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의 역사는 우리의 구원의 역사를 모형으로 보여준 것이다.
성막과 제사와 절기들이 우리 주님의 십자가의 사역을 모형으로 보여준 것과 같다.
그래서 구약은 그림자요 신약은 실제라고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출애굽 역사는 홍해를 가르는 위대한 기적으로 시작해서 광야의 고난을 거쳐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는 여정이었다.
그러나 마침내 복을 받은 사람은 여호수아와 갈렙 뿐이었다.
그러나 거저 들어간 2세들은 그곳에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우상들을 섬기며
하나님의 법도와 명령을 지키지 않고 세상 풍속을 좇다가 멸망당하고 흩어졌다.
그들은 마침내 자기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역사를 통하여 택한 자들을 구원하는 길을 여셨다.
택한 자들을 의롭다 하시고 이제 고난의 연단을 통해 성화의 길로 인도하신다.
그 끝은 마침내 복을 받고 영광과 천국을 사는 것임을 약속하고 있다.
우리의 믿음의 여정을 확실히 알면 고난의 시절에 우리는 기뻐할 수 있다.
고난 중에도 우리가 마침내 받을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즐거워할 수 있다.
고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알기 때문이다.
1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셨다. (구원의 위대성에 감격하고 감사하라)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와 형벌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이었는데
하나님은 그 크신 사랑으로 우리를 세상으로부터 불러내시고 이끌어내셨다.
교회는 이 불러내신 자들의 모임이라는 뜻이다.
세상으로부터 구별하여 불러냈다는 데 강조점이 있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교회와 세상의 구별이 모호한 사람들은 문제가 있다.
확실한 구분선이 있어야 한다.
거룩은 하나님과 피조물의 엄격한 구별이요, 윗물과 아랫물의 구별이다.
유브라데 강이 말랐다는 것은 교회와 세상의 구별이 무너졌다는 단적인 상징이다.
교회의 부패와 타락상은 이 유브라데 강이 말랐다는 증거이다.
우리를 애굽 땅 종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셨다.
이끌어내시기 전에 우리가 애굽 땅에서 종노릇했음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대 교회들은 오히려 세상의 자유를 가지고 교회를 세상의 종으로 만들려고 한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세상의 자유를 끌어들여 교회를 세상의 종으로 만들고자 한다.
세상의 자유는 죄짓는 자유요, 혼란과 흑암으로의 자유이다.
도무지 세상의 종노릇에서 벗어났다는 의식이 없는 교인들이 많다.
사탄의 종노릇했고, 세상의 탐욕의 노예였다는 의식과 회개가 없다.
예수를 확실히 믿고 거듭난 영혼은 죽었다가 살아났다는 의식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에베소서 2장(1-8절)의 말씀이다.
우리의 구원은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신 사건이다. 죽었다가 산 것이다.
왜 죽어 있었느냐? 죄와 허물 때문이다. 그래서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다.
어떤 것이 죄와 허물로 죽은 것이냐?
세상 풍속을 따르고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대로 산 것이다.
그런데 그 배후에 공중 권세 잡은 자, 악한 영이 역사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서 세상 방법으로, 악한 영의 꾐에 빠져 살았던 것에 대한, 회개가 있어야 한다.
회개하고 예수를 믿는 과정, 회심의 역사가 있어야 한다.
이것이 없다면 교인은 될 수 있어도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될 수는 없다.
그런 교인들이 많은 건 부러워할 것이 못된다.
수를 많이 모아놓으면 목에 힘주고 그 수가 없으면 기죽는 것은 세상의 힘의 논리일 뿐이다.
오늘날 전도는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여 끌어 모으는 것이다.
천국과 축복의 사탕발림으로, 지옥과 저주의 위협으로, 안면을 동원하고, 당근으로 유인하고,
소비자들을 끌어모으는 마켓팅 전략이 여과없이 동원되고 있다.
세상의 철학과 논리를 동원하여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설교하고,
미혹의 영들의 속임수를 동원하여 이교적 신비주의를 기독교 영성으로 둔갑시키고 있다.
그들은 그게 바벨탑이든, 멸망으로 인도하는 큰 문이고 넓은 길이든, 상관이 없다.
노략질하는 이리든, 미혹하는 선지자이든, 상관이 없다.
서로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니 얼씨구나 좋다 지화자 좋다하고 모여서 잔치들을 벌린다.
예수님이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작고 길이 협착하여, 가는 자들이 적다고 하여도,
거짓 선지자들을 조심하라고, 그들은 열매를 보면 안다고 하여도, 상관이 없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창조되었다는 의식과 감격이 있어야 한다.
