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김진희사모

지금 살아계신 예수님과 동행하는 새피조물의 인격을 사모합니다!

새벽지기1 2017. 5. 19. 07:53


지금 살아계신 예수님과 동행하는 새피조물의 인격을 사모합니다!


오늘 새벽예배에서는 증거를 통해 믿는 믿음에 대한 말씀이 전해졌다.
사도행전17장31절 말씀,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만한 증거를 주셨다.

증거를 가지고 믿게 하셨다.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은 침례요한은 빛으로 오신 예수님에 대하여 증언하는 자이었다(요1:6).

참 빛은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었다. 각 사람에게 빛을 비추셨다는 것이 중요하다.

구약 성경의 역사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증거를 통해 믿음을 갖게 하셨다.

아브라함이 그랬고 모세가 그랬고 기드온이 그랬다.


하나님께서는 경수가 끊인 할머니.할아버지에게 자식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하셨고 실제로 아이를 낳게 하셨다.

이를 통해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생명의 주관자임을 알게 되었다.

죽은 자도 살리실 수 있는 분이심을 믿었다.

그러하였기에 100세에 얻은 그 귀한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릴 수 있었던 것이다.


기드온은 어떠했나?

몰래 숨어서 밀을 까부를만큼 겁쟁이였다.

그러나 전쟁에 나가라는 하나님의 명령 앞에 양털의 증거를 가지고 나가게 된다.

그 증거 하나로 만명, 천명도 아닌 300명으로 전쟁을 하러 간다.

칼과 창과 같은 잘 갖춰진 무기를 가진 것이 아닌 항아리에 횃불을 담아가지고 간다.

고작 양털이 이슬에 젖거나 젖지 않거나 하는 그 증거를 가지고 그는 생명을 걸고 민족을 해방하는 일에 앞장을 서게 되는 것이다.


기드온에 대한 말씀을 들으며 병사를 뽑는 과정에서 전쟁에 능한 하나님의 놀라운 방법을 보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병사의 마음 중심을 점검 하신다.

두렵거나 무서운 사람, 집에 돌아가고 싶은 사람은 돌려 보내라 하신다.

그들은 전쟁터에 나가더라도 이미 마음에서 지고 있기에 그 결과가 뻔한 것이다.

도리어 함께하는 병사들의 사기마저 떨어뜨리고 흐뜨러뜨릴 수 있는 이들은 아예 병사에서 제외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끝이 아니다.

물을 마시는 시험을 통해 군사로서의 마음 가짐과 행동을 보신다.

자신이 군사의 신분임을 자각하는 자는 이전과 같이 일반 백성일 때와는 다른 적에 대한 경계태세와 언제든 싸울 수 있는 준비를 해야하는 것이다.

전쟁을 앞두고 군사를 부르시고 택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을 보며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가 영적싸움을 어떻게 해야할지가 비쳐졌다.


싸움의 승패는 마음에서 이미 끝이난다.

두려워하고 정과 욕심에 매이면 군사로서 탈락이다.

언제든지 적군 마귀가 공격하여 올 수 있음에 대해 경계를 하고 싸울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내가 군사로 영적싸움에서 승리할 때 나의 승리가 공동체의 승리가 되는 것이다.


기드온은 고작 양털의 증거로 생명을 걸고 전쟁에 나갔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방법대로 항아리와 횃불을 들고 나가서 사람 숫자로는 전혀 이길 수 없는 전쟁에서 승리했다.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다.


하물며 우리에게 있는 증거는 전능자이신 하나님께서 이땅에 오셔서 나를 대신하여 죽어주시고 부활하시어 당신이 하나님이시며 나의 주인이심을 확증하여 주신 어마어마한 증거가 있다.

이 증거는 어느 한 사람에게만 주신 증거가 아닌 모든 사람에게 주신 믿을만한 증거인 것이다.

그 증거가 선명하니 내안에 계신 주님이 선명하고 영적싸움의 대상이 선명하고

그 싸움은 예수님께서 이미 승리하신 싸움의 전리품을 취하는 싸움임이 선명한 것이다.


새벽기도의 시간, 은혜의 말씀을 기억하며 마음 다해 간절히 기도를 드렸다.

그런데 기도하면서 성령님의 비췸가운데 나의 옛사람의 습관이 지금도 어떻게 역사하는지 밝히 드러났다.

실은 이번 제6회 목회자세미나를 사모함으로 기다렸었다.

그리고는 날짜가 공지가 되고 목요일임을 알게 되면서 살짝 고민이 되었다.

목요일은 내가 상담대학원에서 공부하는 날이기에 시간이 겹치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지방회에서 세미나 참석하는 일로 한 번 빠졌었던지라 또 빠지는 것이 맘에 걸렸다.

그래서 나는 큰맘을 먹고 둘 다 중요한 것이기에 오전, 오후 시간만 듣고 마지막 시간은 포기하고 혼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돌아와야 겠다고 생각했다.


이 이야기를 하자 남편은 그러려면 아예 오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아니 내가 불편하고 고생스러운 것을 감래하면서까지 간다고 하는데 왜 오지말라고 하는지 모르겠는 것이다.

머리된 남편이 가지 말라고 하면 가지 말아야 하는 것이기에 여러 차례 가지 말라고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물어보았다. 그럼 끝까지 다 있으면 가도 되겠냐고 물었더니 그제서야 그럼 가도된다는 허락이 떨어졌다.

그런데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의 마음에서는 정함이 없이 여전히 중간에 먼저 나와야겠다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해야한다고 하는 말씀 앞에 비추임바 되니 마음이 정해졌다.

둘 다 하려하지 말고 목회자세미나에 끝까지 있어야 겠다고.


이것이 기도 가운데 생각이 나는데, '인본주의를 깨는 복음의 능력' 영상을 보았을 때 들었던 말씀이 생각났다.

복음에 내생각을 섞으면 안된다...복음에 내생각을 섞으면 안된다!

와, 내가 복음에 인본주의적인 내생각을 섞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믿음이 좋은 것처럼, 그래서 불편함과 어려움도 감래하는 것처럼 하는 나의 율법적이었던 신앙의 모습과 연결이 되는데, 이것이 내 옛사람의 모습이구나가 알아졌다.

그렇게 복음에 내것을 섞고 있었으니 역사가 일어날 수 없었고, 변화될 수 없었던 것이다.


내가 남편에게 했던 말과 나의 중심이 달랐던 것을 생각하니 그 모습이 남편에게만이 아니라 하나님께도 동일한 것이었다. 말로 행동으로는 신앙적인 삶을 살지만 중심으로 나아가지 않는 것은 결국 주님께 거짓된 모습인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나 스스로는 이렇게 믿음 생활 잘 하고 있다고 교만한 자이었던 것이다.

나의 인생 전반이 이렇게 살았으니 나 스스로도 믿음이 좋은 줄 속고 산 것이다.

주님께 너무 너무 죄송했다. 이러한 나의 죄때문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야만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나의 이모습이 비추임바 된 것이 너무나 감사하다.

또 다시 옛사람의 습관을 인지하지 못한 채 넘어갈 뻔 했는데, 옛사람의 모습을 드러내 주시니

나의 새피조물로서의 새로운 인격이 자라가기때문이다.


하나님의 군사로서의 훈련을 하나 하나 기쁨으로 받길 원한다.

매일 매일 내안에 계신 예수님,

나를 도우시며 함께하시는 성령님을 의뢰하며 승리의 기쁨을 맛볼 것을 기대하며 나아간다.

(김진희사모 / 자유와회복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