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임을 알라.
성전에다 우상을 모실 수 없을 것이다.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세워질 때에 주님은 재림하신다고 하셨다.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이 멸망한 원인은 그들의 우상숭배 때문이었다.
“너희는 마음을 돌이켜 우상을 떠나고 얼굴을 돌려 모든 가증한 것을 떠나라”(겔14:6)고
선지자들을 통해 경고하고 또 경고했지만 그들은 돌이킬 줄을 몰랐다.
하나님은 우리가 마음과 뜻과 목숨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원하신다.
우리의 마음과 뜻과 목숨과 힘을 다해 다른 것을 섬기는 것이 우상 숭배이다.
우리 마음과 생각이 온통 하나님 아닌 다른 것에 쏟아지고 있다면 우상을 숭배하고 있는 것이다.
그 마음과 생각을 돌이켜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이 축복의 길이다. 생명에 이르는 길이다.
우리의 육신과 마음은 이 세상을 향하여 달려가고 붙잡히기가 쉽게 되어 있다.
깨어 기도하지 않고 말씀을 묵상하지 않으면 어느새 우리는 세상과 죄와 사탄의 포로가 되고 만다.
그러면서 우리의 영은 침체되고 불안해지고 짜증나고 일과 환경은 꼬이고 무질서해진다.
하나님을 떠난 삶의 특징은 흑암과 혼돈과 공허이다.
하나님을 모신 삶의 특징은 빛과 질서와 충만함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성전으로 삼기 위해 많은 대가를 지불하셨다.
독생자를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시게 했고,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게 하셨다.
부활하신 주님은 승천하셔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셔서 함께 하고 영원히 속에 거하게 하셨다.
이 십자가를 믿고 주님을 영접하는 사람을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시고 많은 특권을 주셨다.
그것은 오직 한 가지 목적, 우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으로 살게 해서 복 주시기 위함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으로 사는 자에겐 하나님의 귀한 약속이 있다.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 되어 왕과 백성의 관계로 삼아주시고
또한 그들을 영접하셔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삼아주신다는 약속이다.
이 약속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 거하시며 두루 행해 주신다.
(구약에서 성막은 그들 가운데 거하심을 상징하였고, 구름기둥 불기둥은 두로 행하심을 상징하였다. 그분은 두루 행하셔서 만나와 생수를 주시고, 옷이 헤지지 않도록 하셨고 발이 부릅트지 않게 하셨다. 적들을 이기게 하신 것도 그분이 함께 계시고 두루 행하심의 역사였다.)
이제 부터는 혼자가 아니고 만왕의 왕의 백성이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관계 속에 산다.
하나님이 함께 거하시고 두루 행해주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주 그 하나님께 배신을 하고 가슴을 아프게 해드린다.
육신을 입은 우리는 자꾸만 그분의 임재와 은혜를 못느끼고
보이는 세상과 그 영광만을 향해 불나방처럼 달려가곤 한다.
그러한 우리의 행위들이 하나님의 징계와 채찍과 인생 막대기를 불러 들인다.
자식이 잘못된 길로 가는데 부모가 어찌 그것을 마냥 내벼려 둘 수만 있겠는가?
그렇지만 ‘그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을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게’ 된다(히12:11).
야곱이 많은 환난 끝에 우상들을 버리고 벧엘로 올라갔을 때 하나님은 축복하셨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결단이 필요하다.
(창 35:2-5) '야곱이 이에 자기 집안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들과 자기 귀에 있는 귀고리들을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고 그들이 떠났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환난과 고난이 심한가? 야곱에게 배우라.
우리 중에 있는 우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하나님께서 사면 고을들을 크게 두려워하게 하시고 추격하는 자가 없게 하실 것이다.
우상은 안 버리고 마음을 돌이키지 않으면서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그 환난과 고난은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이 간단한 해결책을 버리고 수고하고 애를 써도 도무지 되지 않을 해결책만을 찾는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인 우리 마음 가운데 멸망의 가증한 것이 우뚝 서 있지 않는지 돌아보자.
우상은 멸망의 가증한 것임을 명심하자.
우리의 탐욕이 바로 우상숭배인 것을 알자.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
2.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십자가에서 흘린 피로 우릴 값주고 사신 것은 하나님을 본받아 거룩한 삶을 살게 하기 위함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으로 살게 하기 위함이다.
우리는 자꾸만 이 사실을 잊어버린다.
내 죄가 십자가로 용서함 받은 것만 알고,
이제 내가 죄를 다시 짓는 것은 주님을 십자가에 다시 못박는 것임을 잘 모른다.
