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강대식목사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나의 목자) (시 23:1-6)

새벽지기1 2017. 11. 29. 07:00

 

시 23편은 다윗의 아름다운 신앙고백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암송하고 좋아한다.

그러면서도, 그 안에 담긴 진리와 교훈은 잊어버리고, 거기서 기쁨과 위로는 얻지 못한다.

이 시편을 통해, 하나님이 나의 목자인 것을 알고, 체험하고,

그 하나님을 기뻐하며, 위로와 소망 속에서, 한 평생을 믿음으로 살 수 있기를 바란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여호와 하나님이 나의 목자시라면, 나는 그 목자가 기르는 양이라는 말이다.

양 떼 없는 목자가 있을 수 없고, 목자 없는 양 떼를 생각할 수 없다.

 

내가 양이라는 인식이 없다면, 하나님이 나의 목자라는 것이 의미도 실감도 없을 것이다.

다윗은 양 떼를 기르는 목자였고, 그래서 양과 목자의 관계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었다.

하나님은 그를 양의 우리에서 취하셨다고 하신다.

 

(시78:70-72) '그의 종 다윗을 택하시되 양의 우리에서 취하시며 젖 양을 지키는 중에서 그를

이끌어 내사 그의 백성인 야곱, 그의 소유인 이스라엘을 기르게 하셨더니 이에 그가 그들을

자기 마음의 완전함으로 기르고 그의 손의 능숙함으로 그들을 지도하였도다'

 

양을 잘 기르는 자가 백성도 잘 기르고 잘 지도한다.

양을 길러본 적인 없는 자들이 다스리면, 교회든 나라든, 예나 지금이나 혼란스럽기만 한다.

선한 목자는 그의 양 떼를 극진한 사랑으로 돌본다.

 

양들에게는 목자가 얼마나 절실하게 필요한지,

노련하고 선한 목자를 만난다는 것이 양들에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다윗은 잘 알고 있었다.

하나님이 나의 목자가 되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다윗은 너무 잘 알고 고백하고 있다.

 

사람이 양 떼의 선한 목자이어도 자기의 양 떼를 잘 돌봐서 부족함이 없게 하는데,

하물며 하나님이 양 떼에 속한 나의 목자라면, 부족함이 없게 나를 돌보실 것이다.

하나님이 나의 목자인 것을, 그래서 내게 부족함이 없을 것을 믿고 신뢰하시기 바란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선한 목자라고 말씀하셨다. 아마 이 시편을 염두에 두셨는지도 모른다.

(요10: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또한 우리 주님은 세상 죄를 지신 어린 양으로도 오셨다.

(요 1:29)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양의 심정도 잘 아시고 그 양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신 선한 목자이시다.

그리고 지금도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고, 우리를 보살피시며 인도하시고 계신다.

 

이 목자는 아무리 비천한 자일지라도 잘 알아 보신다.

(사40:11) '그는 목자 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이 목자는 양 떼들을 그의 우리(교회)로 데려오시고,

목자가 하는 것보다 더 극진하고 변함없는 돌보심으로 그들을 보호하시며 꼴을 먹이신다.

(요10: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

 

이를 믿는다면, 우리도 다윗과 같은 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우리가 믿음의 눈으로 지나온 생애를 돌아 보면, 그것이 사실인 것을 알 수 있다.

한가족교회가 멱우리에 와서 10년여를 사는 동안, 돌아보면 필요한 것에서 부족함이 없었다.

물질적으로나 영적으로나 부족함이 없게 하셨다.

 

이곳에서 사는 세월이 없었더라면,

사도와 선지자들의 신학이요 순전한 말씀의 신학인 청교도 신학을 만나지도 못하였을 것이다.

앞으로도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가 되셔서 부족함이 없게 하실 것이다.

 

(빌4:19)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

 

만약 내가 원하는 어떤 것을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는다면,

그것이 내게 합당하지 않거나, 내게 좋은 것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합당하고 좋은 것이라면, 때가 되면 주어지리라고 확신하고 기다릴 수 있다.

 

목자이신 우리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목적지는 푸른 풀밭이고 물가이다.

푸른 풀밭은 눕기 위한 곳이고, 물가는 쉬기 위한 곳이다.

이 땅에서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고, 저곳에서는 생명수가 흐르는 곳, 안식의 천국이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소망이고, 그 소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을 것이다.

끝이 좋아야 다 좋은 것이고, 끝이 안 좋으면 다 안 좋은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소망을 믿음으로 붙들지 않고 광야에서 멸망하고 말았다.

 

누울만한 푸른 풀밭, 쉴만한 물가에 이르는 길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 영혼이 소생해야 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의의 길로 인도함을 받아야한다.

 

(3-4절)'내 영혼을 소생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 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하나님이 나의 목자인 것만 좋아하고, 부족함이 없는 것만 좋아하는 사람들,

누울만한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만 좋아하는 사람들은,

영혼의 소생과 의의 길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싫어한다.

