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하용조목사

하나님의 영 vs 적그리스도의 영

새벽지기1 2018. 1. 2. 13:29


수년전 댄 브라운의 소설 ‘다빈치코드’가 전 세계 서점가를 휩쓰는 슈퍼 베스트셀러로 등극했습니다.

이 책은 지금까지도 많은 독자들이 읽고 있습니다.   


예수의 신성을 부인하는 영지주의    


‘다빈치코드’는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시작으로 전개되는 가상 추리소설입니다. 이 소설에 예수님이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았는데 이 아이의 자손이 성모 마리아를 숭배하는 권위주의적 가톨릭교회의 핍박을 계속 피해왔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자손들을 지킨 비밀 결사조직이 있었는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갈릴레오 갈릴레이, 레오나르도 다빈치, 빅토르 위고 같은 사람들이 이 조직의 수장들로서 권위주의적인 가톨릭에 대항해서 르네상스를 일으켰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며 도덕적인 성인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제대로 이해하는 크리스천에게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이 책의 터무니없는 상상력은 의외로 뿌리가 깊습니다.


이 책은 초대교회부터 교회를 어지럽혔던 영지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오늘날 뉴에이지의 뿌리가 되기도 하는 영지주의의 기본철학은 고대 헬라철학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영지주의는 눈에 보이는 세상은 악한 것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만 선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므로 이 악한 세상을 만든 하나님도 결코 선한 존재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진짜 하나님은 더 높은 곳에 계시고 그 하나님의 하수인이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성육신한 존재가 아니라 보통 인간인데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는 순간 무당에게 신이 내리듯이 신이 내려서 그에게 머물렀고, 악한 육체에 갇혀 신음하는 사람들을 자유케 하라는 사명을 받았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다가 겟세마네에서 병사들에게 체포되는 순간 신이 떠나서 보통 인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십자가에서 고통 받고 죽은 것은 인간 예수이지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빈치코드’는 결혼도 하고 아기도 낳는 예수님은 죄가 없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모범을 보여주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도 대속의 죽음이 아니라 의를 위해 우리가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를 보여준 선각자의 죽음이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되려는 인간 


영지주의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위대한 종교지도자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가 세상의 모든 죄를 짊어진 구세주인 것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예수만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유일한 길임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영지주의자들은 성경에서 말하는 예수를 있는 그대로 믿으면 원시적인 신자들이고, 자신들은 영적인 비밀을 아는 영적 엘리트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오늘 말씀을 통해 이들의 주장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적그리스도임을 선언합니다. 2~3절입니다.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찌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한다는 것은 복음서에 나와 있는 예수님을 부인하고 자기들이 만든 지성의 예수를 믿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부인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예수님을 통한 죄사함이 없었다는 것이고, 우리는 아직까지도 죄를 끌어안고 신음하며 살아야 합니다. 만일 예수님이 육체로 오시지 않았다면 부활도 없고, 우리는 영생의 소망이 없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 기독교 신앙의 모든 토대가 무너지고, 기독교는 하나의 도덕적인 지침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입니다. 이들은 예수를 격하시켜서 하나님의 자리에 서려고 했습니다. ‘영적인 지식만 있으면 너도 예수 같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네 안에 있는 신을 발견하라’는 뉴에이지의 주장처럼 말입니다.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것은 받아들이고, 자신들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성경의 기적은 거부합니다. 복음을 열방으로 전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수수께끼처럼 은밀하게 찾아가야 하는 것으로 전락시켰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복음은 수수께끼가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알 수 있도록 빛으로 주신 것이 복음입니다. 하나님은 숨기시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열방에게 복음을 알리기를 원하셨습니다.


진짜를 공격하는 가짜  


사도 요한은 오늘 본문에서 영지주의에 대한 몇 가지 중요한 설명을 합니다.

첫째, 이미 교회 안으로 깊숙이 침투했다는 것입니다.

1절을 보십시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다’고 했습니다. 적은 이미 한가운데로 침투해서 공격해오고 있으니 정신을 바짝 차리라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예수를 믿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복음을 희석시킵니다. 교활하게 위장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속아 넘어갑니다. 세상에 가짜가 많다지만 제일 가짜가 많은 것은 기독교입니다. 가짜를 보셨을 때 놀라지 마십시오. 진짜가 너무 좋기 때문에 예상할 수 있는 일입니다. 다만 정신을 바짝 차리고 분별해야 합니다. 왜 각국 정부에서 위조지폐 단속에 신경을 곤두세우는지 아십니까? 가짜 돈이 진짜 돈의 가치를 떨어뜨리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핍박하는 것보다 더 무서운 공격은 가짜를 심는 것입니다. 가짜를 믿는 사람은 진짜를 전해도 믿지 않습니다. 마음을 닫아버리는 것입니다.


둘째, 이들의 세력은 생각보다 큽니다.

1절에 ‘많다’는 단어에 주목하십시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가짜가 있습니다. 이들은 독자적으로 움직이지 않고 사단의 세력에 조종을 받습니다.


셋째, 끝없이 자기를 알립니다.

5절을 보십시오. “저희는 세상에 속한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저희 말을 듣느니라.”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라는 말을 헬라어로 보면 ‘계속 말을 한다’는 뜻입니다. 가만히 있지 않고 계속 말을 합니다. 크리스천들은 세상에 나가면 무서워서 입을 다물고 있는데, 가짜들은 말을 굉장히 많이 합니다. 이들은 어떻게 해야 세상을 이해시킬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이들의 말은 지적이고 세련되고 합리적입니다.


