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현수:조직신학

신현수 박사의 조식신학 (122)

새벽지기1 2016. 10. 18. 07:25


주 되심의 영성 <하나님 형상>

이것은 죄책이 잘못된 행동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단지 감정이라고 보는 것이 설득력이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하지만 죄가 감정에 끼친 영향 역시 결코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죄 용서함과 죄 때문에 손상된 삶을 새롭게 엮어가는 것은 그리스도가 하시는 놀라운 구제책이다.


예수님과 사도들은 바리새인들로 대표되는 자기중심의 유대인에게 회개를 요구했다. 하지만 가엾은 죄인들에게는 회개를 언급하기에 앞서 죄 용서함이 선언되었다. 죄, 죄책, 뉘우침, 회개 및 고백은 가장 먼저 남들에게 요구할 것이 아니라 믿음을 가진 제자가 계속 필요로 하는 것이다(눅 18장 10-17절).  


사람의 존엄성은 사람이 갖는 기본 권리를 전제한다. 남을 돌보지 않은 채 자기 자신의 권리만을 주장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그것은 순전히 자기중심적인 것이다. 사람은 본질적으로 사회적인 존재다. 이것은 사람이 남들과 떨어져 자율적이고 독립적으로 살아가고 필요할 때만 남들과 접촉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뜻한다.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나아가서 인류 전체와 떨어져 살아가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한 개인으로서 갖는 존엄성과 가치는 공동체 안에서 살아감으로써 비로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권의 개인적 차원과 공공의 차원을 통합하는 것은 죄가 야기한 폐해로 불가능하다. 또한 그것은 사람이 살아가는 모든 과정에서 부인되기 쉽다. 아이는 집에서나 학교에서 눈에 띄게 고아처럼 버려진다. 젊은이는 친구가 없어 외로움을 느낀다. 중년의 사람은 내일의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일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늙은 여인은 감사할 줄 모르는 가족 때문에 명예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공동생활을 멀리한다. 이러한 고립 현상은 믿음의 공동체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 역시 이기적인 태도와 행동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권의 개인적 차원과 공공의 차원의 통합은 그리스도 안에서 가능하게 되었다. 그것은 한 개인이 그리스도께 인격적인 반응을 나타낼 때다. 이 반응은 세례와 공동체를 이루는 행동으로 구체화된다. 이러한 사실은 한 개인이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그리고 그 공동체를 통해, 또한 하나님의 세계에서 그리고 그 세계를 위해서 존재하고 일할 때 그리스도를 섬기는 개인의 정체성과 권리가 실현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하지만 이 통합은 이 땅에 살아갈 동안은 부분적이다. 그것은 우리 자신이 믿음과 소망 안에 있는 것이지 볼 수 있는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을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고전 13:12).


사람이 갖는 권리와 존엄성이 이 땅에서 살아갈 동안에는 충분히 인정되거나 실행되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이 성령의 힘입어 행동하고 성령의 새롭게 하는 사역에 바탕을 두는 방향으로 살아간다면 개인의 정체성과 통합이, 비록 부분적이지만, 현재에도 온전히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의 구체적 모습은 무엇인가? 그것은 다른 사람의 권리 특히 권리가 위협을 받거나 부인되는 사람들의 권리를 변호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기울이는 이러한 관심이 율법과 선지자의 말씀을 따르는 것의 핵심이다(미 6:8). ‘인권’이라는 말이 개인의 생명에 대한 기독교적 가르침을 뒷받침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뜻에서다. 그것은 자기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사람 곧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에게 특별히 관련된다.


사람의 생명이 갖는 신성함은 인권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엄밀한 뜻에서 하나님만이 신성하다. 사람의 생명이 신성하다는 이 말이 인간 생명이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가치를 갖는다는 것을 뜻한다면, 그것은 사람을 우주의 중심으로 만드는 것이다.  <계속>  

출처j...복음신문....피어선신학전문대학원 조직신학 교수...신 현 수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