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은 사도 요한이 밧모 섬에 유배 당하여 고난 받는 중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하여 주님으로부터 받은 계시를 기록한 책이다.
2장과 3장에는 주님께서 친히 아시아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가 기록돼 있다.
일곱 교회는 과거나 현재나 우리 교회들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동시에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신앙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다.
주님이 칭찬하시는 것은 우리의 믿음이 지향해야 할 것이요,
책망하시는 것은 우리가 버리고 회개해야 할 것이다.
일곱 교회 중 주님께 칭찬만 받는 교회는 서머나 교회와 빌라델피아 교회 뿐이다.
서머나 교회의 칭찬은 이렇다.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환난과 궁핍한 중에 있지만 실상은 부요할 수 있음을 말씀해 준다.
사도 바울의 고백에서 우리는 이 말씀의 진가를 알 수 있다.
(빌4:11-13)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우리도 어떤 형편에든지 자족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야 한다.
배부름과 배고픔, 풍부와 궁핍에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워야 한다.
이 비결은 배운 자들은 그에게 능력 주시는 주님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된다.
빌라델피아 교회의 칭찬은 이렇다.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는 데는
그렇게 큰 능력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말씀에 이미 우리를 구원하는 능력이 있다.
(롬1:16-17)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복음에는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다.
유대인이고 이방인이고를 가리지 않고 차별을 두지 않으신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고
이 의인은 이 믿음으로 살게 된다.
에베소 교회에 대해서는 칭찬과 책망이 함께 한다.
(계2:2-4)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인내를 안다.
네가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않은 것을 안다.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을 안다.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안다.
그러나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희 처음 사랑(구원의 감격)을 버린 것이다.
버가모 교회에 대한 칭찬과 책망을 본다.
(계2:13-14)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사탄의 권좌가 있는 곳에 살면서도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죽을 때도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 그것은 잘한 일이다. 그러나 책망할 것이 있다.
발람의 교훈을 지킨 자들이 있다.
우상을 섬김으로 행음한 죄이다.
두아디라 교회의 칭찬과 책망도 본다.
(계2:19-20)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칭찬은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이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은 것이다.
책망할 것은, 거짓 여선지 이세벨을 용납하여 우상을 섬기고 행음한 것이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아시아 일곱 교회 중 최후이자 최악의 교회이다.
여기에는 칭찬이 하나도 없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이 라오디게아 교회의 말씀을 주신다.
저는 제게 주신 우림과 둠밈으로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분명, 라오디게아를 향한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었다.
저와 여러분이 이 말씀 앞에 겸손하여지고 회개할 수 있기를 바란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사도 바울이 이 도시에 복음을 심는 일에 큰 힘이 되었고,
'골로새서'에서 언급했듯이 이곳에서 편지를 쓰기도 했다.
(골4:15-16) '라오디게아에 있는 형제들과 눔바와 그 여자의 집에 있는 교회에 문안하고 이 편지를 너희에게서 읽은 후에 라오디게아인의 교회에서도 읽게 하고 또 라오디게아로부터 오는 편지를 너희도 읽으라'
라오디게아는 리쿠스 강 언덕에 자리 잡은 도시였다.
소아시아를 가로지르는 세 개의 제국 도로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하여
풍부한 상업과 행정의 중심지이었다.
로마에서 이 도시는 3가지로 유명했다.
은행 업무의 중심지이었다.
의복과 양탄자를 생산했다. 그 지역에서 사육된 양의 광택이 나는 검은 털로 만들어졌다.
의학을 공부하는 학교가 있었으며 약품을 생산했다.
특히 이 지역 돌을 갈아 만든 안약이 유명했다.
이 도시를 유명하게 한 세 가지가 책망과 회개의 대상이 된 것을 볼 수 있다.
부자 대신 가난, 검은 옷 대신 흰 옷, 안약 대신 눈먼 것이다.
1.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자.
‘아멘’이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참되심을 나타낸다.
자신의 목적과 약속 전부에 있어서 한결같고 변함없는 분이심을 나타낸다.