구원이 얼마나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것인지에 대한 배움과 감격이 있어야 한다.
흑암의 권세에서 아들의 나라로, 아담의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영역으로,
죄와 사망의 영역에서 의와 생명의 영역으로 영원히 옮겨졌다는 감격이 있어야 한다.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 우리가 받을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인지,
우리 안에서 역사하는 성령의 능력이 얼마나 큰지를 알고 감격하고 찬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에 따르는 성품과 삶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이런 사람들이 모인 곳이 진정한 교회이다.
우린 너무 수가 적어서 걱정이긴 하지만, 좋은 날이 반드시 오리라고 믿는다.
마침내 복을 받을 날이 오리라고 믿는다.
숫자로 인해서 기죽지 말고 진리의 말씀과 성령의 인도에 충실하자.
2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를 지나게 하셨다.
(의인들의 고난의 과정을 보라. 그들의 처절한 낮아짐과 비참을 보라)
의롭다 함을 받는 구원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인하여 은혜이고 선물이지만
이제 의인으로써 사는 훈련이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은 홍해의 기적으로 건넜지만
그들안에는 여전히 애굽이 있었다.
조그만 어려움이 닥치면 그들은 이 애굽을 그리워하고 돌아갈려고 하였다.
그래서 광야의 훈련과 연단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 속에 있는 세상과 우상들을 깨부시는 작업이 필요한 것이다.
기드온이 바알과 아세라의 상들을 깨부신 것처럼 우리 안의 것들을 깨부셔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셔서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를 지나게 하시는 것이다.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이다.
그 범위가 매우 넓고 오래고, 그 겪는 일들이 아주 위험한 일들이라는 것이다.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이다.
다윗은 이 광야의 기간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요셉에게는 17세에서부터 30세 총리가 되기까지 겪은 노예생활, 감옥생활이 그것이었다.
모세에게는 왕궁을 버리고 광야로 들어가 산 40년의 광야생활이 그것이었다.
아브라함도 75새에 부름받아 100세에 이삭을 얻기까지의 25년 세월이 그것이었다.
여러분, 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를 거치지 않고도
가나안에 이를 수 있다는 형통의 신학, 믿음의 신학, 신비주의 신학에 속지 말라.
그것은 사탄의 사탕발림이요 속임수요 마침내 멸망과 지옥으로 인도하는 당근들이다.
바울은 이 철학과 헛된 속임수에 사로 잡히지 말라고 한다.
요한은 미혹의 영에 속지 말라고 한다.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에서 만나는 불뱀과 전갈들과 물없는 간조한 땅이 무엇인가?
바로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인 것이다.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는 것이다.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고 답답한 일을 겪고, 핍박을 받고, 거꾸러뜨림을 당하는 것이다.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우는 것이다.
예수 죽인 것을 항상 짊어지는 것이다.
이런 모양으로 있을 때 사람들은 그들의 인생이 다 끝난 것처럼
이제 희망이 없는 것처럼 함부로들 말하고 낙심하게 한다.
뛰어난 은사자들마져 육신의 모양만을 보고 잘못 판단하기가 일수이다.
모든 비방과 수치와 능욕(남을 업신여겨 욕보임)을 견뎌내야 한다.
(시 69:19-36) 주께서 나의 비방과 수치와 능욕을 아시나이다
나의 대적자들이 다 주님 앞에 있나이다
비방이 나의 마음을 상하게 하여 근심이 충만하니 불쌍히 여길 자를 바라나 없고
긍휼히 여길 자를 바라나 찾지 못하였나이다
그들이 쓸개를 나의 음식물로 주며 목마를 때에는 초를 마시게 하였사오니
그들의 밥상이 올무가 되게 하시며 그들의 평안이 덫이 되게 하소서 --
그들의 거처가 황폐하게 하시며 그들의 장막에 사는 자가 없게 하소서
무릇 그들이 주께서 치신 자를 핍박하며 주께서 상하게 하신 자의 슬픔을 말하였사오니
그들의 죄악에 죄악을 더하사 주의 공의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소서
오직 나는 가난하고 슬프오니 하나님이여 주의 구원으로 나를 높이소서 --
여호와는 궁핍한 자의 소리를 들으시며
자기로 말미암아 갇힌 자를 멸시하지 아니하시나니
하나님이 시온을 구원하시고 유다 성읍들을 건설하시리니
무리가 거기에 살며 소유를 삼으리로다
다윗은 그러한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했다.
