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메시지를 들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눈에 보이는 형제와 자매를 사랑하게 되어있다는 내용입니다.
믿는 자는 사랑하며 삽니다
오늘은 ‘세상을 이기는 믿음’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듣기 원합니다. 믿음이란 무엇인지, 믿는 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듣기를 원합니다. 1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니
또한 내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첫째, 믿는 자는 사랑하며 삽니다. 1절 말씀은 믿음과 사랑을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믿음’에는 지(知)·정(情)·의(意)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을 믿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어떤 일을 행하셨으며 어떤 인생을 사셨는지 알아야 합니다. 아는 것이 없으면 올바로 믿을 수 없습니다. 또한 감정적으로 반응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감정은 중요하지 않다고 합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다 보면 어떤 때는 눈물이 납니다. 어떤 때는 가슴이 뭉클합니다. 그것도 믿음의 한 요소입니다. 그리고 의지적으로 결단해야 합니다. 믿기로 결정했으면 힘들어도 끝까지 믿어야 합니다.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하려는 대상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사랑할 수 없습니다. 상대방에게 오렌지 알레르기가 있는데 오렌지만 선물한다면 슬픈 일입니다. 사랑할 대상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상대방에 대한 감정도 중요합니다. 매일 만나는데 기쁘지도 않고 설레지도 않는다면 슬픈 일입니다. 또한 사랑에는 의지가 필요합니다. 사랑하기로 결정했으면 그 사람에게 화내지 않고 끝까지 믿어주고 사랑해야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말인데, 의지, 감정, 지식이 부족하면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에 대한 감정을 가지고 말씀을 의지적으로 따라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믿으면 하나님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보이는 형제자매를 지적, 감정, 의지적으로 사랑하게 됩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지식과 감성과 의지가 흘러넘치기를 축원합니다.
사랑하면 말씀에 순종합니다
둘째,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분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2~3절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믿음은 사랑이요, 순종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그분의 말씀을 지키게 됩니다. 예수님도 요한복음 14장 21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누군가를 사랑하면 말을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자식을 이기는 부모는 없습니다. 임신을 한 아내가 딸기가 먹고 싶다고 하면 남편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구해옵니다. 무서워서가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향한 순종입니다.
3절의 ‘무거운 것’을 헬라어로 살펴보면 ‘부담이 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계명들은 부담이 되는 것이 아니다’입니다. 어떤 사람은 주님의 말씀을 부담스럽게 듣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행복하게 듣습니다. 어떤 사람은 부담스럽게 자녀를 사랑합니다. 어떤 사람은 부담스럽게 일을 합니다. 데이트를 해도, 예배를 드려도 부담스럽게 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행복하게 자원하는 마음으로 합니다. 행복하게 사느냐 부담스럽게 사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집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계명을 부담스럽게 지키는 것이 아니라 감사함으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지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사랑이요 믿음입니다. 여러분은 요즘 부담감으로 살고 계십니까, 아니면 행복감으로 살고 계십니까? 예배를 드리는 것이 부담스럽습니까 행복하십니까?
우리가 행복하길 원하시는 하나님
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주셨을까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행복하라고 말씀을 주셨습니다. 신명기 10장 13절에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행복하라고 주신 말씀을 따라 살지 않으면 사고가 납니다. 미워하지 말라고 했는데 미워하고, 용서하라고 했는데 용서하지 않고, 사랑하라고 했는데 사랑하지 않으면 사고가 납니다. 인생이 슬퍼집니다. 그러나 계명을 따라 살면 깨어진 곳이 회복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여러분이 부담감과 거북함으로 말씀을 대하지 않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행복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실천하며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기왕 하나님을 믿기로 결정했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확실히 믿으십시오. 저는 확실하게 믿는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신다’, ‘하나님께서 나를 무척 사랑하신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가장 합당한 것들을 나에게 허락하신다’ 등입니다.
얼마 전 손이 부러졌는데 저는 주께서 뜻이 있으셔서 이 일을 하셨을 것이라 믿습니다. 제가 어떤 일을 당해도, 어떤 형편에 처해 있더라도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것이기 때문에 내게는 가장 좋은 일이요 가장 좋은 형편이라고 믿습니다. 그 때 승리가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기왕 믿을 거라면 하나님의 말씀을 통째로 믿을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라는 것을 하십시오.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마십시오. 그래야 사고가 나지 않습니다. 사랑하라고 하는데 계속 미워하고 시기하고 미워하면 부딪혀서 깨어지고 사고가 납니다. 인생이 슬퍼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사람은 승리하며 살게 됩니다.
믿는 자는 반드시 승리합니다
4,5절입니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셋째, 믿는 자는 승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확실하게 믿고 따라가는 자는 이깁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긴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다 때려 부순다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제압하는 것도, 통제하는 것도 아닙니다. 여기서 이긴다는 단어에는 크게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갈 길을 간다’와 ‘살린다’입니다.
