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위기 때 돌로 치는 사람들이 있다.
다윗과 부하들이 사울과의 전쟁에 참여할려고 갔다가 거절당하고 돌아왔더니
그들의 안식처였던 시글락성읍이 불탔고, 자기들의 아내와 자녀들이 다 사로잡혀 가고 없었다.
다윗의 부하들은 시글락에 머물면서 약탈을 하며 가정의 안락함과 소유를 늘려가고 있었다.
적의 진영에서 사는 도피생활이었지만 그래도 1년 4개월 동안 평안한 일상이었다.
그들은 그들이 시글락에서 소유하고 누렸던 것, 그것들이 의지가지였고 하나님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하루 아침에 다 빼앗기고 말았다.
세상이 이제 다 끝난 것 같았다.
그들은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를 높여 울었다.
그리고 나서 정신을 차리고 나서 그들은 아주 위대한 결정을 하였다.
그 위기의 모든 책임과 원인을 다윗에게 돌리고 그를 돌로 치자는 것이었다.
어딧다든 분풀이 화풀이를 해야 했고 그들의 마음을 달래줄 속죄양이 필요했다.
위기를 만나면 흔히 저질르기 쉬운 해결 방법이다.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
왜 하나님이 이런 위기를 겪게 하였을까 한 마디 물음도 없었다.
그동안 그들을 보호하고 지켜주셨던 하나님도 다윗도 한갓 원수로만 보일 뿐이었다.
그리고 더 이상 다윗에게는 소망이 없어 보였다.
그래도 그래도 하고 소망을 가지고 옆에 붙어 있었는데
시글락 사건이 터진 걸 보니 이젠 다윗도 다 끝난 것처럼 보였다.
다윗도 하나님께 버림 받은 인생으로 보였다.
최후에 돌로 치는 사람들은 대개 옆에서 소망을 보고 충성을 하던 사람들이다.
상대가 잘 나가고 자기들에게 유익하고 좋을 때는 충성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시글락 위기가 닥치고 마음 상하고 소망이 없어 보이고 본전 생각이 나면 돌로 친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분명 하나님의 가나안 약속을 믿고 모세를 따라 나선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광야에서 크고 작은 시글락의 위기들이 닥쳐 온다. 약속과 다른 것이다.
시글락 위기들이 닥쳐 올 때마다 그들은 하나님을 원망불평하고 모세를 돌로 쳐 죽일려고 했다.
“애굽에서의 노예생활이 더 좋았어, 돌아가자”였다. 거침돌인 모세를 돌로 치자였다.
이 고난과 위기의 책임들이 모세에게 있었다. 모세는 가나안을 가지고 사기친 자였다.
하나님이 간섭하시지 않았다면 모세는 그들에게 여러 번 돌에 맞아 죽었을 것이다.
사도행전 7장에 돌아 맞아 죽는 스데반의 기사가 나온다. 유대인들이 왜 그를 돌로쳐 죽였는가?
그들을 향해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리는도다”라고 말할 뿐 아니라,
“하늘이 열리고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하고 말한 것 때문이었다.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쳤다”.
“증인들은 옷을 벗어 사울의 발 앞에 두었다”.
돌로 치는 사람들은,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받지 못한 사람들,
성령을 항상 거슬리며 마음과 육체의 원하는 대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성령의 뜻과 감동에는 마음과 귀를 닫고 오직 목을 곧추 세워 자기 의를 행사한다.
그들이 돌로 치며 내세우는 죄목은, 그가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위한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사람을 돌로 쳐 죽이는 것이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한 사람들도 하나님을 모독했다는 것을 죄목으로 삼았다.
이들은 항상 하나님을 위하고 하나님의 뜻(모세의 법)을 행하는 모양을 갖춘다.
요한복음 8장에도 돌에 맞아 죽을 뻔한 간음한 여인의 이야기가 나온다. 성전에서의 대화이다.
(요8:3-5)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예수님의 대답은 뭐였는가?
“너희 중에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그들은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갔다.
오직 주님과 그 가운데 여자만 남았을 때 여인에게 주님은 말씀하셨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압살롬에게 쫓겨 갈 때에 다윗에게 돌을 던진 사람이 있었다. 시므이이다.
(삼하16:7-8) '시므이가 저주하는 가운데 이와 같이 말하니라 피를 흘린 자여 사악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그를 이어서 네가 왕이 되었으나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넘기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린 자이므로 화를 자초하였느니라 하는지라'
시므이는 압살롬이 왕이 되어서 다윗의 시대는 이제 끝났고 별 볼일 없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 정황만 보면 다윗은 이제 끝이 났고 소망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 시므이는 맘 놓고 돌을 던지고 저주를 퍼부었다.
그런데 압살롬의 난이 평정되고 다윗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귀환할 때 시므이가 목숨을 구걸한다.
