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가 전한 복음이 있고, 그것과는 다른 ‘다른 복음’이 있다고 한다.
사도가 세운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인데도 그들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랐다.
사도가 큰 능력과 확신과 기사와 표적을 가지고 직접 세웠는데도
그들이 속히 다른 복음을 따라가서 사도가 이상하게 여기고 있다.
사도가 하나님의 직접 계시를 받아 큰 능력과 기적과 은혜로 세운 교회가 그러하였으니
지금 이 악한 시대에서 연약한 목자들이 세운 교회들은 다른 복음 따르는 것이
얼마나 쉽게 가능하고 만연될 수 있는 일인지 알 수 있다.
바울 사도는 이 갈라디아 교회 뿐 아니라 그가 세운 고린도교회에 대하여서도 같은 말을 한다.
(고후 11:2-4)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그러나 나는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만일 누가 가서 우리가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그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그들을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했다.
그러나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그들의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하고 말았다.
사도가 전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을 누가 전하니 그들이 잘 용납하고 말았다.
오늘날 수많은 이단들이 들끓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문제는 복음주의 교회라는 교회들이 다른 복음과 다른 영으로 오염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예수의 은혜로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을 속히 떠나는 것이다.
사람들을 ‘교란하여 사도들이 전한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는 것이다.
그들이 예수도 그리스도도 말하고 하나님도 성령도 성경도 말하지만
그것은 입술에 바른 말이고 변질되고 왜곡되어 의미가 탈색되어 버린 텅 빈 말일 뿐이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열심히 제사를 드리면서도 속으로는 열심히 우상을 섬긴 것과 같다.
다른 복음을 따라간다는 것은 그냥 선호도를 결정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영혼과 가정과 기업의 생사화복을 결정짓는 선택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우리 영혼과 가정과 기업에 저주를 가져오기 때문에 우리의 경각심을 일깨워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는 다른 복음을 전하여 교란하는 자들에게 저주를 퍼붓고 있는 것이다.
(갈1:8-9)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그들이 다른 복음을 속히 따라간 것은 거짓 선지자들이 다른 복음을 전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먼저 저주를 받아야 할 자들은 다른 복음을 전한 거짓 선지자들이다.
어떤 선생의 가르침을 받느냐가 어떤 복음을 따르는가를 결정짓게 된다.
그러나 해산하는 수고를 하여 복음으로 생명을 낳는 아비같은 스승의 가르침을 받고도
사람이란 것은 얼마나 간사한지 그럴싸한 가르침을 만나면 그것이 진짜인 줄 알고
혹하여 넘어가서 다른 복음을 좇아 간다.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하는 책망은 오늘 우리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는 말씀이다.
(갈3:1-3)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성령을 받고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도 육체로 마칠 수 있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생애이다.
안에 거하시는 성령의 소욕보다는 육체의 소욕을 좇아가면 그런 결과를 낳는다.
그 선택을 우리에게 맡기고 삼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능력을 힘입어 이기라고 하신다.
다른 복음은 다른 예수를 전하게 돼 있고 그 배후에는 다른 영의 역사가 있게 마련이다.
다른 영이 역사하여 다른 예수를 믿게 하려고 다른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사도가 전한 그리스도의 복음을 교란하여 변질시키고 왜곡하는 것이다.
다른 예수 다른 영을 섬기게 하는 것이다.
다른 영이 역사하는 신비주의 전통과 수련 방법들이 오늘날 주류 교단들을 휩쓸고 있다.
어제 경향 신문에는 폴 니터라는 미국 유니온 신학교 석좌교수가 쓴 책이 소개되었다.
제목이 이렇다. “붓다 없이 나는 그리스도인일 수 없었다.”
부처를 통해 만난 하나님이 곧 예수가 만난 하나님이고 자기의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불교의 신비주의를 통해 깨달은 하나님이 곧 기독교의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성령이 없으면 모든 신비주의로 만난 신이 기독교의 하나님으로 둔갑하고 그 신도가 된다.
이런 유의 신비주의가 관상기도 또는 침묵기도라는 수련을 통해 많은 교회들에 보급되고 있다.
만트라를 반복하고 호흡기도를 통해 신을 체험하고 빛과 에너지를 경험하고 음성을 듣는다.
영을 시험해보지도 않고 체험하고 들리고 보면 성경의 하나님으로 동일시하며 미혹되고 있다.
