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강대식목사

구원 받을 이름 (행 4:5-12)

새벽지기1 2016. 12. 6. 07:22


오늘 본문을 통해서 보면 세상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예수 이름으로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사람들과 달리 구원받을 수 있다는 사람들이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반박하고 저항한다.

부처도 있고 마호메트도 있고 공자도 소크라테스도, 그 외 다른 신들도 있는데,

왜 꼭 예수 이름으로만, 예수를 믿어야만 구원을 받느냐?고 한다.


저도 신학대학에 들어가 3년간 예수를 믿은 것 말고는,

나이 48세까지 왜 꼭 예수냐고 항의하면서 살았다.

그러다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성령으로 경험하고 다시 믿음 생활을 한지 19년이 되었다.

 

그래서 왜 예수만이냐고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안다면 꽤 안다고 할 수 있다.

지난 주에 연세대학교 루스 체플관 한 홀에서 40년만의 모임을 가졌다.

제가 1970년에 연세대학교 철학과 시절, 인간걱정회라는 독서클럽을 동기생 3명과 함께

만들어서 처음 회장을 하며 활동한 적이 있다. 반기독교적이면서도 친불교적이었다.

다양한 분야의 좋은 책들을 읽어감으로써 우리의 사람됨을 성숙하게 만들고

선한 영향력을 사회에 끼치자는 취지였다. 졸업반이 되면서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나서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오랜 세월 잊고 지냈다. 功成而不居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얼마 전에 연세대 전자공학과의 박민용교수라는 분에게서 연락이 왔다.

걱정회 후배라고 선배님들과 모임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해서 처음에는 사양을 했다.

왜냐하면 그때 말하던 진리들을 지금은 다 버리고, 나는 신앙의 길을 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랬더니 그 박교수가 자기도 그리스도인이고 자기 아내도 목회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같은 멤버였던 정종훈 연세대 교목 겸 교수와 함께 이 모임을 주선하고 있다고 했다.

저와 같은 창설 멤버였고 연세대 교목을 하다가 은퇴한 김원쟁목사도

제주도에서 부인과 함께 온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 이상 사양을 못하고 참석을 했다.

참석자 중에는 연세대 철학과 교수도 있었고, 서울시립대학 정경대학장도 있었다.

저와 같은 창립 멤버였고 뒤늦게 목사가 된 전희삼님도 부인과 함께 참석했다.

사업가도 있었고 주부도 여러분 있었다.

그런데 창립 멤버 4 사람 중 한 사람은 이미 고인이 되었고,

저를 포함한 나머지 세 사람은 목사가 되어 있었다.

예수 밖에서 구원을 추구하던 사람들이 세월이 지나면서

예수 이름으로만 구원을 받는 기독교의 목사가 되어 있었다.

먼저 고인이 된 정강영님도 임종직전 삼성병원에서 우릴 만나 예수 믿고 천국에 갔다.

간암으로 가죽만 남은 앙상한 몸으로 통증에 시달리면서도, 천국의 기쁨을 말하며,

“형 설교하는 것을 한 번 듣고 싶어” 하던 그 얼굴을 잊을 수 없다.


전 특히 기독교로부터 인간을 구원한다는 사명을 갖고 철학과에 갔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저 때문에 어떤 분은 목회의 길이 3년 늦어지기도 했고,

목사님 딸인 한 사람은 가정대학3년을 자퇴하고 정신분석학 공부한다고 의대를 가기도 했다.

반기독교적인 성향이 강한 독서클럽이었는데, 그 속에서 독실한 그리스도인들이 나오고

교수들과 목사들이 나왔는지 참으로 의아할 일이지요.

예수 이름으로만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싫어하여 공격하고 조롱하던 사람들이

싫어하던 그 예수를 받아들이고 그 예수를 위해 전생애를 바치고 있는 것이다.

 

오늘 본문 말씀의 무대는 예루살렘 산헤드린 공회당이다.

