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민수칼럼2603 <전실 1득(全失 1得)> 신앙!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욥1:21-22)“
욥기를 읽다가 모든 것을 잃고 고백한 이말 한마디가 비수처럼 꽂힌다.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은즉
또한 알몸으로 돌아가리라 “
누군가 이 욥의 신앙고백을 <전실 1득(全失 1得)>신앙이라고 했다.
즉 모든 것을 잃더라고 오직 한 가지 <믿음>만은 잃지 않겠다는 것이다.
비록 망하더라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다는 것이다.
이런 신앙의 모습을 가진 사람은 욥만이 아니다.
에스더도 마찬가지다.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에4:16)“
물론 민족이 멸절 위기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지만
모든 것을 다 가진 왕후로서 결코 결단하기 쉽지 않은 일이다.
또한 <전실 일득>신앙하면 사도 바울을 빼 놓을 수 없다.
사도 바울이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귀로에 성령께서 경고했다.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 주리라(행21:11)”
이는 사형권이 없던 유대인들이 로마 총독에게 넘겨 사도 바울을 죽이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행을 강행했다.
다음은 바로 사도 바울이 한 말이다.
“바울이 대답하되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행21:13)”
사도 바울이 죽음을 무릎쓰고 예루살렘에 가려고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오직 예수 복음을 위해서였다.
복음을 위해 목숨을 건 사람이 바로 사도 바울이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
사실 따지고 보면 <전실 일득>신앙의 소유자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모리아산에서 이삭을 바치려던 아브라함의 신앙도 그렇고
130년 전 조선땅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오신 선교사들이 그렇고
지금 이 시간에도 세계 오지에 나가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들이 또한 그렇다.
하지만 이 분들의 이런 신앙이 하루아침에 형성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늘의 광야 현장에서 믿음으로 살았던 분들이며
아주 작은 일에도 목숨 바쳐 충성했던 하나님이 종들이다.
내가 대학 시절 좌우명 성구가 두 개 있다.
하나는 마6:33절이며, 또 하나는 행20:24절이다.
또 대학시절 애창했던 찬양 두곡이 있다.
하나는 ‘부름 받아 나선 이몸’이란 찬송이고
하나는 ‘주 예수 보다 귀한 것은 없네’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명예와 바꿀 수 없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행복과 바꿀 수 없네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예수 밖에는 없네
돌이켜 보면 이 두 찬송 모두 <전실 1득(全失 1得)의 신앙>으로 살겠다는 고백이었다.
오늘 갑자기 욥기를 읽으며 내 자신을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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