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주어진 현실에 갇혀 살다보니까 하늘을 보지 않게 되고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크신 뜻을 망각하기가 쉽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신 처음부터 각 사람에게 크신 뜻을 가지신 것을 알 수 있다.
그 뜻이 바로 나를 향한 뜻인 것을 아는 것이 믿음이다.
모든 생물을 만드는 것과 달리,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셨다.
크신 뜻이 없다면 흙으로 만들고 말았을 것이다.
사람은 분명히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셨다.
그것도 “우리의” 형상이다.
삼위 하나님의 형상이요 이 창조 작업을 위해서 세 위격이 의논하시고 결정하셨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왕권(통치권)을 행사하게 하신 것이다.
“우리의 형상대로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나님의 모든 면에서 하나님을 가장 닮은 존재가 사람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 모든 만물을 하나님을 대신해서 다스리게 하신 것이다.
(창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이 복이 오늘 그리스도 안에서 나의 복이다.
아담이 범죄함으로 이 형상과 통치권을 잃어버렸지만
이 복을 회복시켜 주고 온전케 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것이다.
예수님도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은 같은 내용이다.
“성령이 임하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인 것을 알고 또 우리에게 주신 복을 알아야 한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고 모든 생물을 다스리는 복을 주셨다.
이 형상과 통치권(왕권)을 우리 그리스도인 각 사람에게 회복시켜 주신 것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볼 때 제일 먼저, 하나님의 형상과 통치권을 보아야 한다.
초라한 내 자신과, 변할 것 같지 않은 내 환경을 보아서는, 별 소망이 없다.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보아야 비로소 소망이 생기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 소망을 비전으로 붙들기를 원하신다.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고 정복하고 다스리는” 소망이다.
“땅끝까지 이르러” “모든 민족을” 의 복이다.
신약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은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고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제자훈련 3년 반만에 졸업식 즈음에 베드로의 고백이 그것이다.
(마 16:15-16)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사도 바울이 성령충만하여 처음 고백하고 선포한 것도 같은 내용이다.
(행 9:20-22)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하니라
사도 요한이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도 마찬가지이다.
(요 20: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사도들과 제자들과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님께 대한 이 신앙고백을 지키기 위해
카타콤에서 살고, 순교와 온갖 고난을 감수했다.
신약성경 처음 책 마태복음은 첫 절을 어떻게 시작하는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것은
우리에게 아브라함의 복과 다윗의 왕권의 복을 회복시키기 위함이다.
아브라함은 형상을 대표하고, 다윗은 통치권(왕권)을 대표한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라는 신앙고백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의 아들은 형상을 의미하고, 그리스도는 만왕의 왕으로써 통치권을 의미한다.
처음 아담에게 주신 형상과 통치권의 복을 우리에게 회복시켜 주시기 위해서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로, 그리스도로 오신 것이다.
처음 아담에게 주신 형상과 통치권의 복을 우리에게 회복시켜 주시기 위해서
그분이 아브라함의 아들로,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것이다.
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는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된 존재이다.
그 분은 포도나무요 나는 가지라고 주님은 말씀하셨다.
그 관계는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관계라고 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존재인 것이다.
옛 것은 지나갔다.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살아 그리스도와 함께 보좌 우편에 앉아있는 존재이다.
(엡 2:6-7)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그리스도와 연합은 하나님의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에서 온 것이다.
주님 다시 오시는 날까지 오는 여러 세대에 걸쳐 계속해서 이 일은 일어날 것이다.
제 말은 믿지 않더라도 하나님께서 성령의 감동으로 쓰신 성경 말씀은 믿으시기 바란다.
(고전 1:30-31)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다.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분의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으로, 형상으로, 사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지혜와 의와 거룩함으로 사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이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으로, 곧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통치권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
새해가 되어서 우리가 다시 한번 우리의 복과 특권을 소망으로 붙들 수 있기를 바란다.
저는 비록 이 멱우리 골에서 10년 세월을 보내고 있지만
이 특권과 소망을 보며 위로받고 격려받고 소망으로 꿈을 꾼다.