(갈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죄가 왕노릇하며 우리 삶을 망가뜨리고 자녀다운 삶을 못살게 하기 때문에
그 죄를 그분의 핏값으로 처리하여 주신 것이다.
그런데도 죄를 향하여 우리의 마음을 열고 팔을 벌릴 것인가?
죄는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요
하나님의 법도대로 살지 않고 세상을 따라 사는 것이다.
그 죄가 멸망과 사망을 가져오기 때문에 십자가로 건져내셨는데
돼지가 깨끗이 한 후에 더러운 곳에 다시 눕듯이 개가 토한 것을 다시 먹듯이 할 수 있겠는가?
사도 바울의 말씀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롬6:2)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여 함이니'(롬6:6)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롬6:19)
19세기 가장 위대한 청교도 존 라일이 『거룩』이라는 그의 책에서 하는 말이다.
이 책은 여러분의 서재에 꼭 있어서 자주 읽어볼 것을 권한다. 그의 대표작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오류와 이단, 거짓 교리는 죄에 대한 모호하고 불분명한 이해에서 비롯되었다.
죄는 아담의 후손인 온 인류에게 드리워진 엄청난 도덕적 질병이다.
죄란 하나님의 생각과 법에 완벽히 합치하지 않는 모든 상상과 생각과 말과 행동을 말한다.
우리 안팎에서 하나님의 계시된 뜻과 성품에 완벽하게 합치하지 못하는 것은
아무리 사소하고 미미한 불일치일지라도 죄이다.
죄는 행함으로 짓는 죄와 행하지 않음으로 짓는 죄로 구분이 된다.
우리는 “해서는 안될 일을 함”으로 죄를 지을 뿐 아니라,
실제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간과함”으로 죄를 짓는다.
경건한 어셔 대주교는 숨을 거두기 바로 직전에, 이렇게 기도했다고 한다.
“주여, 나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되, 특별히 내가 하지 않음으로 지은 모든 죄를 용서하소서”.
사람은 죄를 지으면서도 그것을 죄로 알지 못하다는데 비극이 있다.
죄를 지어놓고도 스스로 죄 없다고 착각하는 것이 문제이다.
죄를 지어놓고도 죄를 지었다는 의식이 없는 것이다.
우리 주님은 “그 주인의 뜻을 몰라서 행하지 못한 종”이라 할지라도,
그 알지 못한 것 때문에 죄를 면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 역시 “매를 맞는” 심판을 피하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다(눅12:48).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롬8:7)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마15:1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니'(렘17:9)
죄는 우리의 모든 도덕성과 지성을 오염시켜 놓았다.
그래서 선하다고 해도 문제가 있고, 안다고 해도 문제가 있다.
양심조차도 확실한 안내자로 의지하기에는 너무나 어두워져 있다.
성령의 조명을 받지 않는다면 양심 역시 우리를 잘못된 길로 인도할 뿐이다.
회심하여 성령의 주권 아래 있는 사람도 여전히 그 속에 완고함이 있다.
“오염된 본성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심지어 중생한 자에게도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성공회 신앙고백서)
인간 타락의 뿌리는 너무도 깊이 드리워져 있어서 우리가 거듭나서 새롭게 되고
“깨끗하게 되고 성화되고 의롭게 되어” 그리스도의 산 지체가 된 이후에도,
집 안의 벽 곳곳에 남아 있는 나병처럼 우리 마음 저 밑바닥에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존재가 되었고 은혜가 의로 왕노릇하지만
죄는 우리 육신 안에서 여전히 끈질긴 생명력을 갖고 우리를 괴롭힌다.
죄는 십자가에 못박혔지만 여전히 살아서 역사하는 힘이 세고 강한 놈이다.
이 사실을 깨닫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말한다.
이런 사람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기뻐하지만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승리를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면서도,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기를 결코 잊지 않는다.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우리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함을 잊지 말자.
주님이 십자가에서 주님의 피로 우리를 깨끗이 하셨음을 잊지 말자.
이 주님의 십자가만 묵상하여도 우리는 많은 죄와 유혹들을 물리칠 수 있을 것이다.
기도와 말씀의 경건생활이 우리에게 오는 죄와 유혹을 물리치는 귀한 방편임을 기억하자.
거룩함을 하나 하나 마음과 생활 영역에서 이루어나가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축복과 영광을 앞당기는 것임을 기억하자.
3.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자
하나님은 사랑이시지만 그분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가 곁길로 가고 우상을 섬기며 멸망의 길로 갈 때 징계하시는 분이심을,
온 세상을 심판하시는 분이심을 알고, 두려움으로 섬길 줄 알아야 한다.