(삼하19:19) '내 주여 원하건대 내게 죄를 돌리지 마옵소서 내 주 왕께서 예루살렘에서 나오시던 날에 종의 패역한 일을 기억하지 마시오며 왕의 마음에 두지 마옵소서'
쉽게 돌을 던지고 쉽게 목숨을 구걸하는 불쌍한 사람들이 시므이들이다.
다윗은 좋은 날에 살인하기 싫어 살려줬지만 솔로몬에게 그의 처리를 유언으로 남겼다.
솔로몬의 명을 어김으로 인해 그는 결국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위기에 처했을 때 직접 돌을 던지지는 않았지만 사람의 마음에 돌을 던지는 사람들이 있다.
다윗왕의 제2인자 총사령관 요압이다.
그는 압살롬을 죽이지 말라는 다윗의 명을 알고서도 죽여서 다윗의 마음에 돌을 던졌다.
요압은 다윗의 밑에 있었지만 자기의 평안과 안전과 복수를 위해 함부로 칼을 휘둘렀다.
동생의 복수를 위해, 다윗이 받아들인 이스라엘 군장 아브넬을 죽여 다윗의 마음에 돌을 던졌다.
또한 대신 군장이 된 아마사를 임의대로 살인하여 다윗의 마음에 돌을 던졌다.
이 요압은 아도니야의 반란 때 가담하여 다윗의 마음에 돌을 던진 아비아달 제사장이
솔로몬 왕에 의해 고향집으로 보내지는 날 제단 뿔을 붙들고 사정하다 죽임을 당하였다.
자기 권한을 의지하여 부귀영화를 누리며 이익을 좇아 감정을 좇아 산 사람들의 최후이다.
그들의 교만과 탐욕의 삶이 빚어내는 결과였다.
뜻을 좇는 것이 아니라 평안과 위로와 탐욕을 좇는 삶은 끝이 좋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
우선은 평안하고 위로가 되고 누리고 되는 것 같은데 종말은 비극으로 끝나는 것을 본다.
뜻을 좇는 삶은 압살롬(내부)의 반란과 시글락(외부)의 위기를 겪으며
힘들고 고달프고 낙심도 되지만, 그 끝에 왕관이 기다리고 가나안이 기다리고 있다.
왕관과 가나안은 그런 사람들의 몫이다.
이 일을 솔로몬이 하는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그의 손을 통해 심판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이 왜 이 일들을 자세하게 기록하게 하고 있을까요?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은 항상 인간사 가운데 행해지고 있음을 거울로 보여주기 위함이다.
하나님이 약속한 기업은 위기들을 거치며 마음이 완전해지고 손이 능숙해진 자들의 몫이다.
동일한 부지런을 가지고 믿음과 인내로 받는 것이 가나안 기업이다.
위기로 인하여 피곤한 손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곧은 길로 간 자들의 몫이다.
2. 위기 때 하나님을 힘입어 용기를 얻는 사람이 있다.
시글락의 위기 때 하나님과 멀어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욥의 아내가 대표적이다.
(욥2:9)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욥의 대답은 이렇다.
(욥2:10) '그대의 말이 한 어리석은 여자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하지 아니하니라'
롯의 아내도 소돔과 고모라 성이 유황불에 망하는 위기가 닥쳤는데도,
두고 오는 세상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뒤돌아 보다가 소금 기둥이 되고 말았다.
위기가 닥치면 세상을 향해 달려가고 거기서 해결책을 찾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하나님의 사람들도 처음에는 애굽을 향해 가서 도움을 청했다.
아브라함도 애굽으로 갔지만 그 결과는 거기서 얻은 하갈로 인하여 이스마엘을 낳았다.
이스라엘은 애굽을 의지하다가, 유다는 앗수루를 의지하다가, 망하고 말았다.
다윗도 아둘람굴의 고난에 시달리다가 블레셋에 들어가 사울의 끈질긴 위기를 모면하려 하였다.
시글락의 위기는 블레셋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려는 하나님의 역사였다.
이 시글락의 위기에도 나를 의지하느냐의 시험이었다.
과연, 다윗은 크게 다급한 가운데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다.
돌로 치는 자들과 의논하거나 사정하거나 도움을 청하지 않고 하나님께 물었다.
다윗은 우림과 둠밈이 들어 있는 에봇을 가져오게 하여 물었고, 하나님은 응답하셨다.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따라잡고 도로 찾으리라”.
하나님은 애굽 소년을 만나게 하셨고 그의 인도를 받아 그들을 죽이고 도로 찾았다.
우리가 본받을 사람은 돌팔매질을 잘 하는 다윗의 부하들이 아니고
시글락의 위기와 돌팔매질을 하는 사람들로 인하여 크게 다급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은 다윗이다.
모세도 하나님을 힘입어 용기를 얻고 시글락의 위기들을 극복하였다.
반역하는 백성들에게 사정하거나 마음을 돌이키려 하지 않고 하나님께로 나아갔다.
