람으로 탈출하는 것이요, 예수님의 성령 세례는 새사람으로 채우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에게 성령 세례가 임하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주신 최고의 선물입니다. 그분은 동시에 하나님이 주시는 최후의 메시지입니다. 더 이상의 메시지는 없습니다. 예수님을 거부하면 끝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그 순간부터 심판의 모래시계가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베들레헴의 말구유에 겸손하게 오셨던 예수님은 구름타고 다시 오실 것입니다. 수많은 천군천사의 호위를 받으며 불꽃같은 입에서는 진리의 검을 내뿜으면서 무서운 심판의 주로 오실 것입니다. 그분의 영광 앞에 견딜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아름다운 조연이 되십시오


세례요한의 말씀을 맺으면서 기억해야될 메시지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너나 할것없이 누구나 주연만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는 기꺼이 조연을 감당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세례요한은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 백성에게 불같은 회개의 메시지를 던져서 수많은 사람들을 끌어모았던 스타였지만, 그는 그 자리에서 빨리 내려와야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요한의 위대함이었습니다. 그는 소리 이상의 삶을 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겸손이란 자신의 한계를 아는 것입니다.


우리교회의 가장 훌륭한 봉사자는 추운겨울에 구박을 받으며 주차봉사하시는 분입니다. 지하 2층에서 자동차 매연 맡으면서 봉사하는데 그분들을 볼 때마다 저는 목사로써 부끄럽습니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안내하는 분들입니다. 조연으로, 세례요한과 같은 마음으로 있는 봉사하는 분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임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사라져야 합니다. 디모데후서 2장 20절~21절입니다.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오늘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임할 줄로 믿습니다. 이렇게 산 세례요한은 예수님에게서 ‘여인이 나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자가 없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한 달란트면 어떻습니까 주님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 세례요한처럼 주님을 주연으로 높이는 그런 인생,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그런 겸손한 섬기는 인생을 살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빈들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였던 세례요한

그 요한을 택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겸손하고 가난한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는 사람을

지금도 택하시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회개의 메시지를 듣고 회개하게 하시고,

세례요한처럼 겸손하게 주님을 섬기기를 소원합니다.

평생 주님을 세우는 조연으로 사는 것이

최고의 영광으로 여기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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