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고..."(삼상 12:23)
사무엘은 기도 쉬는 것을 여호와 앞에서 범하는 무서운 죄로 여겼다. 여기에서 ‘죄’는 히브리어로 ‘하타아’인데, 성경에서 죄에 대하여 가장 많이 사용되는 용어로서 ‘과녁을 벗어났다’는 의미이다. 이는 기도하지 않는 것이 가장 대표적이면서도 기본적인 죄가 된다는 점을 지적해준다. 곧 죄의 본질은 기도하지 않는 것에 있다는 것이다. 모든 문제의 원인은 하나님과의 교제가 깨어진 것에서 비롯되는데, 그것은 기도의 통로가 막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만큼 기도는 영적생활에서 필수적 요소이다. 그런 점에서 사무엘이 기도 쉬는 것을 여호와 앞에서 범하는 큰 죄로 여긴 것은 그만큼 그가 영적으로 준비된 인물이었음을 보여준다.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기본적 자질은 무엇보다도 기도의 능력이다. 사무엘은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이 가장 어려웠을 때에 하나님께서 지도자로 세운 인물이었다. 사무엘이 등장하여 활동하였던 당시의 상황은 여러 면에서 어려운 때였다.
영적 상황: 당시의 이스라엘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하게 보이지 않았다(삼상 3:1). 하나님의 선택받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없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신앙적으로 얼마나 하나님과 멀어졌는가를 보여준다. 당시 제사장이었던 엘리는 마땅히 갖추어야 할 영력을 상실한 지도자였다. 자녀를 낳지 못하여 괴로운 마음을 안고 여호와 앞에 나아와 간절히 기도하는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를 엘리 제사장은 술에 취한 여자라고 오해할 정도로 영적 분별력이 없었다. 그런 제사장 엘리 앞에서 자란 그의 자녀들은 바른 길을 걸어가는 정상적인 자녀들이 아니었다. 백성들이 제물을 제단에 불살라 드리기도 전에 먼저 그들은 날고기를 가져다가 요리해 먹어치우는 망라니 짓을 하였다. 그런가 하면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과 동침하는 패륜적인 성적 범죄까지 저질렀다. 그 정도로 엘리는 가정의 자녀들조차 통제하지 못하는 무능력한 인물이었다. 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들이었다.
정치적 상황: 당시의 이스라엘은 정치적으로 위기에 빠져 있었다. 팔레스타인 지역의 신흥 세력으로 등장한 블레셋은 철기문명의 막강한 무기를 앞세워 약체 이스라엘을 무차별적으로 침략하였다. 이스라엘은 에벤에셀 전투에서 무려 4000여명이 죽임을 당하는 참패를 겪었다. 위기에 몰린 이스라엘 장로들은 분위기를 반전시킬 목적으로 실로에 있던 언약궤를 전쟁터로 가져왔다. 그러나 이미 신앙적으로 타락한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주동이 되어 가져온 언약궤는 아무런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급기야는 블레셋에게 그 법궤를 빼앗겨버렸다. 엘리의 두 아들은 전쟁터에서 죽임을 당했고, 그 소식을 전해들은 제사장 엘리는 의자에서 넘어져 죽었으며, 엘리의 며느리인 비느하스의 아내도 아이를 낳는 중에 죽었다.
그런 위기 속에서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등장한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이 신앙적 회복임을 알았다. 그가 영적 회복을 위하여 도입한 방법은 기도하는 것이었다. 곧 그동안 그들이 잘못 섬겼던 모든 이방신들을 버리게 한 다음 미스바로 모이게 하여 금식기도를 선포하였다. 그런 기도를 통한 신앙회복의 결과는 에벤에셀에서 이스라엘이 블레셋과 싸워 얻은 대승이었다. 그날 이후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은 더 이상 이스라엘을 침범하지 못했다.
그렇게 시작한 사무엘의 이스라엘 통치가 어느새 새로운 인물인 사울에게 넘겨줄 때가 되었다. 오늘의 본문은 사무엘이 사울에게 모든 통치권을 물려주고 은퇴하는 자리에서 백성들에게 전한 퇴임연설의 한 부분이다. 사무엘이 마지막 퇴임사에서 강조한 것 역시 기도였다. 퇴임에 즈음하여 사무엘이 전한 기도에 대한 강조는 몇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다.
첫째는, 사무엘이 평생 동안 이스라엘을 통치하면서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여긴 것이 기도였음을 보여준다. 정치인으로서 전략이나 타협과 같은 인간적인 방법이 필요하기도 했겠지만, 그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와 기도하는 것을 우선하였다.
둘째는, 모든 공직을 내려놓겠지만 기도하는 것만큼은 은퇴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모든 통치권을 사울에게 넘겨주는 자리이지만, 기도하는 일만큼은 넘겨주지 않고 계속 자신이 해야할 책무로 삼겠다는 뜻이다. 기도는, 마치 생명의 유지를 위하여 호흡이 필요하듯이, 결코 중단할 수 없는 영적 호흡이다.
셋째로, 사무엘이 강조한 기도는 개인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한 중보기도이다. 그는 그동안은 통치자로서 백성들을 다스리기 위하여 늘 기도했다면, 이제 공직에서 은퇴하면서 보다 순수하게 뒤에 숨어서 보이지 않게 백성들을 위하여 기도하겠다는 것이다. 책임을 맡았을 때나 책임을 내려놓을 때나 한결같이 백성들을 위하여 기도로 중보하는 자가 사무엘이었다.
사무엘은 기도를 앞세운 큰 영적 지도자였다. 그는 어머니의 기도 응답으로 태어났고, 기도의 어머니 슬하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만큼 사무엘은 처음부터 기도의 분위기 속에서 태어나 성장한 인물이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등장하면서도 그는 기도를 앞세웠고 평생을 그런 자세로 지냈다. 마지막 은퇴하면서도 기도는 그가 놓칠 수 없는 기본이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원할하게 소통시켜주는 기도를 놓치면 모든 것을 놓치게 된다. 그래서 사무엘은 기도를 쉬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무서운 죄라고 고백하였다. 그에게 기도는 영적 생명을 유지하기 위하여 중단할 수 없는 호흡과도 같은 것이었다. <서울신대 권혁승 교수>
[출처] 기도 쉬는 것을 죄로 여긴 사무엘의 신앙적 자세|작성자 viva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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