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우리는 누가복음의 말씀을 나눕니다.
시대를 가로지르는 놀라운 복음의 축복이 저희 가운데 있기를 축원합니다.
이방인을 위한 복음서
먼저 누가복음에 대한 말씀을 몇 가지 나누길 원합니다. 누가복음은 ‘누가’가 기록한 책입니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에서 누가를 ‘사랑받는 의사’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누가는 성경을 기록한 사람들 가운데 유일한 이방인입니다. 누가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이방인인 데오빌로라는 사람에게 썼습니다. 그래서 누가는 이방인들이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히브리어를 헬라어적인 단어로 잘 바꾸어 썼습니다. 구약성서의 인용도 최소한으로 했습니다. 이런 특징 때문에 누가복음은 ‘이방인을 위한 복음서’라고 불립니다. ‘유대인을 위한 복음서’라고 불리는 마태복음은 유대인인 마태가 유대인들이 예수가 메시아인 것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예수의 족보에 대해서 쓰면서 유대의 첫 조상인 아브라함부터 기록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누가복음은 다르게 접근합니다. 누가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가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을 위하여 오셨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예수님의 족보에 대해 말할 때 아담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아담위에 하나님이 계시다’(눅 3:38)라고 말하며 예수가 모든 열방을 위하여 오신 것을 강조합니다.
또한 누가복음을 보면 누가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해 많이 연구하고 준비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의사로서의 특징이 반영되었습니다. 목사는 사람의 좋은 점을 보려하고, 법관은 사람의 문제점 잘못된 점을 보려하고, 의사는 있는 그대로를 보려고 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의사는 환자의 상태를 있는 정확하게 볼 수 있어야 올바르게 치료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에는 누가의 이런 성품이 반영되어 때로는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성령의 감동이 부어져 ‘성경에서 아름다운 책 중의 하나’ ‘보석 같은 책’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영적 아비의 마음
누가복음 1장 1절부터 4절입니다.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 되고 일군 된 자들의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이는 각하로 그 배운 바의 확실함을 알게 하려 함이로라.” 여기서 ‘말씀의 목격자 되고 일군된 자들’은 사도들뿐만 아니라 예수가 살아계실 때 직접 말씀을 들었던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들이 전하여 준 것을 사람들이 전해 들었고 일부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누가도 사도바울과 함께 다니며 초대교회의 영적인 거장들에게서 들은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데오빌로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누가는 데오빌로를 ‘각하’라고 불렀는데 이 호칭은 로마의 고위직을 부르는 말입니다. 당시에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자기의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릴 수도 있는 너무 위험한 일이었는데, 로마의 고위직에 있는 데오빌로라는 사람이 주님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을 보면서 누가는 큰 감동을 받았을 것입니다.
누가는 그에게 복음을 바르게 전해 그의 믿음을 견고하게 세우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이 마음이 바로 ‘영적 아비의 마음’입니다. 영적 아비의 마음은 그가 복음을 듣고 구원받은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장성한 분량에 이르러 그가 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 있는 또 다른 영적 아비가 되기까지 성장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 땅의 어느 부모가 아이를 낳아놓고 ‘할 일을 다 했다’고 말하겠습니까. 잉태하고 해산 후에 모든 부모는 더 큰 꿈을 꿉니다. 모든 부모는 자녀가 건강하게 성장해 더 좋은 아버지가 되고, 이 땅의 선한 리더십이 되어서 다음세대에도 부흥하기를 원합니다. 바로 이것이 아비의 마음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구원받은 것에서 멈추면 안 됩니다. 구원받았다는 것은 더 큰 성장으로의 초대며 헌신으로 초대입니다. 우리가 받은 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눠서 그가 성장하게 되고 그가 이 감격가운데 동참하기까지 부름 받은 것입니다.