다른 영은 사탄이요 옛 뱀이요 용이다. 그 졸개들인 귀신들을 포함한다.
이 옛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지금도 그들이 역사하여,
성도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하게 하는 것이다.
이 세상 풍속을 좇고,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을 타고 사탄은 들어온다.
엡 2장은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이라고 했다.
공중 권세 잡은 자를 따르는 것이라고 했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시고 은혜로 구원하여 주셨다.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다.
이것이 사도가 전한 그리스도의 복음이다.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지 아니하고 순전한 말씀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전하는 것이 진정한 복음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해서 영적 싸움이 끝난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신다고 해서 만사가 해결된 것이 아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값싼 복음, 변질된 다른 복음들의 영향을 받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영적 싸움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거듭나면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이 영적 싸움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 주님은 십자가에서 죄에 대하여 죽으신 것이다.
부활하신 것도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다시는 죄에게 종노릇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에게 성령을 주셔서 거하게 하시는 것도
이 죄와 싸워 이기고 주님을 닮아 거룩하게 하기 위함인 것이다.
성령의 소욕과 육체의 소욕이 우리 안에서 싸우며 우리는 승리의 길로 가는 것이다.
아들이 십자가에서 흘린 보혈의 능력과 아버지의 사랑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의 능력을 힙입어
우리는 육체와 마음의 죄와, 세상과, 사탄과(3 원수들과) 싸워 이기는 싸움을 우리가 해야 한다.
그것이 거룩함에 이르는 길이고 성화의 작업이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우리 주님을 닮아가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이르르는 것이다.
우리의 육체와 마음 속에 있는 죄와 그 배후에 있는 사탄과 싸우지 않는 사람들은
다른 복음이 들어올 여지를 제공하여 사탄이 역사하게 된다.
그러면 그들이 전하는 다른 예수를 믿게 되고 사탄은 그 예수를 통하여
우리를 저주와 멸망으로 인도하게 된다.
죄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하지 않으면서 당장의 형통과 재물의 축복을 말하는 자들이
미국의 텔레비전을 장악하고, 그들의 책들이 수백만 부씩 팔리고 우리에게 번역되고 있다.
가관은 대형교회 목사들이 추천서를 쓰고 그들의 출판사들이 책장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전하는 예수를 보면 얼마나 성경의 말씀들을 왜곡하고 변질시키는지 모른다.
그들이 성령을 팔아 하는 짓을 보면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 사탄의 역사가 분명한데도
대부분의 목사와 성도들이 속아 넘어가고 본받고 흉내내고 하수인들이 되어 가고 있다.
다른 영의 대표적인 인물이 한국 목사들이 가장 흠모하는 베니 힌이다. 그의 말을 들어보라.
“당신은 중생할 때, 말씀이 당신 안에 육신이 되셨다. 그래서 당신은 그분의 살 중의 살이요 뼈 중의 뼈가 된 것이다. 예수를 모셨다고 말하지 말라. 당신은 그분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든 것이다. 이렇게 말하라‘내가 내가 내가 내가 내가 예수다’ 당신은 정녕코 결단코 ‘아프다’고 말해선 안 된다. 당신이 새로운 피조물이라면 어떻게 아플 수 있겠는가? 이렇게 말하라 ‘나는 치유 받았다’."
힌은 욥의 곤경이 두려움의 말을 했고 하나님께 불평을 쏟아놓았기 때문에 찾아왔다고 주장한다.
욥의 “입이 제일 큰 문제”였다고 주장한다.
베니 힌은 하나님을 강매자로까지 왜곡한다. “여러분, 여러분의 씨앗을 뿌리지 않고 가지고 있을 때마다, 여러분이 좋건 싫건 하늘나라에서는 20퍼센트의 벌금이 부과된다. 아니 여러분이 내놓지 않으면 하나님이 참사를 일으켜 걷어 가신다.. 하나님께 드리지 않으면 당신이 싫건 좋건 곤경을 통해서 가져가실 것이다.”
