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구원자로, 메시아로 이 땅에 보내시기 위해 일하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차근차근 과정을 진행하셨습니다. 첫째 사가랴와 엘리사벳이라는 신실한 부모를 준비하셨고, 그들에게 태어날 세례요한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셨습니다. 둘째,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마리아에게 일어날 일들을 예언합니다. 즉 ‘네가 성령으로 잉태할 것이며, 그분이 바로 메시아다’라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삶에서 이런 일들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며 하나님의 역사에 동의합니다. 이것이 누가복음 1장 38절 이전의 말씀입니다.
두 여인의 만남
오늘 본문은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을 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이 은혜로운 두 여인의 만남 속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먼저 39절에서 40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 때에 마리아가 일어나 빨리 산중에 가서 유대 한 동네에 이르러 사가랴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문안하니.” 세례요한이 예수님보다 6개월 빨리 잉태되었습니다.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한 때는 이미 마리아도 예수님을 잉태한 때였습니다. 이 두 여인이 만났을 때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요. 41~44절입니다.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문안함을 들으매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지라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내 주의 모친이 내게 나아오니 이 어찌 된 일인고 보라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에 아이가 내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도다.” 마리아가 방문했을 때 엘리사벳은 ‘아이가 내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다’고 말합니다. 41절과 44절에 이것을 반복해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세례요한이 예수님의 방문을 환영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두 가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첫째 태아의 중요성입니다. 난자와 정자가 만나서 생명이 잉태되는 순간부터 그 생명은 귀한 것입니다. 그 생명에 인격이 형성되고, 신앙의 본바탕이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엄마끼리 기뻐 뛴 것이 아니라 뱃속에 있는 아기들이 뛰었다는 것에 주목하십시오. 아기들끼리 서로 영적 커뮤니케이션을 한 것입니다. 우리가 임신했을 때 태중에 있는 아기를 귀한 생명으로, 인격체로 여기고 그 아이를 위해서 중보기도하고 안수해야 합니다. 영적으로 돌봐주어야 합니다. 태아 때부터 이 일을 시작해야 합니다. 낙태를 생각하거나, 뱃속의 아이를 저주하거나, 불편한 소리를 하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우리는 태아의 생명을 존중해야 합니다. 낙태가 하나님의 뜻인지 영적으로 더 깊이 있게 생각을 해야 합니다.
예수 안에 있는 참 기쁨
둘째 예수님을 만나는 사람에게는 기쁨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 태중의 아이가 무얼 알겠습니까. 그런데도 세례요한은 예수님이 자신의 집을 방문한 것을 기뻐해서 뛰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엄마 배를 막 찬 듯합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인생의 진정한 기쁨은 예수님을 만나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더 깊이 알 수 있었습니다. 삶의 기쁨은 내 환경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환경과 집이 좋고, 소유와 재능이 많다할지라도 진정으로 예수를 만나지 않으면 참 기쁨이 없는 것입니다. 엘리사벳은 마리아를 만나서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41절입니다.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문안함을 들으매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지라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첫째 성령충만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성령충만이 왜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중요한지 아십니까? 성령충만해야 예수 그리스도를 닮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충만해야 여러분의 약점을 극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충만해야 여러분의 성품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충만해야 좋은 마음, 선한 마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엘리사벳이 성령충만해서 한 말이 무엇입니까? 42절입니다.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성령충만한 엘리사벳의 입에서 축복의 말이 나옵니다. 사람을 격려하는 말이 나옵니다. 은혜로운 말이 나옵니다. 엘리사벳은 “여자 중에 당신이 복이 있고, 당신의 태중에 있는 아이도 복이 있습니다”라고 선포합니다. 마리아가 하나님의 거룩한 도구로 쓰임을 받기 때문이요, 태중의 아이가 하나님의 동역자로 쓰임을 받기에 때문입니다. 성령충만과 복 엘리사벳은 복에 대해 새로운 개념을 정리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복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건강, 돈, 승진, 합격 등 하나님께 무언가를 받는 것이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1차원적인 복입니다. 이것은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생각할 수 있는 복입니다. 부처님 앞에 가서 열심히 손을 비비며 절하는 사람들도 그런 복을 위해서 애를 쓰며 육체의 고통도 감수하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은 그 수준에 머물러서는 결단코 안 됩니다. 우리가 추구하고 우리가 사모하고 우리가 받아야 될 복은 무엇입니까? 여러분 자신이 하나님을 위해 쓰여지는 것, 여러분이 번 돈이 하나님을 위해서 사용되는 것이 복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은사, 재능을 하나님과 교회를 위해 사용하는 것이 복입니다. 이것은 차원이 다른 복입니다. 세상은 ‘받는 것이 복’이라 말하지만 성경은 ‘주는 것이 복’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이제부터 여러분들도 엘리사벳의 선포한 것과 같은 복이 있는 형제, 자매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과 교회를 위해 쓰임 받는 것이 나에게 축복이라고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진정한 성경적 복입니다.
