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들 향하여 이를 갈거늘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행 7:54-60)
세 번째로 스데반이 남긴 것은 위대한 인물 사도 바울이다. 당시 종교재판의 처형방법은 피고인을 낭떠러지에서 밀쳐 떨어뜨리는 것이었다. 나사렛 사람들이 예수를 낭떠러지에 밀쳐 떨어뜨리려 했던 것도 같은 종교재판의 한 과정이었다(눅 4:29). 그렇게 해서 죽게 되면 처형과정이 끝나지만, 죽지 않을 경우 몇 사람을 선정하여 돌로 쳐 죽게 하였다. 이때 돌로 치는 자들은 자신들의 옷에 피를 묻히지 않으려고 옷을 벗어서 따로 보관하였다. 당시 옷은 비싸기도 했지만 피가 묻은 옷은 부정한 것이 되기 때문이었다. 돌로 치는 자들의 옷을 맡아본 사람이 바로 후에 바울로 개명한 사울이라는 청년이었다. 이것은 바울이 가까운 거리에서 스데반의 죽음을 직접 목격할 수 있었음을 의미한다.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성령으로 충만하여 천사의 얼굴처럼 빛났던 스데반의 거룩한 모습을 바울이 지켜볼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자신을 돌로 치는 자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는 기도도 직접 들을 수 있었다. 그런 스데반의 거룩한 죽음은 바울에게 커다란 충격을 안겨 주었다. 그 후 바울은, 마치 사냥꾼의 화살을 맞은 사슴처럼, 더욱 기세가 등등하여 예수를 믿는 신자들을 잡아들이는 극성스러움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스데반의 죽음을 통해 받은 충격은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그의 영혼을 사로잡고 있었다. 이러한 내적 갈등을 겪으면서 다메섹으로 가게 된 바울은 도중에 자신이 핍박하는 예수를 만나 극적인 회심을 경험하게 되었다(행 9:1-9). 그리고 그는 초대교회의 위대한 사도로 변화되었다.
성경은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바울의 회심은 거룩한 스데반의 죽음에서 비롯된 것이 분명하다. 25년이 지난 뒤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에게 증언할 기회가 주어졌을 때,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자신이 경험한 회심을 소개하였다. 그 가운데 스데반의 죽음이 언급되고 있다. 이는 바울의 회심과 스데반의 거룩한 죽음이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또 주의 증인 스데반이 피를 흘릴 때에 내가 곁에 서서 찬성하고 그 죽이는 사람들의 옷을 지킨 줄 그들도 아나이다”(행 22:20).
그렇다면 스데반은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이었던 바울을 뒤에 남긴 셈이다. 자신을 돌로 치는 자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는 스데반의 기도는 일차적으로 바울의 회심에서 응답된 것이다. 스데반의 거룩한 죽음과 용서의 기도는 가장 위대한 성경저자이며 선교사요 목회자였던 사도 바울을 회심시킨 것이다.
사람 키우는 일은 미래를 창조하는 위대한 사역이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우선적으로 관심을 집중시켜야 할 과제이다. 우리의 뒤에 미래를 책임질 인물을 남길 수 있다면, 그것보다 더 소중한 유산은 없을 것이다. 예수께서도 공생애의 대부분을 제자 양육에 집중하셨다. 그 결과 제자들을 통하여 복음이 온 세계로 전파될 수 있었다.
이 땅에서 얼마나 값진 삶을 살 것인가? 이 질문은 무엇을 남길 것인가로 귀결된다. 우리들이 머물렀던 자리는 향기롭고 아름다워야 한다.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향기이기 때문이다(고후 2:15). 마지막이 아름다우려면, 지금 우리의 모습이 아름다워야 한다. 우리의 마지막은 갑자기 생겨나는 우연이 아니고 평생 동안 살아온 삶의 연장이며 축적이기 때문이다. 무엇을 남길 것인가는 오늘 여기에서 우리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통해 대답할 수 있다. <서울신대 권혁승 교수>
[출처] 무엇을 남길 것인가(3)|작성자 viva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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