넷째, 이들은 편집한 복음을 전합니다.

십자가, 부활, 헌신, 순교, 성령 같이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은 다 제거하고 좋은 것만 말합니다. 자기 개발, 성취, 도덕, 정의, 적당한 쾌락, 평등 등을 이야기 합니다. 이것을 누가 거부할 수 있겠습니까. 이들은 세상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알기 때문에 환영받고 인기가 있습니다. 영화, 인터넷, 뉴스, 잡지 등에서 이들의 생각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빈치코드’ 같은 소설이 상상을 초월할 만큼 인기인 것입니다. 성경은 한 번도 안 읽은 분도 ‘다빈치코드 몇 페이지에 이런 말이 있는데 목사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하고 묻습니다. 그만큼 매력적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자녀  


4절과 6절에서 사도 요한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다’고 두 번씩이나 강조합니다. 이 말은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뜻입니다. 씨가 다르고 혈통이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수많은 가짜 중에도 진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주파수가 맞는 사람만 듣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으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식별할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6절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 머리가 나빠서 듣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씨가 없어서 들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7절입니다.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주님이 항상 우리 안에 거하셔서 우리의 생각과 감정의 틀을 만드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을 압니다. 오랜 시간 함께 지낸 선수는 감독의 눈빛만 보고도 움직이듯이 우리는 주님을 압니다. 주님을 깊이 사모하십시오. 어떤 이단이 와도 거부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길 것입니다.


건강한 영적체질을 만드십시오. 그러면 가짜를 이길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2장 12절,13절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세상 사람들이 세상의 언어를 알아듣듯이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언어로 한 말을 알아듣습니다. 언젠가 지방에 집회를 인도하러 갔는데 처음 가본 곳이었는데도 오래된 친구처럼 그곳 성도들과 여러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서로 통하기 때문입니다. 찬양과 설교를 들을 때 영적인 공감대가 생깁니다. 어렵고 힘들지만 영적으로 통하는 사람들과 대화하면 자연스럽게 일이 풀립니다. 그래서 성령충만한 교회는 싸우는 일이 없습니다. 갈등이 생겨도 금세 해결됩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예수님 중심으로 대화하기를 바랍니다. 성령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서로 통하는 말이 있기를 바랍니다. 은혜를 서로 나누고 영적인 대화를 하고 예수님을 대화의 한 가운데 둘 때 우리는 세상을 초월하는 영적인 메시지를 공유하게 될 것입니다. 


이미 세상을 이긴 예수님  


하나님의 씨를 가진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강합니다. 이미 악한 세력을 이겼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 악한 세력이 무섭고 독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그들을 이겼습니다. 우리 안에 계신 분이 세상보다 크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이미 십자가에서 치명타를 입히셨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세력은 무서워 보이지만 갇혀있는 맹수와 같습니다. 결코 여러분을 건드리지 못합니다. 할렐루야! 이것을 믿으십시오. 세상은 강합니다. 그러나 주님만큼 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님 한분만으로 나는 만족하는 것입니다. 영적 싸움에서 답답하고 힘들 때마다 이 말씀을 붙잡고 주장하기를 바랍니다. 내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십니다.


사탄은 문제를 크게 만들고 하나님을 작게 만듭니다. 그러면 두려움이 옵니다. 속지 마십시오. 그 어떤 문제도 하나님보다 크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보십시오. 이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의 눈이 커지면 하나님이 크게 보입니다. 하나님이 크게 보이면 문제가 작아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작게 보면 어떤 문제도 커 보입니다. 요한복음 16장 33절입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보면 평안과 담대함이 생길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살지만 세상을 이기는 기쁨과 소망이 있습니다.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기도와 말씀묵상 후에 판단하십시오. 하나님의 자녀들은 트렌드에 끌려가는 사람이 아니라 트렌드를 만들어가는 사람입니다.


복음에 설탕을 타지 마십시오. 예수님은 도덕적인 스승도 아니요, 요술방망이처럼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심부름꾼도 아닙니다. 내 뜻을 관철하기 위해 기도하지 마십시오. 내 뜻을 꺾고 주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그분은 우리의 찬양과 존귀와 영광을 받기에 합당하신 분입니다. 어떤 인본주의적 신앙도 우리는 단호히 대적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붙들어야 합니다. 가짜 영적 지도자들로부터 우리를 지켜내야 합니다. 당당하게 사십시오.  성령님께 함께 승리를! 6절을 다시 보십시오. 모든 사람에게 환영받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전하는 메시지에 사람들은 두 가지 반응을 보일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화를 낼 것이고, 어떤 사람들은 기뻐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고린도후서 2장 14절~17절을 함께 보겠습니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 우리는 수다한 사람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하나님의 사람들은 수려한 말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뭔가 새로운 것, 복음의 놀라운 비밀을 안다고 하는 사람들을 조심하십시오. 하나님의 자녀들은 화려한 말로 복음을 혼잡하게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겸손하고 단순하게 말합니다. 말을 많이 하지 않지만 능력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단은 수 없이 많은 가짜 선지자들을 보내서 우리의 믿음에 혼란을 주려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1절)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와 함께하시는 예수의 영이 하나님의 영을 분별하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평안과 능력이 함께 할 것입니다. 올 한해도 예수님의 음성만 듣고 사시길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은혜를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수없이 많은 가짜가 우리를 혼란스럽게 합니다.

우리는 살아계신 예수님의 음성에만 귀를 기울이게 하옵소서.

오직 날마다 성령충만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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