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나서,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고 하신다.
그리고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고 하신다.
주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바울 서신을 통해 하시는 말씀이다.
1. 깨어라
악하고 험한 이 세대에서 우리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깨어나는 것이다.
우리의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대로 살았던 시절은 지나간 때로 족한 것이다.
세상 풍조를 따라 사는 것이 바로 우리 영혼이 잠자는 것이다.
어거스틴이 젊을 시절을 방탕과 탐욕으로 살고 있을 때 들려주신 말씀은 로마서 말씀이었다.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롬13:11-14)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다고 하신다.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는 것이 자다가 깨어나는 것이다.
어둠의 일을 하는 것, 그것이 자고 있는 것이다.
방탕하고 술 취하고 음란하고 호색하는 것, 다투거나 시기하는 것,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는 것이 어둠의 일을 입고 자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끊고,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 것,
그것이 자다가 깨어나는 것이다.
빌립보서도 말씀한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 (엡 5:8-14)
예수 믿기 전과 후는 이렇게 확연히 달라지는 것이다.
자다가 깨어나는 것이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는 것이다.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 되는 것이다.
어둠은 음행 더러움 탐욕으로 사는 것을 말하고 그들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을 수가 없다.
오히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
이 진노는 지금 삶 가운데서 임하고 있는데도
사람들은 그것이 진노인 줄도 모르고 당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주 안에서 빛이 되었으니,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고 하신다.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다고 하신다.
착하면서도 의로움이 있어야 하고 진실함이 있어야 한다.
착하고 진실하면서도 의로움이 있어야 한다.(자기 의가 아니고 하나님의 의이다.)
진실하고 의로움이 있으면서도 착함이 있어야 한다.
내 힘으로는 못해도 내 안에 계신 주님의 빛으로 성령을 의지하여 우리는 할 수 있다.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하나씩 해가는 것이다.
그래서 이 빛의 열매들이 균형을 이룰 때 우리는 성숙한 것이다.
그때까지 우리의 믿음의 선한 싸움은 계속되어야 하는 것이다.
믿음의 선한 싸움에서 우리가 승리하기 위해 꼭 해야 할 것이 깨어 기도하는 것이다.
주님이 우리에게 하신 말씀이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마 26:41)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눅 21:36)
2. 믿음에 굳게 서라.
우리의 믿음의 선한 싸움에서 승리를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고전15:57-58)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자.
그러므로 우리는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살면서 믿을 것은 우리의 인간관계와 소유물들이 아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것들을 믿고 의지하며 큰 소리치고 살지만
우리가 믿고 의뢰할 분은 오직 삼위일체 영광의 하나님이신 것이다.
'하나님이 영원히 너를 멸하심이여
너를 붙잡아 네 장막에서 뽑아 내며 살아 있는 땅에서 네 뿌리를 빼시리로다 --
이 사람은 하나님을 자기 힘으로 삼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 재물의 풍부함을 의지하며 자기의 악으로 스스로 든든하게 하던 자라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음이여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의지하리로다' (시52:5-8)
하나님을 자기 힘으로 삼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 재물의 풍부함을 의지하며
자기의 악으로 스스로 든든하게 하던 자는
하나님이 붙잡아서 장막에서 뽑아내고 살아 있는 땅에서 뿌리채 빼서
영원히 멸하실 날이 온다고 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의지하는 우리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이 뿌리가 박히고 열매를 맺게 하신다는 말씀이다.
우리 인생의 최종 승부는 누구를 무엇을 의지하는가에 달려 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공의로우심을 믿고 믿음에 굳게 서시기 바란다.
주의 손을 떠나 주님 모른 채 우리 가운데 일어나는 일은 하나도 없다.
비록 지금은 우리가 그 뜻과 섭리를 다 알 수 없고 헤아릴 길이 없지만
지나고 보면 꼭 필요한 과정이었기에 하나님이 하신 일인 것을 알고 감사하게 된다.
고난이 네게 유익이었다고 고백할 날이 오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들이 다가 아니다.
오늘 우리의 환경이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광야 끝에 가나안의 기업이 있는 것이다. (마침내 복을 받는 것이다.)
광야에서 우리는 고난으로 훈련과 연단을 받으면서 부지런과 믿음과 인내로 살아야 한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
잠시 후에는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 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 (시 37:7-11)
(악으로 형통하던 자들은 끊어지고 없어질 것이다.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믿음에 굳게 서서 참으로 기다려야 한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롬 24-25)
우리 주님은 말씀하셨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요 14:1)
우리로 하여금 믿음에 굳게 서지 못하게 하는 것은 생활과 환경에 대한 염려 때문이다.
이 염려와 근심들이 가시덤불이 되어 말씀이 우리 안에서 결실을 못맺게 하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우리의 믿음이 바다의 파도처럼 요동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 주님이 제자들을 나무라는 것은 그들이 믿음이 작다는 것이었다.
(마 6: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마 8: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마 17:20)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우리의 믿음을 흔들리게 하는 것은 또한 철학과 헛된 속임수들 때문이다.
(골 2:7)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
(얼마나 많은 철학적 사상들과 헛된 소임수들이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지 모른다.)
