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동식목사

기독시민의식- 공적 영역에서의 그리스도인

새벽지기1 2017. 11. 7. 07:13



오늘날 한국 기독교인들이 다양화된 사회 속에서 어떠한 대접을 받고 있을까? 한국 역사 가운데 기독교가 미친 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한국 교회는 이 땅의 민주 시민 사회를 형성하는데 있어서 한 축을 담당하였다. 교육과 정치 그리고 경제에 있어서 한국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역할은 눈부신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러한 역사적 사실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한국 교회의 성적은 어떠한가? 놀랍게도 기윤실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그 성적표는 C+로 부끄럽다. 이러한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야만 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공정인 영역에서의 한국 교회의 모습 때문이다.


한국 교회가 공적인 영역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기윤실이 지난 3년 동안 실시한 한국 교회의 신뢰도 조사가 잘 보여주고 있다. 이를 보면 해마다 마음을 아프게 하는 변하지 않는 항목이 있다. 그것은 신뢰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그리스도인의 이중적 태도와 배타적 태도 때문에 있다는 통계다. 한국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다양성이 공존하는 현실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아픔이다.

한국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교회 내적으로는 건강하고 큰 문제가 없다고 인정하고 있다. 실제로 통계수치도 그러하다. 하지만 공적인 영역에만 오면 맥을 못 춘다. 그것은 시민 사회라고 하는 공적인 영역에서 기독인들이 보여주고 있는 미숙한 모습 때문이다.


이미 언론을 통하여 알려졌듯이 미숙한 신앙의 모습들이 많은 이들의 얼굴을 찡그리게 하였고 한국 교회를 향한 부정적 이미지를 만들어 내었다. 마치 세상은 성숙한 사회를 만들어 가고 있는데 이러한 현실에 가장 미숙한 이들이 바로 기독교인이라고 보이는 것 같아서 얼마나 씁쓸하였는지 모른다.


건강한 기독 시민의식은 미숙한 신앙을 벗어나는데서 시작한다. 성경은 우리에게 어린 아이와 같이 젖만 먹지 말고 장성한 자와 같이 단단한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자랄 것을 말씀한다. 그런데 한국 교회가 세워진지 125년이 넘어가는 시점이지만 아직도 그리스도의 초보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아 참으로 부끄러울 때가 많다.


더 이상 부끄럽고 미숙한 자리에서 머물러서는 안 된다. 빨리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시민 사회를 향한 성숙하고 영향력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의 자리를 잘 살펴보고 다시금 우리의 모습을 다져야 한다. 기독인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이 질문에 분명한 답을 가져야 한다. 공적인 영역을 살아 가는 기독인의 준비는 어떠해야 할 까? 우선 성경적 세계관에 입각한 건강한 기독시민의식을 갖출 것을 말하고 싶다.


무례한 기독교의 저자인 리차드 마우는 시민교양이란 공적인 예의라고 하였다. 이 말은 다양한 삶의 현장에서 중용을 잘 지키고, 타자를 향한 예의 있는 모습을 갖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기독시민의식은 기독교인들이 공적인 영역에서 예의 있는 삶을 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특별히 공적인 영역에서 기독인들이 힘써야 할 우선적 부분은 정직이다. 성경은 이 부분에 대하여 아주 분명하고 명확하다. 정직은 기독교인을 기독교인답게 만든다. 작은 부분에서부터 정직을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적어도 기독인은 이 부분에 있어서 모범이 되어야 한다. 교회에서부터 정직하게 재정을 사용하고, 정직하게 직분자를 세우고, 정직하게 설교하여야 한다.


또한 책임의식이 분명하여야 한다. 되면 좋고 안 되면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맡은 일에 있어서는 분명하게 책임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것은 견고한 역사의식을 요구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 대한 분명한 역사와 책임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것이 멋진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다.


그리고 배려심을 함양해야 한다. 진리에 대하여 분명하지만 온유함과 사랑이 없이는 진리가 빛을 발하지 못한다. 그래서 성경은 사랑으로 진리를 전하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 사랑에는 무엇보다도 상대방을 향한 배려심이 자리 잡아야 한다. 배려심이 있을 때 배타적이 되지 않고, 인격적인 관계를 형성한다. 누구라도 그리스도인을 만나면 인격적인 존재임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참된 신앙은 인격에서 판가름 난다. 말과 행동에서 인격적인 모습이 나타날 때 매력적인 기독교인 될 것이다.


물론 다원주의 사회에서 기독교인이 가지고 있는 한계가 분명이 존재한다. 우리는 이것을 감수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성경이 말하는 구원의 유일성 때문이다. 하지만 이 유일성이 대화의 방해가 아니라 주제가 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다원주의 사회 속에서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사회는 점점 다양화되고 종교적 문제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이기는 시작은 성경적 세계관에 입각한 건강한 기독시민의식의 고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