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김진희사모

다른복음이란 없다. 예수님께서 나의 주인되시어 나와 함께 사시는 것이 참된 복음이다.

새벽지기1 2017. 7. 14. 10:19


다른복음이란 없다.

예수님께서 나의 주인되시어 나와 함께 사시는 것이 참된 복음이다.


수요예배와 목요새벽예배 가운데 갈라디아서 말씀이 전해졌다.

갈라디아서는 짧은 로마서라고 할만큼 내용이 로마서와 비슷하고,

바울의 서신서들 중에 초기에 써진 것으로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게 됨을 말씀하고 있다.

즉, 믿음에서 오는 진정한 자유에 대해 전하고 있다.


하나님과 예수님으로인해 사도된 바울(갈1:1)이 갈라디아서를 쓴 이유는

갈라디아교회에 '복음'이 아닌 '다른 복음'이 퍼져서 성도들을 혼미케 하고 있었기에

진정한 복음이 무엇인지, 다른 복음이 왜 잘못되었고 따르면 안되는지에 대해 전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면 '다른 복음'이 무엇이었을까?
한마디로 말하면 그것은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함을 얻으려는 것이다.

예수님도 믿지만 거기에 율법의 행위 곧 할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바울은 복음의 초점이 흐려지는 것을 보며 다른 복음과 참된 복음을 비교하며

어떤 믿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야할지를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결국 율법은 초등교사(몽학선생)이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이 오셔서 그 예수님과 합하여지기 전까지

죄가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참된 복음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저주를 받은 바 되시고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갈3:13)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입고

믿음안에서 내안에 계신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이다(갈2:20).

내안에 주인으로, 왕으로 계시는 그분의 통치 아래 거하는 것이다.


이렇게 복음이 너무도 선명함에도 우리는 내가 주인되어서 살아온 시간이 너무도 길고 뼈속 깊은 어둠이 너무도 깊어서 참된 자유를 주신 복음 외에 다른 것을 섞어서 생각하고 적용하며 살아가려 한다.

옛사람의 습관을 좇아 살아가려 한다.

왜냐면 그것이 너무도 익숙하기때문이고 세상이 어둠이기때문이다.

그러하기에 참된 자유와 복음을 누리며 살아가도록 성령충만해야 하는 것이다.

예수로 가득차야 하는 것이다. 성령을 따라 행할 때 육체의 소욕을 따르지 않을 수 있으며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될 때 율법 아래 있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갈6:16~18).


나의 관점, 사람의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을 믿으면서 율법도 따라 행하려 한다면

선하고 좋은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과거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민족도 하나님을 안 믿은 적이 없다.

그러나 다른 신과 함께 믿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율법 아래에 있으려 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다른 신을 마음에 두는 것과 같다.

예수님의 희생을 무의미하고 무가치하게 만드는 것과 같다. 결국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다.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의 또 공통점은 내용 뿐 아니라 '교리'+'삶'이라는 이론과 적용의 순서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합하여 침례를 받고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살아나 그리스도로 옷 입은 우리는(갈3:27)

새사람의 인격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날마다 부활하신 예수님과 동행할 때 새피조물의 인격으로 육체의 소욕이 아닌 성령의 소욕을 따라 살아지는 것이다.


새피조물의 삶은 자유를 위해 부르심을 입었으나

자유가 육체의 기회가 아니라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는 것이다(갈5:13).

결국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말씀에서 이루어진다(갈5:14).


지난 월요일에 박인자성도님을 만나면서 교회 생활 가운데 이해 안되는 부분들에 대한 물음을 듣고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그때 나는 너무도 원론적인 이야기를 했던 것이 있는데,

그것은 사람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것이니 그분만 보시라고 했다.

이 말이 맞긴 맞지만, 순간 스쳐가는 생각이 있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음이 없는 사람이 어찌 볼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볼 수 없으니 눈에 보이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성도의 삶을 보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러니 성도의 삶은 그저 내믿음만 지키면 되는 삶이 아니라 그 삶을 통해 예수님이 드러나야 하는 것이었다.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었다.

결국 예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예수님의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고

할례나 무할례가 아닌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은 것만이  중요하다고 전한다.

복음은 정말 단순한 것이다. 복잡할 것이 없다.

나의 주인되시는 예수님과 함께 함을 기뻐하고 예수님만을  자랑하고 예수님을 알아가기에 마음을 쏟는 것이다.

매일 매일 주님의 통치 아래 거할 때 자유롭게 성령의 열매가 맺힐 것을 믿고 바란다.

오늘도 주님의 일하심은 계속 되리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