여기서도 두 부류의 사람들이 서로 대립하고 있다.

예수 이름으로만 구원을 받는다는 힘없는 사람들과, 그들을 핍박하고 조롱하는 힘센 사람들이다.

관리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재판석에 앉고 사도들은 원형회당 한 가운데 세워졌다.

그들을 가두고 재판하는 이유는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고 전함을 싫어하여”서 이었다.

그리고 나면서부터 40여세가 되도록 앉은뱅이로 산 사람을 예수

이름으로 명하여 걷게 함으로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된 것이 싫어서 이었다.


관리들과 장로들은 권세와 종교권력을 쥔 사람들이고 서기관들은 학식이 많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사도들에게 묻는다,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사도들의 대표 베드로가 성령, 하나님의 영이 충만하여 대답한다.

(예수 믿으면 성령 충만함을 경험하게 된다.)

 

우리가 병든 자를 치료한 것은 착한 일이다.

이 사람은 치료만 받은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것이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서 있다.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너희들은 백성의 통치자이며 장로들이며 마땅히 교회의 건축자가 되어야 할 자들이다.

이 예수는 너희에게 교회의 머릿돌이 주어졌는데 너희들이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려 교회의 머릿돌이 되게 하셨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사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

다른 이름으로 병든 육체를 치료할 수 없는 것처럼,

다른 이름으로는 죄 많은 영혼을 구원할 수 없다.


자기 주먹을 믿으라는 사람도 있고, 구원을 자기 손아귀에 쥐고 있다는 사람도 있다.

구원은 우리의 영 혼 육 전인격을 온전히 회복하고 새롭게 세우는 것이다.

우리는 쉽게 큰 소리를 치지만, 위험한 병이나 사고나 위기가 닥쳐오면

아이쿠 큰일 났네 하고 낙심하기 쉬운 존재이다.

저도 큰 수술을 네 번이나 하면서 느낀 것은 정말 나라는 존재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이란 것이, 얼마나 위기에, 불행과 비극에 절망하고 연약한지, 겪어본 사람은 안다.


우리는 큰 소리 치지만 지나온 인생을 돌아보면 자신을 구원하기는 커녕

자신을 파괴하고 가정을 파괴하고 소중한 인간관계를 파괴할 뿐이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한 것들도 보면 결국 자기사랑에 지나지 않고

진정으로 가까운 사람들을 그들의 입장에서 사랑한 것도 아니다.


사람들은 자기와 가정을 위해서 돈을 벌고 일생을 수고와 땀을 흘리며 보내지만

가장 가깝다는 부부간의 관계에서도 자녀와의 관계에서도 대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 생애를 마치고 죽음을 맞이하면서 제일 미안해 하는 것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돈을 못번 것도, 업적을 못이룬 것도 아니고 가까운 이들을 사랑해주지 못한 거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람 사랑보다는 돈과 일이 항상 우선이다.



결국은 가장 소중한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잘못하는 이유는 하나다.

내가 변화되지 못해서 성숙하지 못해서 이다. 내가 구원받지 못해서 이다.

내가 나를 고집하는 한 우리는 이웃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


사람은 자기를 비우고 그 빈자리에 나보다 큰 하나님을 모시지 않고는

자기 외의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가 없다.

심리학적인 방법으로 여러 가지 시도를 하지만 그것들을 결국 자기를 강화할 뿐이다.

 

사람을 처음 만들 때부터 하나님은 흙으로 사람을 빚으시고 거기에 하나님의 영을 불어넣으셨다.

그 영을 모시고 살아야 사람은 행복하고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데

사람들은 그 하나님의 영을 내던져 버리고 다른 것으로 채워 자기를 살려고 한다.


제가 25년을 하나님 없이 열심히 나 자신을 위해 살아보았는데

남는 것은 어두움과 무질서와 공허감 뿐이었다.

(창 1:2-3)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다.