기름부음’을 받기 위해 케서린 쿨만과 에이미 셈플 멕퍼슨의 무덤을 자주 찾는다고 인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힌은 <안녕하세요 성령님>,<성령의 기름부으심>과 같은 대형 베스트 셀러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되었다. 그는 1999년10월19일에 전 세계인들이 텔레비전 수상기 주변에 관들을 나란히 정렬하고, 죽은 자들의 손을 TV 스크린에 얹어 안수하면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1990년1월1일 힌은 하나님이 그에게 쿠바의 카스트로와 미국의 동성연애자들의 운명을 말씀으로 알게 하셨다고 했다. ‘성령께서 카스트로가 90년대에 죽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더 이상 권좌에 있지 못합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도 카스트로는 살아있고 그의 정권은 지속되고 있다.) ‘동생연애자들은 불로 멸망시킬 것입니다.’
1993년 힌은 허황된 공언을 했다. 예수님이 7년 후인 2000년3월29일에 ‘우리의 집회들 중 한 집회에 육체로 나타나실 것이다’ 그리고 10년이 흘렀다. 2010년이 역사의 뒤안길로 넘어가고 있지만 그의 예언은 성취되지 않고 있다.
다른 복음의 대표적인 인물이 ‘긍정의 힘’의 조엘 오스틴이다.
‘우리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말이 중요하다. 믿음 혹은 상상력을 동원해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자신의 인생을 향해서 믿음의 말을 해야 한다. 당신의 말에는 엄청난 창조의 힘이 깃들어 있다. 무엇인가를 말하는 순간, 당신은 그 말에 생명을 주는 것이다. 이것은 영적 원리이다. 좋은 말을 하건, 나쁜 말을 하건, 긍정적인 말을 하건, 부정적인 말을 하건 이 원리는 동일하게 적용된다.’(조 아무게 목사는 4차원의 영성으로 이 복음을 가르치고 있다.)
‘매주 4만7천명이 출석하는 레이크우드교회의 목사이자(2위와의 격차가 두 배 이상 된다), 1백여 나라들에 주일예배가 실황 중계되며, 최고급 맨션에 살고 전용 제트기로 여행한다. 두 번째 베스트 셀러만 해도 1천1백만 부나 팔렸다.’ 그의 말과 글들은 근거 없는 일화들과 성경의 오용 그리고 잘못된 해석이 빚어낸 무용담들로 꽉 차있다. 베데스다 연못가에 누워있던 마비환자 일화를 왜곡한다. 우리의 말과 행동이 현실을 만들어낸다는 전제를 입증하기 위해서다. ‘이 마비환자는 치유받기 전에 자리를 들고 걸어 나갔어야 했다. 신세 한탄만 하고 누워있어선 안 된다’.
오스틴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구속의 사역을 완수하신 게 아니라고 말한다. 예수님이 사탄의 손에서 죽음과 지옥의 열쇠를 탈취하셔야 했다고 말한다. 그는 지옥에서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두 세력이 역사상 처음으로 대결전을 벌이기 위해 만났다’고 한다. 믿음의 힘이 너무 강력해서 우주의 주권자라도 이 힘에 묶인다는 그의 주장은 더 큰 문제다.
오스틴은 조상으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저주와 함께 전해 내려오는 축복이 ‘당신의 DNA’를 통해 계승된다는 것이다. “아들은 아버지의 죄악을 담당하지 아니할 것이요 아버지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하지 아니하리니”(겔18:20).
다른 영, 다른 복음을 전하며 세상과 교회를 교란하는 대표적인 인물 둘의 주장만을 소개했다.
그 외에도 수많은 거짓 선지자들과 거짓 부흥사도들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이들에 대한 성경의 경고는 다음과 같다.
(렘23:16,21,26)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 그들은 너희에게 헛된 것을 가르치나니 그들이 말한 묵시는 자기 마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니라 -- 이 선지자들은 내가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달음질하며
내가 그들에게 이르지 아니하였어도 예언하였은즉 --거짓을 예언하는 선지자들이 언제까지 이 마음을 품겠느냐 그들은 그 마음의 간교한 것을 예언하느니라'
(벧후2:1-3) '그러나 백성 가운데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그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여럿이 그들의 호색하는 것을 따르리니
이로 말미암아 진리의 도가 비방을 받을 것이요 그들이 탐심으로써 지어낸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득을 삼으니
그들의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멸망은 잠들지 아니하느니라'
우리 주님도 말씀하셨다.
(마7:15-19)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거짓 선지자들의 특징은 사람의 뜻을 따라 자기 탐욕을 위해 성경과 성령을 왜곡한다는 것이다.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사망과 멸망을 낳는 길로 가는 자들이다.