부족한 자를 부르시는 하나님
누가는 데오빌로를 바라보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성실하게 누가복음을 기록했습니다. 이렇게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이 탄생했습니다. 시작은 한 사람을 위한 것이었지만 이 책들은 수천 년을 가로지르며 사람들의 굳은 마음을 녹여 눈물을 만들었고, 꿈을 꾸게 했습니다. 사도행전적인 교회와 역사를 꿈꾸며 선교에 헌신하게 했습니다. 이토록 위대한 역사는 한 사람을 향한 긍휼한 마음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에 주목하십시오. 얼마나 감동적인 사실입니까. 저와 여러분도 이 위대한 역사에 동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름다운 보석 같은 누가복음은 한 사람의 가정을 이야기 하면서 시작합니다. 누가복음 1장 5절에서 12절까지 한 목소리로 읽겠습니다. “유대 왕 헤롯 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하나가 있으니 이름은 사가랴요 그 아내는 아론의 자손이니 이름은 엘리사벳이라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엘리사벳이 수태를 못하므로 저희가 무자하고 두 사람의 나이 많더라 마침 사가랴가 그 반열의 차례대로 제사장의 직무를 하나님 앞에 행할쌔 제사장의 전례를 따라 제비를 뽑아 주의 성소에 들어가 분향하고 모든 백성은 그 분향하는 시간에 밖에서 기도하더니 주의 사자가 저에게 나타나 향단 우편에 선지라.”
하나님께서 위대한 일을 행하시기 위하여 한 사람 누가를 택하시더니 다시 하나님께서 위대한 사역을 위해 한 가정을 택하십니다. 제사장 사가랴와 그 아내 엘리사벳입니다. 이들의 나이가 많았다고 표현했는데, 실제로 60세가 넘었다는 말입니다. ‘아론의 자손’이라는 것은 제사장의 딸이라는 뜻입니다. 이 두 사람은 제사장이고 의인이었는데 자식이 없었습니다. 당시에 아이가 없다는 것은 경제적, 종교적, 사회적으로 비참한, 사람들이 수군거릴만한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살아계실 당시 제사장의 수가 이만 명 정도 되었다고 합니다. 한꺼번에 성전을 섬기기엔 너무 많은 숫자라 조별로 성전을 섬겼습니다. 그것을 ‘반열’이라고 했습니다. 보통 한 조에 천 명 정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상반기에 1번, 하반기에 1번 해서 1년에 2주간 성전을 섬겼습니다.
위대한 역사의 시작 ‘예배’
오늘 본문을 보면 사가랴가 제사장의 직무를 맡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전에서 할 일을 제비를 뽑아 정했는데, 모든 제사장들은 지성소에 들어가서 분향하기를 희망했습니다. 그런데 사가랴가 그 일을 하게 된 것입니다. 천 명 중에 한 명을 뽑는 것이니 사가랴의 가슴이 얼마나 벅찼겠습니까. 동시에 사가랴의 마음 가운데 부끄러움과 갈등이 있었습니다. 그에게 자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가랴는 주께서 부르신 것에 순종하고 나아갑니다. 그리고 지성소에서 놀라운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오심을 예비하는 위대한 사람 세례 요한의 이야기의 시작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위대한 역사는 예배가운데 시작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예배는 주님 앞에 서는 것입니다. 주님의 얼굴을 마주 대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임재를 소망하십니까? 주님을 깊이 만나고 싶으십니까? 여러분 주님을 예배하십시오. 그분을 주목하십시오. 그분으로 마음을 가득 채우십시오. 그러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가랴를 초대하셨습니다. 사가랴는 슬픔과 아픔 가운데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배에 나올 때는 있는 그대로 나오십시오. 슬프고 부끄럽게 나올지라도 거기서부터 예배가 시작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예배 가운데 눈물과 수치는 소명으로 바뀔 것입니다. 복음은 눈물의 자리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운 꽃과 같습니다. 복음은 절망의 골짜기에서 피어나는 향기로운 제사요, 하나님께 드리는 노래와 같습니다. 복음은 죽어가는 사람이 살아날 수밖에 없는 생명력입니다. 복음을 대하는 사람마다 살아났고, 복음을 대하는 사람마다 일어났습니다. 복음을 대하는 사람마다 어둠의 장막을 걷어 제치고 빛 가운데로 나옵니다. 사가랴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슬펐습니다. 민망했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사람들도 자기를 그렇게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지만 주님 앞에 나아갔습니다. 부끄러워도 가야하고, 힘들어도 가야합니다. 사람들이 뭐라고 하더라도 예배 해야 합니다. 그러면 거기서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위대하신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께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예배하는 사가랴에게 다가오셔서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1장 12절에서 17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사가랴가 보고 놀라며 무서워하니 천사가 일러 가로되 사가랴여 무서워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요 많은 사람도 그의 남을 기뻐하리니 이는 저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소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저희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니라 저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앞서 가서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리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리라.” 사가랴가 지성소에서 하나님께 무슨 기도를 했겠습니까? 사가랴는 너무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을 하나님께 아뢰었을 것입니다. 천사는 “사가랴야 무서워하지 말고 너의 간구를 내가 들었노라”라며 모든 민망과 슬픈 이야기를 꺼냅니다. 그리고 “아내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을 것이니 그 이름을 요한이고 하고,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많은 사람이 그의 탄생을 기뻐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할렐루야! 이 분이 주님이십니다. 주님은 먼저 다가오시는 분이며, 간구를 들으시는 분입니다. 외칠 수 없는 기가 막히는 상황 속에서도 들으시는 분이 주님입니다. 하나님께서 사가랴의 수치를 한 순간에 기쁨으로 바꾸셨습니다. 주님에게는 그런 능력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강하고 담대하십시오! 포기하지 마십시오! 힘들어도 계속 걸어가십시오! 주님은 한 순간에 모든 상황을 바꾸실 수 있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하나님은 정확한 때를 위해 우리를 주목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보기에 사가랴와 엘리사벳에게는 늦게 오신 것 같습니다. 60세가 넘어서, 포기하고 부끄러움 가운데 있을 때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때 “내가 너희에게 놀라운 약속을 줄 것이다. 너는 잉태하게 될 것이고, 그가 약속의 씨앗이 되고 생명이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며 위대한 사람 세례요한에 대해 이야기하십니다.