모세는 그때마다 하나님께 엎드렸고 용기를 얻었고 하나님의 나타나신 역사로 극복했다.
욥도 극심한 환난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잃지 않고 용기를 얻어 극복했다.
(욥1:21-22)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바울은 우리에게 왜 이런 시글락의 위기들이 오는지 그 이유를 분명히 말씀해 주고 있다.
(고후1:8-10)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 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 '
시글락의 위기들은 누구를 돌팔매질 하라고 주는 것이 결코 아닌 것이다.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기 위함이다.
오직 자기를 의뢰하는 자들이 자기들 감정을 따라 그럴싸한 이유를 갖다 대며,
하나님의 사람을 돌팔매질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은 하나님께 돌팔매질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에게 하는 원망을 하나님께 하는 원망으로 들으셨다.
(출16:8) '모세가 또 이르되 여호와께서 저녁에는 너희에게 고기를 주어 먹이시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불리시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자기를 향하여 너희가 원망하는 그 말을 들으셨음이라 우리가 누구냐 너희의 원망은 우리를 향하여 함이 아니요 여호와를 향하여 함이로다'
시글락 위기를 주신 분도 하나님이요 해결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그분을 힘입고 용기를 얻어 시글락의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좋은 것을 주실 때에도, 위기를 주실 때에도 우리는 그분을 경외하여야 한다.
3. 위기는 축복을 위한 마지막 시련일 때가 있다.
시글락의 위기들은 우리 마음의 완전함과 손의 익숙함을 위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고난들이다.
하나님을 힘입고 용기를 얻어 순종하며 나아갈 때 우리의 축복이 앞당겨지는 것이다.
다윗에게 있어 이 시글락의 위기는 그가 왕위에 오르기 위한 마지막 시련이었다.
이 시글락의 위기에서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다윗을 보고 왕관을 주셨다.
다윗이 시글락 위기를 겪고 있을 때 하나님은 사울왕을 전쟁터에서 처리하고 계셨다.
그것을 알 수가 없었던 그의 부하들은 다 끝난 줄 알고 다윗을 돌로 쳐 죽일려고 하였다.
우리는 우리 앞에 무엇이 오는지 한 치도 내다볼 줄 모른다.
하나님은 이 위기를 통해 왕관을 준비하고 있는데
부하들은 귀하게 여기던 것들을 다 빼앗겼으니 최후의 저주가 내린 것으로 판단하였다.
다윗은 시글락 위기로 빼앗긴 모든 것들을 회복하고 많은 전리품들까지 얻게 되었다.
그의 마음과 손의 완성된 모습은 그 전리품들을 나누는 데서 드러난다.
못 좇아온 무리들과도 나누고, 유대 장로들에게 나누어 주어 그들의 마음을 산다.
그리고 이틀 후 사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리고 하나님께 물어서 헤브론으로 올라가 왕위에 오른다.
거기서 7년 (반), 예루살렘에서 33년, 도합 40년간 왕위를 누린다.
그의 아들 솔로몬은 다윗 아비 덕에 훌륭한 왕이 된다.
그는 성전을 짓고 왕궁을 짓고 이스라엘 전체가 태평성대를 누린다.
아브라함도 이삭을 번제 제물로 바쳐야 하는 시글락의 위기를 겪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삶의 전부나 다름 없던 이삭을 번제 제물로 바쳐야 하는 위기가 온 것이다.
그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어 모리아 산을 올라갔을 때
하나님은 숫양 제물을 따로 준비하고 계셨다.
하나님의 크신 축복이 예비 되어 있었다.
(창22:16-18)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요셉의 억울한 감옥살이도 그에게 시글락 위기였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그를 총리로 세우기 위한 마지막 시련이었다.
(창40:14-15) '당신이 잘 되시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아뢰어 이 집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나는 히브리 땅에서 끌려온 자요 여기서도 옥에 갇힐 일은 행하지 아니하였나이다'
(창40:23)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를 잊었더라'
(창41:1) '만 이 년 후에 바로가 꿈을 꾼즉'
술맡은 관원장을 의지하다가 2년을 더 감옥에서 산 다음 하나님은 그를 총리로 세우셨다.
우리는 일생 동안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가운데서
크고 작은 시글락의 위기들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든 것을 빼앗기고 잃고 돌팔매질을 당하는 시글락의 위기는
왕권의 축복을 실현시키는 마지막 시련이다.
시글락위기 때 원망 불평하거나, 행여 돌 팔매질하는 주인공들이 되지 않도록 하자.
위기가 올 때마다 하나님의 부르심임을 알고 하나님께로 돌이키자.
위기는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뢰하기 위한 목적으로 주어짐을 믿자.
시글락 위기는 왕권의 축복을 위한 마지막 시련임을 알고 다급한 중에도 흔들리지 말자.
우리 하나님 여호와,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 우리 안의 성령을 힘입고 용기를 얻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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