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컬럼4

죽음의 준비는 죄 죽이기에서 비롯된다. 참된 회개이다.

새벽지기1 2017. 12. 18. 07:57


어느 날 내 인생에서 예기치 않게 갑자기 찾아온 일들 중 하나는 허리 굽히기가 어려웠다는 것이다.

허리를 굽혀 쉽게 일을 하기 어려운 경우를 맞이하자 난 당황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허리 굽히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급한 나머지 허리 운동을 하기에 이른다.


또 당황스러웠던 것은 발목이 아프기 시작했다.

계단 오르기 2-3개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여겼는데 힘들다고 느껴진다.

계단 2-3개위에서 힘차게 내려오는 것도 두려워진 것이다.


당연하다고 여겼던일이 이뤄지지 않자 이제 나이가 든 것을 깨달아야만 하는가 라는 생각에 들었다.

이뿐 아니라 지금까지 살면서 정말 많은 일들이 예기치 않게 찾아와 당황스럽게 하는 경우가 많다.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 가운데 분명한 하나는 죽음이다.

죽음만큼 확실한 것이 없지만 준비 없이 지낸다.

나이에 따라 순서에 따라 임할 것이라고 여긴다.

20대 때 친구가 죽는 것을 보았다.

30대 때 장례식을 인도해 보았다.

지금까지 죽음에 대해 그렇게 가깝게 여기지 않았다. 먼 미래라고 여겨진다.

하지만 점점 인생의 후반전을 생각하면서, 건강의 여의치 않다는 것을 체험하면서,

사회에서 장년에 해당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나이는 수가 아니라 현실임을 강하게 느낀다.


그렇더라도 얼마나 준비하고 있을까?

하는 일에 매몰되어 죽음을 일단 내려놓고 사는 일에만 신경 쓰자고 스스로에게 위로하곤 한다.


죽음을 준비해야 하지만 예기할 수 없고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 준비하지 못하는 이유 중 가장 큰 이유이다.

불확실한 죽음을 확실하다고 말하는 것만큼 불확실한 것은 없다.

죽음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죽은 자가 증언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죽음 후의 이야기를 아무도 들려주지 못한다.

만일 전해주면 일아 들을까? 글쎄? 아니다.


예수님께서 분명힐 말씀하시길,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눅 16:31) 가정을 설정하지만 그 가정은 그저 가정일 뿐 사실은 아니다.


어떻게 죽음을 준비할까?

관에 들어가서 체험해볼까? 끔찍하지만 강한 체험일 것이다.

그렇다고 그 생각이 얼마나 오래 유지될까?

죽음의 준비는 죄 죽이기에서 비롯된다. 참된 회개이다.


자신의 죄들을 말씀을 통해 철저하게 발견하면서 통회할 줄 알아야 한다.

죄을 정말 미워할 줄 알아야 한다.
추한 자신의 모습을 자세히 점검할 때 오는 추한 모습을 통해 죄 죽이기가 실행된다.


이런 죽이기는 죽음 준비의 최상이다.

죽음은 미래적이고 예기할 수 없는 것이지만 죄 죽이기는 현실적이고 실제적이다.

죄 죽이기는 정말 고통스러운 일이다.


자신의 과거와 자신의 내면을 철저하게 살피는 것은 정말 괴로운 일이다.

하지만 자신을 냉철하고도 사실적으로 점검하는 자는 임 죽음을 준비하고 있다.


죄 죽이기를 실행하는 자는 겸손의 길을 걷겠지만 삶의 활동력을 갖는다.

이것이 영 살리기라는 것이으로 죄 죽이기를 행하는 자만 갖는 특권이고, 참된 평강이다.

죽음을 준비하는 자는 삶을 긍정적으로 놀랍게 이끌어 갈 것이다.

죽음은 현실이지 미래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