새해 첫 주에 그 많은 말씀 중에 창세기 1장의 본문을 주신 것 너무 감사하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되었음을 항상 의식하고
그분이 회복해주신 형상, 곧 그분의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으로
왕권을 행사하며 살아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운명이고 특권이다.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노릇하리로다 (롬 5:17)
그 형상과 왕권이 어떻게 행사될 것인지는 소망하며 인내하며 믿음으로 기다려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시기 위해 허락하신 환경에서 작은 일에 충실하고 순종하면서도
우리의 마음과 시선은 하늘로, 왕권으로, 향해야 한다.
‘모든 민족’,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로’ 향해야 한다.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고 모든 것을 다스리는 복을 꿈꾸어야 한다.
우리는 점령군 행세하며 탐욕과 죄악과 이기심으로 정복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형상으로 왕의 법도로 다스리는 것이다.
그런 아담의 행태는 벗어던져 버리고 회개해야
하나님의 왕국, 천국을 다스리고 살 수 있다.
이 왕의 법도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정복하고 다스리는 왕권을 살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광야의 훈련을 하시고 우리를 만들어가시는 것이다.
그 영광을 그리스도와 함께 누리게 하기 위해서 함께 고난의 훈련을 받게 하는 것이다.
(롬 8:17-18)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그리스도인은 이 소망을 바라고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도 즐거워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붙들 것은 우리 자신도 아니요 가진 것도 아니요 내 야망도 아니다.
우리가 붙들 것은 하나님께서 성령의 감동으로 주시는 말씀이다.
(롬 5:1-4)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이 말씀을 소망으로 붙들고 사는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님은 결코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만 시켜 놓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복을 회복만 시켜 놓고 내 몰라라 하는 분이 결코 아니시다.
목적과 뜻이 있기에 우리를 오늘까지 인도하셨고 앞으로도 인도해 가실 것이다.
우리가 할 일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은, 그것이 좋은 것이든 안좋은 것이든,
하나님 안에서 일어난 일인 것을 알고, 회개할 것은 회개하고, 인내할 것은 인내하며
믿음을 잃지 않고 소망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이다.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자신을 깨끗케 한다고 하셨다.
(요일 3:3)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마 7:5)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속에서 티를 빼리라
되는 일이 없어도, 눈에 보이는 일이 없어도, 그것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 뿐이고,
만유 위에 만유 안에 계신 하나님께서는 보이는 게 있고 이루어가는 것이 있는 것이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대표적으로 쓰신 사람들을 보면 알 수 있다.
모세가 40년 동안 광야에 엎드려 있으면서 되는 것이 없는 것 같았지만
하나님은 계획 가운데 계속 일하시고 때가 되니까 모세를 부르셔서
출애굽의 위대한 역사를 이루게 하셨다.
요셉도 하루 아침에 이국 땅에 노예로 팔려가고 억울하게 감옥살이까지 하였지만
때가 되니까 하나님은 그를 하루 아침에 죄수의 신분에서 대애굽제국의 총리로 세우셨다.
이 일을 다 겪고 나서야 요셉은 그 일들이 다 자기를 하나님이 보내신 방법이었다고
자기를 만드시 방법이었다고 고백했다.
욥은 10남매가 하루 아침에 죽고, 모든 재산이 없어지고 건강마져 잃고 겨우 연명하며,
그 억울한 일들을 겪으면서도 입술로 범죄치 않고 인내하다 갑절의 축복을 받았다.
그 외, 다윗과 사무엘 한나의 기록들이 다 우리의 경계와 거울과 소망으로 쓰여진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그분의 의로 말미암아 왕노릇하며
우리를 오늘도 인도해 가심을 믿으시기 바란다.
우리가 땅에서 크고 작은 일들과 사건들에 시달리며 살아가지만, 거기에 매몰되지 말자.
주님의 말씀대로 그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며 사는 일을 소홀히 하지 말자.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는 그리스도인들이다.
환난과 고난 중에도 즐거워할 수 있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이다.
왜냐하면 고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으로 사는 존재들이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믿음은 세상을 이기고 고난을 이기고 사단을 이기고 육성을 이길 수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다.
환난이나 곤고나 기근이나 위험과 칼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는 넉넉히 이길 수 있다.
사망이나 생명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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