하나님을 떠나 살아온 내 인생의 땅은 흑암과 혼돈과 공허 위에 있었다.

거기에 25년 만에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영이 운행하셨다.


하나님의 영이 오셔서 내 마음을 여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빛으로 영접하게 하셨다.

빛이 있으라! 그 빛이 들어오더니 내 인생의 땅위에 있던 흑암과 혼돈과 공허는 물러가고

내 인생은 밝아지고 삶에 질서가 세워지고 평안과 안식이 자리하게 되었다.

 

왜 예수 이름으로만 구원을 받는가?

그 이유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통로가 하나 뿐이기 때문이다.

부처도 마호메트도 공자도 소크라테스도 하나님과의 막힌 담을 허는 통로가 될 수 없다.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셨지만 우리가 죄를 지음으로 하나님과 통로가 막히고 말았다.


그러면 죄가 무엇이냐?

죄는 하나님을 마음을 다해 믿지 않는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과 법도대로 살지 않는 것, 자기 감정과 자기 주관대로 사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면서 공의로우시기 때문에 죄를 처리하지 않고서는 뵈올 수가 없다.

인간의 욕심이 죄를 잉태하고 죄가 장성하여 사망을 낳는다.

인류의 모든 비극과 불행은 이 죄로 인하여 오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 원인을 모르고 비극과 불행을 극복해볼려고 하지만 되지를 않지요.

암의 원인과 경로를 모르고 치료만을 할려고 하니까 현대의학이 속수무책인 것과 같다.

죄는 하나님의 공의상 형벌과 진노를 불러올 수 밖에 없다. 본질상 진노의 대상.


그런데 인간은 죄를 처리하거나 죄를 극복할 능력이 없다.

죄의 유혹이 오면 쉽게 넘어가서 저지르고 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성경은 죄가 인격이고 그것은 내 마음보다 내 능력보다 더 커서 이길 수 없다고 말씀한다.

 

그러면 인간의 모든 불행과 비극의 원인인 죄를 어떻게 처리하느냐?

인간이 제 힘으로 할 수 없으니까 하나님이 그 길을 마련하셨다.

그것은 죄없는 아들 하나님을 인간의 몸을 입혀 보내서,

우리 죄의 형벌과 진노를 대신 받게 하는 것이다.

 

예수란 이름은 저희 백성을 죄에서 구원한다는 뜻이다.

(마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하나님의 죄에 대한 공의를 만족시키시고 우리를 사랑으로 구원하시기 위한 것이었다.

십자가 죽음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의 모습을 보게 된다.

 

이 십자가를 통해서만, 하나님과 화해할 수 있고,

그분을 통해서만,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래서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다.

(요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왜 사람들이 예수 말고 다른 이름을 찾는가?

그것은 그들이 빛을 싫어하고 죄와 어둠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요 1:9-13)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예수를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그런데 그 영접하고 믿는 것은 사람의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낳아야 한다고 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셔야 우리는 그분을 영접하고 믿을 수 있다.

(고전 2:12)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왜 사람들이 예수 이름 말고 다른 이름을 찾는가?

성령이 없고 육에만 속애 있기 때문이다.

(고전 2: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요즘 교회들에서 하는 것처럼 영접기도를 따라서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교회에 나오시는 것부터 성령의 역사와 인도함이 없이는 못나오는 것이다.

사모하는 가운데 성령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여시고 들어와 좌정하게 되신다.

 

그러면 그렇게 안믿어지던 예수가 믿어지고, 그분이 십자가에서 하신 일이 믿어지고

내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인 것을 알고, 죄들을 눈물 흘리며 회개하고

그분을 나의 주님으로 영접하고 섬기게 된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길이고, 죄로부터 형벌로부터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는 길이다.

이것이 살아서 거룩하고 복된 삶을 살고

죽어서 영원한 천국에서 행복하고 즐거운 영생을 사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