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권혁승교수

가난한 자에 대한 배려와 공동체성

새벽지기1 2017. 1. 1. 08:16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 (잠 19:17)  

 

가난의 문제는 어느 시대 어느 곳에나 존재하였던 사회적 과제이다. 그것은 성경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성경은 가난한 자는 물론 노예까지도 인정하고 있다. 그만큼 개인적인 차이를 인정하고 있다. 성경은 개인적인 차이를 무시하거나 지나친 경제적 균등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의 신앙 공동체가 개인적인 차이를 인정하면서 서로의 차이점을 상호 보완해주는 상생과 협력의 관계임을 보여준다. 그것이 '돕는 배필'로 이루어지는 공동체이며 하나님의 '샬롬'이 추구하는 방향이다.

 

성경은 가난한 자가 전혀 없는 유토피아적 이상향을 지향하지 않는다. 오히려 가난한 사람이라도 전혀 차별 받지 않고 함께 공존하는 협력의 공동체를 강조한다. 그런 공동체가 되려면, 사회적 약자인 가난한 자들에 대한 배려가 무엇보다도 우선시 되어야 한다. 오늘의 본문은 가난한 자들에 대한 배려를 강조하는 대표적인 성경 구절이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하나님께 꾸어드리는 것 곧 하나님으로 하여금 우리들에게 빚을 지게 만드는 것이다. 여기에서 ‘꾸어드리는 것’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말베’가 잠언 22:7에서도 사용되었는데, 거기에서는 ‘빚진 자’라고 번역되었다. 하나님으로 빚진 자를 만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가난한 자 편에 서시어 그들의 보증인이 되어 주신다는 뜻이다. 그것은 또한 하나님의 관심이 이스라엘 전체 공동체에 집중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가난한 자들이 제대로 된 돌봄을 받지 못하면, 그만큼 하나님의 공동체가 약화되고 허물어지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관심에 우리의 관심을 모으는 것, 그것이 곧 하나님 의를 행하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의 의는 공동체 지향적이고, 그 기본은 공동체의 약자인 가난한 자들을 돌보는 배려이다.

 

'가난한 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달'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자를 지칭한다. 특히 가진 것뿐만 아니라 기력마저 소진되어 어디에서도 도움을 기대할 수 없는 절망적 상황을 의미한다. ‘불쌍히 여기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난’은 ‘은혜를 베풀다’는 뜻인데, 마음의 자세와 함께 구체적인 행동이 포함된다. 이 동사에서 파생된 부사 ‘힌남’은 ‘대가 없이’ ‘공짜로’라는 뜻이다. 대가를 기대하지 않고 베푸는 순수한 동기의 배려요 사랑이다.

 

구약시대 이스라엘에서는 가난한 이웃에 해당되는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들을 돕는 구체적인 제도들 마련되어 있었다. 대표적인 것으로 다음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매 삼년마다 따로 모아 드리는 두 번째 십일조이다. “매 삼년 끝에 그해 소산의 십분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거류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로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신 14:28-19) 삼년마다 드리는 또 다른 십일조는 매년 드리는 정기 십일조와는 달리 가난한 이웃을 위한 구제 성격의 십일조이다. 정기 십일조가 하나님의 중앙 성소에 드려지는 정규 헌금이었다면, 구제 성격의 또 다른 십일조는 각 성읍에 저축해 두었다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적절하게 사용하였다.

 

또 다른 구제제도는 추수 때에 가난한 이웃을 위하여 얼마를 남겨 놓는 아량이었다. 그런 성격의 구제는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시행되었다.

 

   (1) 밭에서 곡식을 벨 때 곡식 묶음 하나를 잊고 왔으면, 다시 그것을 가지러가지 말고 가난한 이웃을 위하여 그대로 두 어야 했다(신 24:19).

    (2) 감람나무의 열매를 다 떨고 나서 남은 것이 있는지를 살피지도 말아야 했다(신 24:20).

    (3) 포도원의 포도를 딴 후에 남은 것이 있어도 그것을 다시 따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어야 했다(신 24:21).

    (4) 곡식을 거둘 때에 밭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아야 했다(레 19:9-10).

 

추수할 때는 아무리 어려워도 나름대로 여유가 있게 마련이다. 추수하는 주인에게 떨어진 이삭은 전체에 비하면 아주 작은 분량이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작은 것에 아량과 배려가 담기면, 큰 도움과 감동으로 전달되는 법이다. 그래서 ‘사랑의 원자탄’이라는 말이 생겼다. 배고픈 이웃을 향한 작은 배려의 오병이어가 예수의 손에 들려지면서 오 천 명이 먹고도 남는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다.

 

마음의 배려는 얼마를 갖고 있느냐와 상관이 없다. 마음만 있으면 얼마든지 큰 것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크게 칭찬하신 가난한 과부의 구제헌금도 그런 경우에 해당된다(막 12:41). 가난한 과부는 자신이 갖고 있던 두 렙돈을 연보함에 넣었다. 당시 성전 안에 마련된 연보함은 가난한 이웃을 위한 구제 헌금함이었다. 주인공인 과부는 구제할 위치가 아니라 오히려 구제 받을 우선순위 대상이었다. 신분이 과부인데다가 처지가 가난한 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갖고 있는 돈 전부를 연보함에 넣었다. 자신도 어려운 처지에 있었던 가난한 과부였지만, 자기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런 아름다운 마음의 배려가 예수에게서 극찬을 받게 하였다. <서울신대 권혁승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