이 칭호는 라오디게아 교인들의 신실하지 못함과 대조가 된다.
(사65:16) '이러므로 땅에서 자기를 위하여 복을 구하는 자는 진리(아멘)의 하나님을 향하여 복을 구할 것이요 땅에서 맹세하는 자는 진리(아멘)의 하나님으로 맹세하리니 이는 이전 환난이 잊어졌고 내 눈 앞에 숨겨졌음이라'
예수님은 또한 자신을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라고 하신다.
하나님의 모든 창조세계의 가장 중요한 원천이란 뜻이다.
‘알파와 오메가’의 알파와 같다.
‘아멘’과 ‘창조의 근본’은 그분 자신이 신실하시고 참된 보증인이며,
자신의 목적과 약속을 실행하시는 주님의 권위와 권력을 강조하는 것이다.
2. 주님이 책망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자.
(계3:15-16)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다.
차든지 뜨겁든지 하라.
미지근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신앙생활하면서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이 미지근한 것이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상태를 말한다.
라오디게아에서 가까운 히에라폴리스는 뜨거운 온천으로 유명했다.
또한 가까이 있던 골로새는 질 좋은 식용수가 되는 차고 맑은 시냇물로 유명했다.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뜨겁든지 차든지 하라고 하면 금방 알아들을 수 있었다.
뜨거우면 온천물로 사용할 수 있었고, 차거우면 식용수로 쓸 수 있었다.
그러나 미지근하면 어떤 용도로도 쓸 수가 없었다.
리쿠스 강이 여름에는 말라 버렸기 때문에, 라오디게아는 물을 구하기 위해서
긴 수로를 사용해야 했다. 그 물은 미지근할 뿐 아니라 불순했으며,
때때로 더러워서 병을 유발시켰다고 한다.
라오디게아 교인의 영적 상태가 이 수로의 미지근한 물과 같고,
불순하고 더러운 물과 같다는 것이다.
이 상태에 대한 주님의 심판은 토하여 버리신다는 것이다.(심각한 징계의 경고다)
주님이 토하여 내시기 전에 미지근한 상태에서 깨어나
뜨겁고도 차거운 영적인 상태로 회복을 해야 하지 않겠어요?
우리 각자 돌아보고 결단하는 부분이 있기를 바란다.
우리의 머리는 말씀을 철저하게 공부하는 냉철함으로 차거워져야 할 것이고
우리의 가슴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실천할려는 열정으로 뜨거워져야 할 것이다.
현대 교회들은 영성을 회복한답시고 동양적이고도 뉴에이지적인 신비주의로 흘러가고 있다.
대부분의 영성은 성경에 뿌리를 박지 못하고 비성경적인 신비주의로 변질된다는 데 있다.
이것은 미혹의 영에게 끌려가는 것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우리의 영성은 진리의 성경과 진리의 영을 따라 인도함을 받아야 한다.
영성은 신비주의로 가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말씀하는 경건으로 가는 것이다.
참된 기독교는 모든 것을 성경이라는 시금석을 통해 결정한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딤후3:16)고 했다.
개혁파와 청교도의 영성은 성령을 의지하면서 “지성적 경건”(존 머리)을 이루는 것이다.
곧 성경적 지식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경건을 융합시킨 경건을 달성하는 것이다.
머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지식으로 차고 맑게 채워야 하고
가슴은 성령이 주시는 마음과 열정으로 뜨거워지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영성이다.
차거운 머리와 뜨거운 가슴의 균형, 참된 기독교가 추구하는 영성이다.
라오디게아 교인들의 문제는 머리가 말씀으로 차지도 못하고
성령의 열정으로 뜨겁지도 못한 것에 있었다.
3. 우리의 생각과 주님의 생각이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를 알자.
(17)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그들은 환경이나 소유면에서는 부요함에도 불구하고
신앙적으로는 영적으로는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한’ 것을 알지 못하였다.
유명한 안약을 갖고 있었지만 그들의 눈은 ’눈먼‘ 상태이었다.