그 해결책은 오직 한 가지이다. 주 안에서 행하며 교훈을 받은대로 믿음에 굳게 서는 것이다.
(골 2:6)'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19세기 말부터 개혁주의 청교도 신앙 대신에 값싼 형통의 복음들이 들어오면서
교회 안에서 교리문답과 교육이 사라지고 가벼운 단답형 성경공부들이 자리잡게 되었다.
제자훈련이라는 것도 보니까, 가벼운 성경공부를 하면서 목사의 추종세력을 만드는 것이었다.
성경은 우리가 가끔 사용하는 좋은 금언이나 격언으로 써먹을 것이 아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인 것이다'(시119:105).
성경은 교리로 정리되지 않으면 꿰지 않은 구슬들과 같다.
교리로 확실하게 말씀을 붙들어야 내 인생의 등이 되고 빛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개혁주의 청교도 교회들은 어린 주일학교 시절부터 소요리문답을 외우게 하였고
어른들도 외우고 확인하는 작업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러니 이단들이 이상한 복음들이 교회에 침투하거나 자리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 시대의 교인들은 교리 공부를 가장 싫어하는 것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이단들이 날뛰고 이상한 복음들이 교회 안에서 난무한다.
저도 눈치를 봐가면서 겨우 점심시간을 기다리는 막간에 하고 있잖아요?
정식으로 체계적으로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도하며 기다리고 있다.
주님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해야 할 것이다.
교훈은 교리를 말한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딤후 3:16-17)
모든 성경은 성령의 영감을 받아 사람이 기록하였고,
성경은 교훈(교리)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참으로 유익하다.
이 유익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람이 온전하게 성숙하게 되는 것이고
모든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을 즐거워하고 주야로 묵상하고 지켜 행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형통한 인생을 살게 된다고 보장하고 있다.
3. 남자답게 강건하라.
믿음에 굳게 서되 우리는 또한 남자답게 강건해야 한다.
믿음에 있어서는 여자들도 예외 없이 강건한 사내 대장부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빛의 자녀들처럼 착하고 진실하되 의로워야 하는 것이다.
다윗이 죽으면서 아들 솔로몬에게 당부한 것도 힘써 대장부가 되는 것이었다.
'다윗이 죽을 날이 임박하매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 (왕상2:1-3)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요구하시는 것도 남자답게 강건해지는 것이었다.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수 1:6-7)
강하고 담대하지 않고서는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차지할 수가 없는 것이다.
왜 가정이나 직장에서 우리 믿음의 영역이 확장되지 못하느냐?
강하고 담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남자답게 강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용기만 내면 되는 것이냐? 그렇지 않다.
하나님과 말씀과 교훈으로 내면에 힘을 기르고 믿음에 굳게 서는 훈련이 밑받침되어야 한다.
먼저 내 스스로 어둠의 일을 벗고 낮에와 같이 단정하게 살며
빛의 자녀로서의 삶을 사는 훈련과 연단으로 우리의 맷집과 습관을 길러가야 한다.
그리고 남자답게 강건하게 사는 길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 또한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 하나 우리의 믿음의 영역을 넓혀 가는 데 있어서 용기를 내야 한다.
폭군들은 원수들은 마귀들은 믿음의 용기 앞에 무너지게 돼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저절로 오는 것은 하나도 없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믿음의 달려갈 길을 내가 달려 가야 한다.
4.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해 지되
우리는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고 하신다.
사랑이라는 미명 아래 비겁하게 사는 것을 노예근성으로 사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에서의 사랑의 정의를 다시 기억할 필요가 있다.
세상의 감상적인 사랑과 그 이기주의와 다른 것이 성경이 말씀하는 사랑이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고전 13:4-7)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것이 사랑이다.
불의를 기뻐하는 것은, 분명 불의를 행하고 있는데도 두려워서 웃음짓고 문제가 없는 것처럼
수수방관하는 것도 포함된다.
진리와 함께 기뻐하지 못하는 것은,
진리를 드러내지 못하는 것도 포함된다.
반대로 불의를 기뻐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지 않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는 것이다.
진리를 위해서 우리가 참고 견디는 것이다. 온유하고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는 것이다.
자기 연약함과 두려움을 사랑으로 위장하고 합리화하면 안 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두려움이 아니라고 하셨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딤후 1:7)
하나님이 주시지 않고 사탄과 사람이 주는 두려움은 지혜롭게 용기를 가지고 물리쳐야 한다.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한다는 대원칙하에서 그렇게 해야 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그것이 결국은 진정한 행복과 번영을 가져오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사랑안에서 진리를 행하고 진리 안에서 사랑을 행하는 것이 믿음의 길이다.
여러 행위 가치가 충돌할 때 혼란스러울 때 중요한 것은 순서이다.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고 했으니 모든 것을 참아야 한다는 것은 진리를 왜곡하는 것이다.
잠에서 깨어야 하는 것이 먼저이다.
다음은 교훈대로 믿음에 굳게 서는 것이다.
그리고 믿음에 굳게 서되 남자답게 강건하게 행하는 것이다.
이상의 모든 일을 행함에 있어 사랑으로 행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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