(히12:28-29)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또는 감사하자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
하나님이 사랑인 줄 알았다면 그분이 소멸하는 불이심도 알아야 한다.
내 편리하고 내 좋을 대로 생각할 수 있는 분이 하나님이 아니시다.
“그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라고 주님은 가르치셨다.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기 때문에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야 함을 모른다고 할 수 있다.
그분이 거룩하시기 때문에 당신의 자녀가 되는 우리로 거룩하라고 하시는 것이다.
(레 11:45)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우리 죄를 없이하고 의롭다 하신 것은 그분과 관계를 맺기 위한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우리 거룩의 원천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다.
우리 죄를 위한 대속물이 되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와 연합하여 거룩을 이루어가신다.
성령 또한 이 일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거룩한 영인 것이다.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진리이다.
(요 17:17)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우리의 거룩을 위해서 삼위 하나님께서 각기 역할을 하시고 돕고 계심을 알아야 한다.
세상은 거룩할 수도 없고 기대할 수도 없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와 도우심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거룩의 수준은 세상이 말하는 수준과 비할 수 없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온전히 거룩함을 이루라고 하신다.
우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정이기 때문에 그렇다.
우리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룰 수 있기 때문에 명하시는 것이다.
사람이 어떻게 거룩함을 온전히 이룰 수 있느냐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사람이 자기 힘으로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아마 그것은 괴물의 모습일 것이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면 참으로 사랑스런 모습이 될 것이다.
아들은 우리와 연합하심으로, 아버지는 말씀으로, 성령은 우리 안에 계심으로
우리의 온전한 거룩함을 도우신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받은 동시에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 되었음을 확실히 알아야 한다.
이 연합을 위해서 그분은 십자가에서 피흘리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고 자녀 삼아 주셨다.
우리와 연합하신 그분은 우리가 그분은 온전히 닮아갈 수 있도록 우리를 도우신다.
그분을 닮아가는 것,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는 것, 그것이 우리가 이루어야 할 온전한 거룩이다.
(롬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엡 4:13) '우리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 일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 주님은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셨다.
우리 안에 계심도 약속하셨다.
우리는 그분 안에 뿌리를 박고 세움을 받아야 한다.
(골2:6-7)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이 일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 제사장이 되셨다.
(롬8: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
누구도 끊을 수 없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는 일을 도우신다.
(롬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또한 어떤 피조물도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의 거룩함을 도우신다.
(롬8:38-39)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우리는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는 일에 있어서, 어떤 장애물도 넉넉히 이길 수 있다.
(롬8: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위 로마서 말씀에서 언급된 고난들은 다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방편들이다.
환난, 곤고, 박해, 기근, 적신, 위험, 칼, 사망,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
그리스도를 온전히 닮고 장성한 분량까지 성장하기 위해 허락하시는 고난들이다.
시 66편에는 이런 말씀이 있다.
'하나님이여, 주께서는 우리를 시험하시되 위를 단련하시기를 은을 단련함 같이 하셨으며
우리를 끌어 그물에 걸리게 하시며 어려운 짐을 우리 허리에 매어두셨으며
사람들이 우리 머리를 타고 가게 하셨나이다.
우리가 불과 물을 통과하였더니 주께서 우리를 끌어내사 풍부한 곳에 들이셨나이다'(10-12).
(고난 중에 위로를 받고 소망을 가지시기 바란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삼위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우리는 온전한 거룩함에 이를 수 있다.
미리 포기하지 말고(뫼만 높다 하지 말고) 자꾸만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이 모든 길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열어 주셨다.
(히4: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
이 모든 말씀을 듣고도 알고도 여전히 거룩함과는 상관없이 세상의 것에만 관심을 갖는다면
이스라엘과 같이 포로로 잡혀가고 온 세상에 흩어버리는 운명이 되고 말 것이다.
우리의 참된 행복과 번영이 우리의 온전한 거룩함에 있음을 알자.
그리스도의 성품과 삶을 온전히 닮고 장성한 분량까지 성장하는 데 있음을 알자.
하나님의 영광과 축복을 이루는 것은 우리의 성취들이 아니라 성결, 거룩함임을 명심하자.
악인은 있는 것을 다 빼앗기고 의인은 땅을 차지함을 믿자.
(시37:34-36) '여호와를 바라고 그의 도를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땅을 차지하게 하실 것이라
악인이 끊어질 때에 네가 똑똑히 보리로다 내가 악인의 큰 세력을 본즉 그 본래의 땅에 서 있는
나무 잎이 무성함과 같으나 내가 지나갈 때에 그는 없어졌나니 내가 찾아도 발견하지 못하였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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