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컬럼4

우리가 가진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새벽지기1 2017. 12. 19. 08:40


어릴 때 어린이 수요 저녁예배에 참석하고 집으로 가는 중이었다.
누군가로부터 억울한 일을 당해 속히 상해 울었다.

그 울음을 그대로 유지해서 어머니에게 하소연하려고 했는데 눈물이 집에 오는 도중 그치고 말았다.

속이 상한 일이 생각나면 계속 울음이 나와야 하는데 그치고 만 것이다.

집에 돌아와 어머니에게 강하게 호소했지만 나의 억울함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적이 있다.


유학 가기 전 한국에서 머리를 감는 것은 욕실에서 행하곤 했지만

내 머리카락이 얼마나 빠지는지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샌가 내 머리카락이 빠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유학 중 사워하는 중에 내 머리카락의 양이 예전과 같지 않다는 것이었다.
나는 슬그머니 걱정이 앞섰다. 혹시 머리카락이 빠져 대머리가 되질 않을까?

유전적이라고 하는데 혹시 내가? 하지만 지금까지 그걱정은 없다.


또 유학 전부터 달리기를 시작했는데 어느 날 숨이 차서 달리기가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당황스러웠다. 내 생각과 행동이 따로 노는 것이었다.

밤샘을 한다고 하더라도 실증이 나서 지쳐 잠을 취하곤 했지 책상에 앉아 나도 모른 채로 잠을 자고 있는 자신을 보면서

내 의지대로 되지 않는 것을 점차적을 깨닫기 시작했다.


이 세상의 일들이 내 생각대로, 내 의지대로 이뤄지는 것이 얼마나 될까? 거의 없을 것이다.
어떤 이는 의지가 강하고, 다른 이는 상대적으로 약하기도 하다.

의지가 강하다는 것은 심정에 새긴 것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확률이 높다는 것이고,

약하다는 것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의지가 강하다고 해서 몸이 튼튼하다는 것도 아니고 학교 성적을 잘 받는 것도 아니다.

사업이고 업무가 의지대로 되지 않는다. 그결과 역시 원하는 대로 나타나지 않는다.


인류의 역사에서 인간이 가장 관심 있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인식의 능력과 과정이고, 다른 하나는 의지에 관한 궁금증이다.

특별히 의지를 강조하는 것은 17세기 계몽사상에서 더욱 발전되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6세기 이단 펠라기우스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했다.

숙명론에 빠져 맥 빠진 신앙생활을 행하는 기독교인들을 바라보며 안타까워 외친 것이다.

의지적 신앙을 요구한 것이다.


하나님에 대해 우리가 알긴 뭘 안다고 하면서 제대로 믿으라고 강조한다.

은혜를 달라고 하기 이전에 의지적 결단이 앞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 의지적 행동을 강조하다보니 본질적 기독교 진리를 부정하게 이른 것이다.


우리가 가진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선물이기에 언제 어떻게 주어졌는지 알 수 없다.

그래서 비밀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 믿음은 우리의 예상과 기대와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푼 것이다.


그런데 이 믿음을 신앙으로 드러내기 위해 의지적 신앙을 강조하고 한다.

믿음은 선물이지만 신앙은 삶에서 증거로 나타내야하기에 의지적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의지가 곧 신앙으로 착각하기에 이른다.
의기적 신앙이 곧 믿음으로 착각하여 무엇이든지 얻을 수 있다는 데까지 상상하게 이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