왜냐?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주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이 평생에 나를 따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바울은 그러한 것들이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다고 하였고,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길 수 있다고 하였다.
베드로는, 이 광야의 고난은, 우리를 부르셔서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은혜의 하나님이 잠깐 고난을 당하게 하신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 잠깐의 고난이 우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신다고 하였다. "권능이 세세무궁토록 그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하였다.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훈련은 우리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바꾸기 위한 것이다.
우리를 낮추기도 하시고, 주리게도 하시는 것은 우리의 세상적인 사고방식을
진리의 말씀의 사고방식, 하나님의 사고방식으로 바꾸기 위한 것이다.
고난을 많이 겪었는데도 예수 믿기 전이나 후나 별로 사고방식이 바뀌지 않았다면
헛고생을 많이 한 것이고 아직도 고난이 많이 남아 있는 것이다.
옛사람의 잔재들을 고난을 통해 다 청산하여야 한다.
날마다 죽으며, 나를 쳐서 복종시키며, 나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며,
항상 예수 죽인 것을 짊어지고 예수를 위하여 항상 죽음에 넘기워져야 한다.
높아진 이론과 모든 생각을 사로 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시켜야 한다.
기질로부터 나오는 것, 가정문화 조상의 문화로부터 형성된 것(‘조상이 물려준 헛된 행실’),
세속경험으로부터 형성된 것, 다 복종시켜야 한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광야생활에서 익혀야 한다.
그럴려면 어떠한 형편에도 자족할 수 있는 일체의 비결을 배워야 한다.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야 하고
배고픔과 배부름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터득해야 한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이 능력 주실 때 그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된다.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생활에서 우리가 또 배워야 할 것은
주머니에 돈이 없어도, 우리에 양이 없을지라도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는 것이다.
하박국의 노래는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를 통과하고서 부른 찬송일 것이다.
합 3:17-19)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돈과 소유와 명예와 권력이 나의 힘이 아니다.)
3 낮추시고 시험하여 마침내 복을 주신다. (의인들의 영광을 보라)
(계 7:9-17)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리니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시편 기자는 여호와의 성실함과 인자함이 그와 함께 하여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그의 뿔이 높아진다고 하였다.
(시 89:17) 주는 그들의 힘의 영광이심이라 우리의 뿔이 주의 은총으로 높아지오리니
지금 형통하는 악인들 때문에 마음 상할 것 없다.
(시 92:7-13) 악인들은 풀 같이 자라고 악을 행하는 자들은 다 흥왕할지라도 영원히 멸망하리이다 그러나 주께서 내 뿔을 들소의 뿔 같이 높이셨으며 내게 신선한 기름을 부으셨나이다 내 원수들이 보응 받는 것을 내 눈으로 보며 일어나 나를 치는 행악자들이 보응 받는 것을 내 귀로 들었도다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성장하리로다
그는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다고 했다.
이로써 여호와의 정직하심과 나의 바위 되심이 증거될 것이다.
하나님은 요셉을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를 통과한 후 에굽의 총리로 세우셨다.
하나님은 다윗을 그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한 후 이스라엘 최고의 왕으로 세우셨다.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명령에 순종한 후 영원한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
우리는 욥의 결말을 알고 있으며 갑절로 하나님은 축복하셨고 영광 가운데 세우셨다.
모세는 괴롭게 하신 날수대로, 화를 당한 연수대로 축복과 영광의 생애를 살았다.
그의 기도는 응답을 받았고 그대로 이루어졌다.
시 90:15-17 우리를 괴롭게 하신 날수대로와 우리가 화를 당한 연수대로 우리를 기쁘게
하소서 주께서 행하신 일을 주의 종들에게 나타내시며 주의 영광을 그들의 자손에게
나타내소서 주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내리게 하사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우리에게 견고하게 하소서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견고하게 하소서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생활을 하는 동안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믿음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떼지어 들어가 봐야 소용 없다. 떼지어 나왔지만 둘만 마침내 복을 받았다.)
광야생활 중에는 뭘 이루는 것보다는 인도함을 따라 작은 일에 충성하면서
애굽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고치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삶의 기준이 되고 원칙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스도를 닮고 더욱더 성화된 성품과 삶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어느정도 되었다면 가나안은 멀지 않은 것이다.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이지만
우리 하나님은 함께 하시면서 만나로 먹여주시고 반석에서 생수를 공급해주시고
발이 부릅트거나 옷이 헤지지 않게 하시고, 마침내 복을 받게 하신다.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면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마침내 복을 받아 가나안을 기업을 받을 것이다.
그 영광을 바라고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생활 중에도 즐거워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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