사탄과 거짓 선지자들은 그들을 부추겨서 골짜기 없는 시온의 대로, 직통라인으로 인도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것이 멸망으로 인도하는 넓은 길, 큰 문인줄 모르고 우르르 몰려간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은 협착하고 문이 좁아서 가는 사람이 적다고 하셨다.

그 길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한 의의 길이고, 영혼이 소생하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이다.

이 의의 길, 영혼이 소생하는 사망의 골짜기를 통과해야, 푸른 풀밭, 물가에 이르는 것이다.

 

하나님의 후사로서,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누리기 위해서는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이루게 한다.

이 고난의 길을 통해서, 자기 이름을 위한 탐욕과 정욕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이름을 위한, 의의 길로 가게 된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면서 영혼은 소생하고 하나님을 위한 의의 길로 가게 된다.

이 과정이 힘들다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피해서 쉬운 길로만 갈려고 하던 사람들은

생애 가운데도 고생과 파멸의 길을 걷고, 죽어서도 돌이킬 수 없는 지옥의 영벌을 맞게 된다.

 

(롬2:6-11)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는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며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라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라 '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게 하시는 것은 죽어야 영혼이 소생하기 때문이다.

정말 죽으면 구원도 못받고 지옥의 나락에 떨어져야 하기 때문에

살아서 죽음을 고난으로 맛보게 하심으로 영혼을 회심케 하고 의의 길로 돌이키기 위함이다.

 

(고후4:8-11)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성경에 쓰임 받는 사람들 중에, 기독교 역사에 쓰임 받은 사람들 중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그것은 하나님의 의의 길로 가기 위해, 영혼이 소생키 위해 반드시 가야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다윗은 골리앗을 어려서 때려 잡고, 요나단의 친구가 되고, 군대의 장이 되고 다 된 줄 알았다.

그러나 다윗에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멀리서도 아니고, 자기가 섬기는 사울왕으로부터 왔다.

그 이후 그를 죽이고자 하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10여년 동안 지속되었다.

 

그러나 이 과정을 통하여 다윗은 그의 영혼이 소생하고, 하나님의 의의 길로 인도함을 받았다.

내 영혼을 소생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성경은 많은 장을 할애하면서 다윗의 영혼이 소생하고 의의 길로 인도함 받는 과정을 상술한다.

사울을 두 번이나 살려주는 사람으로 변화되고,

나발 가족을 살인하려던 마음을 아비가일을 통해 내려 놓고,

망명 시절인 시글락성의 위기를 하나님만 의지하며 통과한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며 영혼이 소생하고 의의 길로 가는 사람으로 연단되었을 때,

하나님은 사울을 죽음으로 처리하시고 다윗을 이스라엘의 새로운 왕으로 세우신다.

푸른 풀밭에 눕게 하시고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고 부족함이 없게 하셨다.

 

요셉의 생애를 보시고, 모세의 생애를 보시고, 아브라함과 욥의 생애를 보라.

하나 같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고난의 세월을 보내면서,

그들의 영혼이 소생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위한 의의 길로 가는 연단이 이루어지는 것을 본다.

 

로마서도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롬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영혼의 소생)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의의 길)'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는다고 하셨다. 영으로써 몸을 행실을 죽이면 산다고 하셨다.

우리의 지체를 이젠 의의 무기로만 하나님께 드리기를 힘써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 우리의 영혼은 소생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위한 의의 길로 가게 된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할 것이 없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주의 지팡이로 길을 인도하시고, 인생 채찍의 막대기로 징계도 하시면서, 우리를 안위해 주신다.

 

영혼의 소생과 의의 연단이 이루어졌을 때, 하나님은 원수들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고,

기름을 부으셔서 그들을 영광 중에 세우시고, 그들의 축복의 잔이 넘치게 해 주신다.

 

여호와가 나의 하나님이셔서 부족함이 없게 하심을 신뢰한다면,

양털이 깍이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더라도 고분고분하고 온유하게 순종하여야 할 것이다.

그것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게 하실 때 우리가 취해야 할 믿음의 자세이다.

 

다윗의 마지막 고백이 우리의 신앙고백이 되어야 한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서 영원히 살리로다'

 

우리 생애는 말한 것 없고, 영원한 세상에서도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반드시 함께 하신다.

우리의 목자가 되셔서 부족함이 없게 하시고 누을만한 푸른 풀밭,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신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할 때도 그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변함이 없으신다.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라’는 다윗의 신앙 고백이고 하나님과 맺는 언약이다.

그 뜻은, 하나님이 목자가 되셔서 부족함이 없게 하시는 만큼, 우리도 그분의 몸인 교회를

중심으로 살고, 세우기 위해 부지런하고 정성스럽게 헌신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