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강대식목사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 (마 23:23-28)

새벽지기1 2016. 12. 16. 06:58

 

마 23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2-5)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니

 

서기관들은 성경 선생들이었고, 성경과 랍비의 가르침에 대한 전문적인 해석자 계급이었다.

바리새인들은 ‘분리된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대부분의 서기관들이 소속된 종교 정당이었다.

이 서기관들의 가르침을 철저하게 지킬려고 헌신한 열심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철저한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 수많은 법과 규정들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하다보니까, 내면적인 태도와 동기와 하나님의 뜻보다는

자기들이 만들어낸 법체계를 고수하는 것을 우선으로 하게 되고 말았다.

 

법은 있어야 하지만 사람이 법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다.

법은 사람의 유익과 행복을 위해 있는 것이지, 법 그 자체를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하셨고, 안식일의 주인은 주님이라고 하셨다.

‘모세의 자리에 앉았다’는 것은, 모세의 율법을 해석하고 가르치는 권위를 가졌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 자리에 앉아 심판자 혹은 재판관 노릇을 하였다.

그들의 잘못된 가르침마져 다 지켜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율법의 원래 취지와 하나님의 뜻에 맞게 가르치는 것은 다 지켜 행하라는 것이다.

 

우리도 아차 하면 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자리에 앉기가 쉽다.

남이 하면 불법이고 자기가 하면 로맨스로 여기는 사람들,

남의 잘못은 잘 보면서도 자기의 검은 속은 보지 못하는 사람들,

법 법 하면서 과중한 짐을 사람들에게 부여하는 것을 쉽게 여기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항상 서기관들과 바리새인의 자리에 앉기가 쉽다.

 

모세의 자리에 앉기 좋아하는 사람들과 예수님의 제자들은 다르다고 하셨다.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가 와서 주의 나라에서 주님 좌우에 앉게 해달라고 했을 때,

그리고 다른 제자들이 이를 분히 여길 때, 하신 말씀이다.

 

(마 20:25-28)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제자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은 서기관 바리새인들과 이렇게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이방인의 집권자들은 그 자리에 앉아 사람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권세를 부리지만

주님의 제자들은 오히려 섬기고, 우리를 위해 죽으신 주님을 본받아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주님은 오늘 본문에서 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본색을 드러내심으로써

대단한 명성과 허울 좋은 권세에 속지 않도록 그들의 특성을 가르쳐주고 계신다.

이들은 백성들의 존경과 사랑의 대상이자 우상으로서 군림하고 있었다.

백성들은 만일 두 사람이 천국에 갈 경우 그 중 한 사람은 바리새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인류의 역사는 대부분의 선한 자리와 직책들이 악인들로 채워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선하고 유익한 직책과 권세가 너무 자주 악용되고 악인의 수중에 들어갔다.

 

선한 법과 진리가 악한 관원들에 의해 시행된다고 그 법과 진리가 잘못되는 것은 아니다.

천사들을 통해 우리가 양식을 얻는 것이 가장 바람직스러운 일이긴 하지만

하나님께서 까마귀들을 통해 우리에게 양식을 주신다면

우리는 그 양식을 받고 하나님께 감사해야만 한다.

 

우리 주님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바른 가르침은 행하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고 하신다.

그들의 말과 행동은 서로 달랐다.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였다.

 

그들은 율법은 잘 가르치면서도 그들은 그 율법대로 살지 않았다.

그들은 그 율법으로 다른 사람들의 죄는 잘 정죄하면서도

그들 자신은 같은 죄나 그보다 더 심한 죄를 짓고서도 회개할 줄을 몰랐다.

 

다른 사람들을 교회로 불러들이면서도 그 자신은 교회 밖에 매달려 있는 종과 같았다.

훌륭한 신앙 고백을 하면서도 그 신앙 고백에 따라 생활하지 않는 사람들과 같다.

말이 많은 사람일수록 행동은 적게 하는 법이다.

 

그들은 자기들 스스로는 지기 싫어하는 것들을 다른 사람들에게는 가혹할 정도로 강요했다.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웠다.

그러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였다.

 

그들은 뒷구멍으로 자기들의 안일과 탐욕만을 추구하였고 세력을 형성하여 지배하였다.

그들은 이런 일이 백성들을 괴롭히고 있는 줄 알면서도

백성들을 이런 일에서 완화시켜 주기 위하여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교회는 이러해야 한다. 저러해야 한다. 조직은 이러해야 한다 저러해야 한다는

‘해야 한다’는 귀신들의 속삭임에 넘어가지 마시기 바란다.

카톨릭의 많은 조직과 전통들과 의식들이 그렇게 해서 만들어져서 사람들을 옭아맸다.

종교개혁은 말씀에 구체적으로 없는 것들은 규정으로 정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교회들이 커지고 타락하면서 또다시 많은 규정과 짐들을 만들어 어깨에 지워주고 있다.

예수님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무거운 규정과 짐들을 덜어주기 위해서 오셨다.

 

(마 11:28-30)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중요한 것은 교회의 본질이지, 겉치레와 형식이 아니다.

그들은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였다. 자기들이 외식을 통해 영광을 취하였다.

우리 주님은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셨다.

 

사람에게 칭찬을 받으면 그것은 이미 상을 받았다고 하셨다.

무슨 일이든지 보이기 위해서만 일을 하는 사람은

정작 그 일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다.

 

예수님은 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한 마디로 ‘외식하는 자’이라고 하신다.

외식하는 자는 종교적인 연극 배우(본래의 의미)와 같은 자다.