예수님을 묵상하면 이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왜 가셨을까요? 저와 여러분을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40일 금식기도를 마친 예수님을 사탄이 시험했습니다. 돌로 떡을 만들어라, 높은 곳에서 뛰어 내려라, 나에게 절을 하면 세상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그 길로 가지 않고 십자가의 길로 가셨습니다. 그 길만이 사람을 살리는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 때도 그랬습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남자만 5천명을 먹이자 사람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피하셨습니다. 왕이 되는 것은 예수님의 길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승리란 가야할 길을 가는 것입니다. 승리란 통제하고 우위에 있고 압제하는 것이 아니라 밑으로 들어가 그를 섬기고 살리고 세워주는 것입니다. 믿는 자가 승리한다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선진들에게서 믿음을 배우십시오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말하고 있습니다. 노아는 120년 동안 방주를 지었습니다.(히 11:7) 비가 오지 않는데도 산에 배를 만들었습니다. 당연히 사람들이 와서 보고 놀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비가 올 것을 믿고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살았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은 갈 곳을 알지 못한 채 길을 떠났습니다.(히 11:8) 이것이 믿음입니다. 다시 말해 믿음은 상황이 아니라 약속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사라는 믿음으로 아이를 잉태했습니다.(히 11:11)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이삭을 하나님께 드렸고(히 11:17), 이삭과 야곱은 믿음으로 자녀들을 축복했습니다.(히 11:20, 21) 여러분, 믿음의 역사는 당대에 끝나지 않습니다. 이삭과 야곱은 자기가 죽는 순간에도 자녀들을 불러서 그들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했습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나는 죽어서 이들의 인생을 돌볼 수 없지만 여전히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이들에게 복을 주시리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모세의 부모는 믿음으로 임금의 명령도 무서워하지 않았습니다.(히 11:23) 임금의 명령보다 하나님의 명령이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믿음으로 모세는 바로의 아들임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좋아했습니다.(히 11:24, 25)
여러분, 믿음은 선택입니다. 모세가 믿음으로 애굽의 왕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40년 동안 광야에서 고생을 하는데도 애굽의 왕궁을 그리워하지 않았습니다. 힘이 들어도 애굽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믿음이란 한번 출발하고 돌아가지 않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선택입니다. 믿음이란 상황을 바라보지 않고 약속을 믿고 걸어가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최후의 승리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물·피·성령이 증거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증거가 있습니까? 6~8절 말씀입니다.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자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
이 말씀은 우리의 믿음이 막연한 것이 아니라 확실한 증거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원문 그대로 보면 이런 뜻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예수님을 믿는 데는 세 가지 증거가 있다. 첫째는 물이요, 둘째는 피요, 셋째는 성령이다.” 이것이 본문의 내용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은 ‘예수’와 ‘그리스도’의 합성어입니다. ‘예수’는 이름입니다. 이스라엘은 아직도 예수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라는 말은 ‘기름부음을 받았다’라는 말입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선택한 사람에게 기름을 부었습니다. ‘그리스도’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메시아’인데 정확하게 번역하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구세주’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은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가 바로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메시아다’라는 뜻입니다.
그분이 메시아라는 증거가 물과 피와 성령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처음 시작하실 때 세례요한에게 물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그 때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렸습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자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것이 예수가 메시아라는 중요한 증거입니다.
둘째,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가 증거입니다. 구약의 율법을 따라 피를 흘려서 그분은 우리의 구세주가 되셨습니다. 물과 피는 객관적이고 역사적인 증거입니다. 이것은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기 때문입니다.
셋째, 물과 피가 예수가 메시아라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라는 것을 믿게 하시는 분이 성령님입니다. 물 세례와 십자가 피의 사건은 역사적이고 객관적인 증거요,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은 내적인 증거요 주관적인 증거입니다. 이 세 가지가 합쳐질 때 우리는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가 메시아라는 증거가 어디 있느냐고 묻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역사적인 사건을 제시합니다. 성경은 소설이나 신화가 아닙니다.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 길의 끝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과연 예수님을 믿고 그 길을 가는 자에게 주어지는 하늘의 복은 생명입니다. 9~12절입니다.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거를 받을찐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것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믿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생명이 있는 자와 없는 자가 섞여 살고 있습니다. 얼핏 보기에는 똑같지만 생명이 있는 자는 다시 살아날 것이요, 생명이 없는 자는 죽는 것으로 끝날 것입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저는 여러분이 예수님에 대한 확실한 믿음으로 승리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네 가지를 믿으십시오.
첫째, 예수님만이 생명의 길입니다. 겁먹지 말고 전도하십시오. 욕을 먹어도 전도하십시오. 120년 동안 배를 만든 노아처럼 언젠가 다시 오실 예수님을 믿고 확실하게 전하십시오. 그래야 마지막 날 창피를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께서 나를 사랑하십니다. 그래야 승리합니다.셋째, 예수님께서 나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습니다. 넷째, 예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십니다. 영의 눈을 떠서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러면 삶이 달라집니다. 찬양이 달라집니다. 얼굴 표정이 달라집니다.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며 승리하고 끝까지 성도의 길을 걷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기도합시다.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옵소서.
믿음의 길을 선택하게 하옵소서.
선택한 길을 돌아가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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