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아뢰리이다.
거기서 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창 18:32)
성경에 나오는 대표적인 중보기도 인물은 아브라함이다. 특히 멸망당할 소돔과 고모라를 위한 중보기도는 잘 알려져 있다. 그 내용을 기록하고 있는 창세기 18장을 자세히 살펴보면 중보기도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세 천사를 나그네의 모습으로 아브라함에게 보내셨다. 아브라함의 극진한 대접을 받은 그들은 아브라함에게 성격이 다른 두 종류의 소식을 전해주었다. 하나는 아브라함이 자녀를 낳게 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 받게 된다는 것이다. 전자가 자신을 향한 축복의 좋은 소식이라면, 후자는 이웃을 향한 나쁜 소식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계획을 전해들은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막아보려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중보기도를 드렸다. 비록 오랫동안 기다렸던 자녀 출생의 기쁜 소식을 전달받았지만 아브라함은 자신의 복에 머물지 않고 어려움에 처한 이웃의 문제에 관심을 집중시킨 것이다. 자신이 받은 복을 주변의 이웃들과 나누는 것, 그것이 중보기도의 본질이다. 중보기도는 자신을 뛰어 넘어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집중시킨다는 점에서 본인의 신앙과 인격이 그만큼 성숙했음을 드러내 준다.
창세기 18:1-8은 아브라함이 나그네의 모습으로 자신을 방문한 천사들을 얼마나 극진히 대접하는가를 보여준다. 아브라함은 이들이 하나님의 천사인줄을 모른 채 다만 지나가는 손님으로 대접하였다.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히 13:2). 아브라함의 대접은 배려나 친절이라는 차원을 넘어서 종이 주인을 섬기듯이 최선을 다하는 봉사였다. 발 씻김, 고운 가루 세 스아(약 22 리터)의 밀가루로 떡을 만듬,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로 음식을 장만함, 식사하는 동안 서서 시중듬 등이 그런 자세를 보여준다.
아브라함이 지나가는 나그네들을 극진히 대접한 것은 또 다른 형태의 중보기도이다. 당시 나그네는 고아와 과부와 함께 보살핌을 받아야할 사회적 약자들이다. 이들에 대한 아브라함의 대접은 자신이 받은 복을 사회적 약자들과 나누었다는 점에서 삶으로 보여준 중보기도이다. 섬김의 중보기도 결과로 아브라함은 일 년 뒤 아들을 낳게 된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러면서 뒤이어 소돔과 고모라가 곧 멸망 받게 될 것이라는 소식을 함께 전달받고 곧장 이 두 도시를 위한 중보기도 자리로 나아갔다. 자신이 받은 복을 나그네와 나누는 섬김의 수평적 중보기도가 소돔과 고모라를 위한 수직적 중보기도로 이어진 것이다.
중보기도는 남을 위한 배려이며 자신의 복을 다른 이들과 나누는 것이라는 점에서 아브라함이 나그네를 극진히 대접한 것이나 멸망당할 소돔과 고모라를 위하여 기도한 것은 모두가 중보기도이다. 다만 형태적인 면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전자가 사람의 필요를 공급해주는 수평적 형태라면, 후자는 이웃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아뢰는 수직적 형태이다. 그런 점에서 중보기도는 또 다른 형태의 이웃사랑이며 대접이다.
소돔과 고모라를 위한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는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과 깉은 관련이 있다. 물론 아브라함에게는 그곳에 살고 있었던 조카 롯을 구해 보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개인적인 문제보다 더 중요했던 것은 멸망당할 소돔과 고모라가 약속받은 가나안땅에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아브라함에게 알려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를 밝힌 것에서 알 수 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창 18:17-18).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를 이룰 것이고 천하 만민이 그로 말미암아 복을 얻게 될 것인데, 그 약속 안에 소돔과 고모라가 포함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는 단순히 소돔과 고모라의 구원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명을 위한 기도라고 볼 수 있다.
아브라함의 소돔과 고모라를 위한 중보기도는 하나님으로부터 즉각적인 응답을 받았다. 아브라함이 무려 다섯 번이나 번복하며 다른 조건을 제시했지만(의인 50명에서 45명->40명->30명->20명->10명), 하나님은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모두 들어 주셨다. 기도의 원리는 하나님 뜻대로 구하면 응답받는 것이다. 개인적인 욕심이 아닌 전체 공동체를 위한 기도,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위한 기도, 더구나 자신에게 주어진 복을 함께 나누려는 자세로 이웃을 위해 기도할 때, 응답은 보장될 수 밖에 없다. 바른 자세로 기도하면 그런 응답은 누구에게나 보장되어 있다.
[출처] 아브라함이 보여준 두 종류의 중보기도|작성자 viva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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