그는 그 자신이 될 수도 없고, 되기를 원치도 않는 사람의 역할을 맡아

연기하거나 대행하는 것이다.

 

그들은 사소한 의무는 지켰으나 보다 큰 의무는 지키지 않았다.

그들은 '박하와 회향과 근채' 의 십일조를 내는 것에는 매우 정확했다.

값싼 부담은 해서, 십일조를 낸다는 큰 평판을 얻어낼 수 있었다.

 

바리새인들은 십일조를 낼 때 다음과 같이 자랑했다.

'나는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눅 18:12).

십일조는 ‘하나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여’ 교회를 지원하고 유지하게 하는 것이다.

 

그들이 책망을 받는 것은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다‘는 것이다.

인간에 대한 정의와 긍휼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모두 율법의 근본적이고도

중요한 내용들이다.

 

(미 6: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주님의 말씀은

“이것(십일조)도 행하고 저것(정의와 긍휼과 믿음)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이다.

 

작은 것에 대해서는 말이 많으면서도,

정의를 행하고, 긍휼히 여기며, 믿음으로 사는 일에 대하여는 소홀히 하기가 쉽다.

남을 비판하기에 앞서 우리가 참으로 겸손해야 할 일이다.

 

바울 사도는 말씀한다. ‘선 줄로 아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했다.

‘나는 날마다 나를 쳐서 복종시킨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했다.

 

그들은 사소한 죄들은 피하면서 그보다 더 큰 죄를 범했다.

소경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약대는 삼키는도다.

 

그들은 백성들이 장로들의 유전 가운데서 하루살이를 범하지 않도록 경고를 했다.

그들은 사소한 죄를 범하는 것도 두려워하는 것처럼 사소한 죄에 대해 신음 소리를 냈다.

그러나 그들은 하루살이에 비하여 낙타와 같은 죄들은 서슴치 않고 자행했던 것이다.

주님이 책망하는 것은 그 작은 죄는 걸러냈으나 낙타는 삼켜 버린 것 때문이다.

 

그들은 또한 외적인 면에만 주의를 기울이고, 내적인 면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욖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사람이 겉에서 보이는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면서도,

실제로 사용되는 내부를 더러운 상태로 내버려 둔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들은 자기들의 평판에 손상이 되는 수치스러운 죄만은 피하면서도

마음에 자리하고 있는 그 사악한 탐욕과 방탕에는 눈을 감았다.

 

겉이 깨끗하니까 속도 깨끗한 줄 알고 함부로 자기 의의 잣대를 휘둘렀다.

그들이 열심은 있었으나 참된 지식을 좇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자기 의를 세울려고 하나님의 의에는 복종하지 않는 결과를 가져왔다.

 

자기 의로 위장한 그 탐욕은 반드시 방탕을 가져온다. 탐욕과 방탕은 한 쌍이다.

하나님의 의가 아닌 것은 먼저 자기 자신을 파괴한다.

그 다음에는 가까운 사람들과의 인간관계를 파탄내고, 방탕으로 흘러간다.

 

그들은 경건한 것처럼 보이기 원하면서도 실제로는 온전하거나 의로운 행동을 하지 않았다.

주님의 설명에 의하면 그들은 자기들 마음의 사악함은 잘 보지 못하는 소경들이었다.

자기에 대한 무지가, 가장 부끄럽고 해로운 무지다.

주님의 권고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주요 임무는 미음 속에 있는 '영의 더러운 것'을 씻는 일이다.

안쪽을 먼저 깨끗이 하면, 바깥쪽도 깨끗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새롭게 하고 정결케 하는 은혜가, 사람의 마음을 깨끗게 한다면,

그것은 외적인 행동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마음을 잘 지키면 모든 일이 좋아질 것이다.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

 

그들은 회칠한 무덤과 같다고 주님은 책망하신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의는 겉치레만을 위해서 꾸며 놓은 무덤의 장식과 같은 것이었다.

그들의 궁극적인 야망은 '사람에게 옳게 보여' 그들의 칭찬과 칭송을 받는 것에 있었다.

그들은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한' 무덤처럼 속이 더러웠다.

 

이와 같이 그들은 위선과 불법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 마음이 죄로 가득찬 사람들도 겉으로는 매우 선한 것처럼 행세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중심을 보시고 행한 대로 갚아 주신다.

 

손을 씻는 것보다 마음을 씻어야 깨끗해진다고 주님은 말씀하셨다.

외적인 씻음보다 내적인 마음의 순결이 우선이다.

 

(마 15:11, 17-20)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내버려지는 줄

알지 못하느냐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

 

이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다.

33절에서 예수님은 그들을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라고 하신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예수님과 그의 복음에 대해 악의를 품고 분노하며 경멸했던 대적들의 새끼였다.

 

그들에 대한 주님의 선고는,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였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않는 것은 심판의 날까지이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외식은 지옥의 판결을 가져오고 만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사는 길은 그들의 죄를 회개하고 주님께 굴복하는 것이다.

그래서 바른 진리를 따라 자기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는 것이다.

세례 요한이 바리새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마 3:7-10)

 

오늘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통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특징을 알았으니

주님의 피로 사신 주님의 교회에 그런 무리들이 자리를 못잡게 하고

주님의 말씀대로 그들의 누룩이 퍼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주님의 교회는 주님이 항상 그 머리가 되시고 우리는 한 지체들로서

마디와 힘줄로 서로 연합하고 은혜와 진리로 아름답게 세워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