약속을 잉태한 사가랴
하나님께서 세례 요한에 대해 세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첫째, ‘저가 주 앞에 큰 자가 될 것이다’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 큰 자가 있고, 사람 앞에 큰 자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큰 자가 되고, 사람 앞에 작은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약속이 잉태되면 하나님 앞에 큰 자의 길로 들어섭니다. 사람들 앞에 큰 자가 되는 것을 소망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 발버둥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눈물 흘리는 사람은 사람들 앞에서 당당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울면서 기도하는 사람은 사람들 앞에 무릎 꿇지 않습니다. 당당함, 용기, 담대함은 주님 앞에 무릎 꿇는 사람만이 경험하는 능력입니다.
둘째, ‘포도주나 소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을 것이다’입니다. 다시 말하면 거룩한 자 구별된 자가 된다는 뜻입니다. 거룩은 마치 주인이 밭에 심긴 무를 뽑아 창고에 넣는 것과 같습니다. 무가 잘나서, 똑똑해서 거룩해진 것이 아니라 주인이 택했기 때문에 거룩해 진 것입니다. 거룩함은 구별되었다는 뜻입니다. 구별한다는 것은 구약에서 자주 등장합니다. ‘주의 뜻과 주의 비전을 그에게 맡긴다’는 뜻으로 쓰였습니다. 복음이 오면 비전이 임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비전이 나를 달려가게 합니다. 전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열정이 마음가운데 불처럼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성령께서 오실 때 이런 일어나게 됩니다. 세례요한에게 그런 역사가 일어날 것이라고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셋째, ‘저가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앞서가서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리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리라’입니다. 엘리야는 북이스라엘의 가장 어두웠던 아합왕때의 선지자입니다. 그는 목숨을 걸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외쳤습니다. 그는 생명에 위협을 받고 도망을 다녔지만 한 번도 그의 입을 통해 외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바알선지자와 싸우며 처절한 심정으로 기도했습니다.(왕상 18:37)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에게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에게 승리를 주셨습니다. 그가 기도하니 하늘문이 열리고, 그가 기도하니 하늘문이 닫혔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먹이셨습니다. 숨기셨습니다.
여러분, 이런 약속을 잉태하고 싶지 않습니까? 성전에서 여호와께서 말씀하실 때 그 약속이 잉태되었습니다. 약속을 잉태한 사람, 꿈을 잉태한 사람의 행복이 누가복음에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꿈을 잉태하는 주의 백성이 되기를 바랍니다. 날마다 기대하시면서 기도하십시오. 예배하십시오. 복음은 눈물의 골짜기를 웃음의 골짜기로 바꾸어 줍니다.
기도합시다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 또 감사를 드립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에게 눈물과 아픔 민망함,
차마 부끄러워서 말할 수 없는 그 자리에서 구원하신 주여
우리도 구원하여 주셔서 생명의 말씀이 우리가운데 잉태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좋은 말씀 > 하용조목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기 예수의 탄생 (0) | 2018.01.12 |
---|---|
마리아의 노래 (0) | 2018.01.11 |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 (0) | 2018.01.08 |
세상을 이기는 믿음 (0) | 2018.01.06 |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0) | 2018.01.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