엘리사벳은 동시에 믿음이란 무엇인가를 정의해서 선포합니다. 45절입니다. “믿은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주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리라.”엘리사벳은 마리아에게 ‘너는 하나님께 쓰임을 받기 때문에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45절을 보면 ‘네게 믿음이 있기에 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믿음이 있는 여러분도 복이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리아의 믿음
엘리사벳이 마리아에게 말한 ‘믿음이 있다’는 것은 세 가지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첫째, 마리아가 하나님을 신뢰했다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 신뢰입니다. 하나님께서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는 것입니다. 내 인격과 내 이성의 한계를 넘어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이것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시험에 들기 시작합니다. 삶의 모든 것이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마리아가 남자를 모르는데, 남자와 잔적이 없는데 어떻게 임신을 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이것을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이해할 수도 없고, 생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마리아도 가브리엘 천사에게서 하나님께서 그런 일을 하신다고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 일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몰랐을 것입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하나님을 신뢰했기에 그분이 하실 일도 신뢰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신뢰는 그분이 행하시는 모든 일들에 대한 신뢰로 이어집니다. 내가 아무리 이해할 수 없고, 생각하지도 않았던 얼토당토않은 일을 당했을지라도 ‘주님 내가 지금은 이해할 수 없지만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이라면 신뢰합니다’ ‘내 삶에서 내 안에서 이와 같은 일들을 행하십시오’라고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런 의미의 믿음이 우리 신앙생활에 있는 지 깊이 묵상해야 할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신다는 것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믿었으며, 하나님의 말씀이 반드시 이루실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이것이 마리아의 믿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마리아
엘리사벳의 말을 듣고 마리아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46~47절입니다. “마리아가 가로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마리아가 엘리사벳의 소리를 듣고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한다’고 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은 어떤 여인입니까? 앙드레김 같이 유명 디자이너의 옷을 입은 여인입니까? 아닙니다. 성령충만한 여인이 가장 아름답습니다. 우리는 46 ~47절 말씀에서 성령충만한 여인을 볼 수 있습니다. 은혜와 사랑이 충만한 여인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여인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화장품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헤어스타일이나 의상에 있지 않습니다. 여인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영혼에서 나옵니다. 자매 여러분, 마리아를 생각하면서, 마리아의 아름다움을 소망하면서 찬양을 해보십시오. 그러면 남편의 눈에 여러분은 천사로 보일 것입니다. 남편들의 눈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보일 것입니다. 마리아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48~49절입니다. “그 계집종의 비천함을 돌아 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능하신 이가 큰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마리아는 두 가지 내용으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첫째, 계집종의 비천함을 돌아보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마리아는 자신을 ‘계집종’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구원받을 자격이 없는 나 같은 여자를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쓰임 받을 자격이 없는 나 같은 비천한 여자를 하나님이 구원하시고 선택하셨다는 것입니다.
둘째, 능하신 이가 큰일을 자신에게 행하신 것을 찬양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 땅에 메시아를 보내기 위해 자신을 택한 것을 찬양한 것입니다. 나같이 연약한 사람, 비천한 사람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큰일을 이루신다는 것이 마리아가 찬양하는 내용의 핵심입니다. 북받치는 구원의 감격 이것이 신앙의 기본입니다. 이것이 있어야 감사의 찬양을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있어야 구원의 기쁨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있어야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 기쁨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있어야 하나님 앞에서 겸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없으면 영혼과 심령이 병듭니다. 교만해지기 시작합니다. 교회에서 일을 할 때 여러분에게 실력과 능력이 있어서, 여러분이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으로 일한다면 큰 착각입니다. 일할 사람은 많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다른 누군가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일을 맡기셨는가를 묵상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이곳을 떠나도 이곳으로 올 사람은 많습니다. 문제는 수많은 사람 중에 하나님께서 ‘나’를 택하셨다는 것입니다. 나 같이 비천한 사람을 하나님께서 불러서 사용해주신다는 사실에 대한 기쁨, 감사, 은혜를 찬송하십시오. 이것이 마리아의 노래의 핵심입니다. 우리는 이 구원의 은혜, 택함 받음의 감격을 경험해야만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겸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더 큰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저는 마리아의 찬양이 여러분의 찬양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함께 부르는 마리아의 노래
마리아가 어떻게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는지 50~55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를 공수로 보내셨도다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및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 하니라.” 마리아가 더욱 구체적으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네 가지 모습에 주목합니다. 첫째, 49절 후반절부터 보면 마리아는 거룩하고 긍휼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거룩이란 의로움입니다. 법입니다. 긍휼이란 사랑입니다. 용서입니다. 거룩과 긍휼은 아름다운 조화입니다. 하나님에게는 의와 사랑이 함께 있습니다. 둘째, 교만한 자를 낮추시고 겸손한 자를 높이시는 하나님입니다. 여러분이 겸손해야 하나님께서 높여주십니다. 거꾸로 하나님은 교만한 사람을 낮추십니다. 우리는 교회 안팎에서 교만한 자를 낮추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셋째, 주린 자를 먹이시는 하나님입니다. 넷째, 조상에게 주신 약속을 반드시 후손들에게 이루시는 하나님입니다. 마리아는 이 네 가지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마리아의 찬양을 살펴보면 마리아의 신앙에 대한 세 가지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첫째, 마리아의 신앙은 언제나 하나님 중심이었습니다. 사람중심이 아니었습니다. 마리아의 삶에서 언제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었습니다. 언제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생각과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둘째, 하나님을 바로 알고 믿는 신앙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분인가를 고백하는 내용을 보면 마리아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올바로 알고 믿고 섬기는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셋째, 마리아의 신앙은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체험하는 신앙이었습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을 이론으로 말씀 안에서만 알고 믿지 않고 삶의 자리에서 구체적으로 체험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에 대한 경험이 있었기에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노래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마리아의 노래가 여러분의 노래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이번 주일동안 하나님의 택하심과 구원의 은혜가 무엇인지 깨닫고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느낌을 찬양으로 고백하십시오. 입을 열어 여러분이 서 계신 그곳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뻐하십시오. 그것이 여러분을 겸손하게 하고, 그것이 여러분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더 열도록 도
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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