옷이 넘치게 많은데도 그들은 ’벌거벗었다‘,
그들은 자기들이 상업적으로 부자이고, 좋은 안약이 있어 눈이 밝고,
양털로 짠 옷들이 많아 잘 입고 산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주님이 보시기에는 그들은 가난하고 눈 멀고 벌거벗었다.
라오디게아 교인들이 자신들에 대하여 생각한 것과
주님이 그들을 보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을 본다.
그것은 자만과 자기기만에 기인한다.
그들은 자신에 대해 건방진 생각을 가졌다.
그들은 육신에 대해서 부유하기 때문에 영혼에 필요한 것들을 간과했다.
아니면 스스로 영혼이 잘 채워져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우리 자신의 영혼을 기만하지 않도록 얼마나 주의해야 하는가!
그들이 스스로 부자라 말하고 생각할 때 실상은 가난했던 것이다.
그들의 영혼은 그들의 풍요 속에서 굶주리고 있었다.
그들은 눈 멀었다. 자신의 상태와 형편을 볼 수 없었다.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스스로 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볼 수 없었으며 하나님을 볼 수 없었다.
그들은 벌거벗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의의 옷도 없었고, 새사람의 옷도 없었다.
사도 바울의 말씀이다.
(고전 10: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상을 받기 위해서는 달음질해야 하고, 절제하며, 몸을 쳐 복종케 해야 한다고 한다.
(고전 9:24-27) 너희도 상을 받도록 --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주님은 해결책을 제시하신다.
그들에게 결핍된 것을 주님에게서 ’사라‘고 권면하신다. 18절 말씀이다.
(18)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상업적인 재물로가 아니라, 주님에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라고 하신다.
‘불로 연단한 금’ 하면 두 말씀을 기억하게 된다.
(욥23:10)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시 66:10-12)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되 우리를 단련하시기를 은을 단련함 같이 하셨으며 우리를 끌어 그물에 들게 하시며 어려운 짐을 우리 허리에 두셨으며 사람들로 우리 머리 위로 타고 가게 하셨나이다 우리가 불과 물을 통행하였더니 주께서 우리를 끌어내사 풍부한 곳에 들이셨나이다
이들에게 참된 부를 가질 수 있는 곳과 그것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시는 것이다.
그것을 가질 수 있는 곳은 주님 자신에게서이다.
주님으로부터 이 참된 금을 얻는 방법은 그것을 사는 것이다.
자만심을 버리고, 가난한 마음과 빈 마음을 가지고 주님께 가는 것이다.
주님의 숨겨진 보물로 채워주실 것이다.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라고 하신다.
이 옷을 그리스도로부터 사야 한다.
그리스도의 의의 옷이요, 옛 사람의 헌옷을 벗고 새사람의 흰 옷을 입어야 한다.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고 하신다.
자신의 지혜와 이성을 포기하고, 주님의 말씀과 성령에 몸을 맡기라는 것이다.
그러면 이들의 눈이 열릴 것이다.
4. 주님의 회복과 축복이 무엇인지를 알자.
(계3: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주님이 우리를 책망하시고 징계하시는 이유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라고 하신다.
이에 대한 우리의 응답은 다시 “열심을 내고 회개하는 것”이다.
미지근한 것을 회개하고, 뜨겁고 차거워지기로 열심을 내야 한다.
주님은 문밖에 서서 우리의 마음 문을 두드리고 계신다.
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주님의 임재를 체험할 것이고
주님은 언제나 처럼 들어오셔서,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될 것이라고 하신다.
그리고 이 모든 시련을 이기는 사람에게는 훨씬 더 크고 위대한 복과 영광을 약속하신다.
(계3: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책망도 크시지만 우리가 회개하고 열심을 다시 내면
주시는 축복과 영광은 더 크고 위대한 것을 알고 우리 다 이 영광의 길로 가자.
라오디게아 교회의 책망을 넘어서 빌라델피아 교회와 서머나 교회의 모습으로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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