사도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갈1:11-12)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우리가 다른 복음에 현혹되지 않을려면 말씀과 기도에 충실하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다.
다른 영들에 미혹되지 않을려면 먼저 깨어 기도해야 한다.
사도 베드로마져도 예수님 옆에 있으면서도 그가 깨어 기도하지 않을 때 시험에 들고 말았다.
깨어 기도하지 않으면 잠들 수 밖에 없고 그 잠든 터에 사탄은 어둠의 집을 짓고 만다.
왜 주일날 예배 드리러 오는 것조차 힘이 드는가?
그 어둠의 영이 그 사람의 심령의 상당 부분을 점령했다는 증거라 할 수 있다.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이 우리를 만나주시고 어둠을 영들을 은혜로 몰아내 주신다.
은혜와 말씀으로 생명과 빛이 심령에 들어가고 영혼을 일깨우고 믿음과 활력을 불어넣어 주신다.
기도와 말씀이, 영과 진리가 살아 역사하는 것이 주일 예배가 아니겠는가?
기도와 말씀을 보충해 주는 것이 금요기도회 수요예배라 할 수 있다.
여러분, 예배와 기도회를 사랑하고 헌신하시기 바란다.
우리 잠든 심령을 다시 깨어주고 믿음이 살아나게 하고 삶의 목적과 푯대를 분명히 해주잖아요?
우리 자신이 그렇게 강건하고 대단한 존재들이 아닌 것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수시로 일깨움을 받아야 하고 다시 일어서야 하는 연약한 존재들이다.
자극과 은혜가 없으면 그냥 주저앉고 늘어져 버리기가 십상이다.
그 메마르고 피곤한 심령에 어둠의 영이 깃들고 다른 복음 다른 예수가 자리잡는 것이다.
왜? 바른 복음이 심령에 없으니 이를 합리화하고 쉬운 길을 찾고 싶은 유혹에 약하기 때문이다.
거짓 선지자들이 미혹의 영으로 다른 복음으로 미혹할 때 여지없이 끌려가고 만다.
청교도들처럼 교회가 항상 예배를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교리로 가르치고 삶에 적용할 때는
그런 다른 영 다른 복음 다른 예수가 활개를 치고 들어올 수가 없었다.
그들을 연단하는 핍박과 궁핍은 있었어도, 그 영적 전투를 통하여 그들은 성숙에 이르렀다.
거룩함에 이르렀고 영광에 이르렀다.
오늘날 교회에 가장 부족한 것이 바로 이러한 요소들이다.
죄의 위험성과 죄와의 싸움과 회개를 강조하지 않고,
이 땅에서의 형통과 축복, 위로와 평안만을 강조하는 다른 복음을 조심해야 한다.
그것이 우선은 좋고 쉽고 금방 뭐가 될 것 같지만 성경은 그렇게 가르치는 법이 없다.
다 어두운 사탄의 사탕발림이요 그 하수인들인 거짓 선지자들의 미혹일 뿐이다.
여러분, 바른 복음 바른 영 바른 예수를 만나는 길은 성경을 사랑하고 묵상하고
그 말씀들을 교리로 공부해서 구슬로 꿰고 심령에 새기고 내 삶의 원칙으로 삼는 길 밖에 없다.
쉽고 빠르고 직통이라는 것이 항상 함정이고 멸망으로 인도하는 길이다.
하나님께서 가나안의 기업을 약속하시고, 광야에서 훈련을 하시는 것은
주리게도 하시고 낮아지게도 하시는 고난의 훈련을 광야교회에서 하시는 것은
그러면서도 만나와 생수를 은혜로 공급해주시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훈련을 하기 위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가나안의 기업을 오래 오래 누리게 하려는 것이다.
(신8:2-3)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사람이 떡으로만 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을 알게 하시는 것이다.
그 말씀이 인격이 되고 삶이 되는 연단을 하시는 것이다.
그 끝에 요단이 갈라지고 가나안의 기업이 열리는 것이다.
하나님의 순서는 이렇다.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시 73:24)
이것이 하나님의 순서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게 하시고 후에 모든 것을 더해 주시는 것이다.
거짓 선지자들은 다른 복음으로 이 순서를 교란하여 그리스도를 향한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그리스도인들을 부패하게 하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좋게 하고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다가 다른 복음을 따라가게 된다.
(갈1: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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