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존 오웬

내 안의 죄죽이기 (5) / 존 오웬,

새벽지기1 2016. 7. 15. 07:27


4. 영적 은혜의 전제 조건


“내가 그 길을 보았은즉 그를 고쳐 줄 것이라.

그를 인도하며 그와 그의 슬퍼하는 자에게 위로를 다시 얻게 하리라”(사 57:18)


마지막 원리는 우리의 영적 삶의 활력과 위안은 죄를 죽이고 이기는 삶에 크게 좌우된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과 동행할 때 우리는 힘, 위로, 능력, 그리고 평강 등을 갈구한다. 그것들은 계속 죄를 죽일 때만 가능한 것이다.


평화와 위로는 하나님만이 주시는 특권

그렇다고 죄를 죽이면 무조건 그런 것들이 온다는 뜻은 아니다. 평화와 위로는 주는 것은 하나님만의 특권이다. 하나님은 자신이 직접 위로의 은혜를 베푼다고 말씀하신다(사57:18). 그러면 어떻게 위로하시는가? 한마디로 새로운 창조를 통해서이다. “입술의 열매를 짓는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고 하신다. 평화를 얻는 수단을 이용하는 일은 우리의 몫이지만 그것을 베푸는 일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특권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는 결정적 원인은 신분상 하나님의 양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죄를 죽이는 삶과 영적 은혜의 상관 관계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할 때 우리의 영적 삶에서 위로와 활기는 많은 부분 죄를 죽이는 삶에서 기인한다. 어떤 면에서 죄를 이기는 삶은 절대적인 필요조건이며, 하나님의 은혜에 영향을 미치는 효과적인 요소이다.


죄를 죽이지 않을 때 일어나는 결과


첫째, 죄는 영혼을 약하게 만들고 그 힘을 빼앗는다.

“주의 진노로 인하여 내 살에 성한 곳이 없사오며”(시38:3). 정욕을 죽이지 못할 때 그 정욕은 영혼을 삼키고 영혼의 기운을 빼앗아 약하게 만든다.

죄는 우리의 마음을 희미하게 하고 무력화시킨다. 영혼은 하나님께 똑바로 진실하게 “당신은 나의 기업입니다”라고 말할 수 없게 된다. 하나님으로 채워지기를 원하는 영혼의 갈망, 소망, 그리고 경외심 등이 죄로 물들게 된다.

죄는 영혼의 생각을 죄에 대한 나쁜 생각으로 채운다. 육체를 윤택하게 하고 육체를 만족시킨다. 죄는 우리로 하여금 경건한 의무를 수행하지 못하도록 막는다.

둘째, 우리의 영혼을 약하게 만드는 죄는 또한 영혼을 어둡게 만든다.

죄는 영혼 위에 드리워져 하나님의 사랑과 호의의 광채를 차단하는 빽빽한 구름이다.

우리의 영적인 삶의 활력과 힘은 죄를 죽이는 삶을 살 때만이 누릴 수 있다.

죄를 죽이는 삶만이 우리에게서 죄를 제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죄를 죽이기 위해 필요한 희생과 경계

죄를 죽이는 삶은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마음속에서 더욱 번성할 수 있도록 때때로 은혜의 가지를 자른다. 영적인 삶의 생명과 기운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은혜의 나무가 얼마나 활력을 갖고 번성하느냐에 달려 있다. 당신이 정원에 귀중한 화초를 심고 땅을 일구었지만 주위에 있는 잡초를 방치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 화초는 쓸모없는 존재가 되고 말 것이다. 잡초를 제거해 주었다고 하자. 그러면 그 화초는 확실히 번성하며 자랄 것이다.

우리 마음에 심겨진 성령의 은혜도 이와 마찬가지다. 사실 성령의 은혜는 죄를 죽이는 의무를 태만히 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계속 존재한다. 하지만 그 은혜들은 거의 죽은 상태나 다름없다(계3:2). 살아 있지만 죽은 것과 진배없는 은혜들이다.


하지만 이와 달리 죄를 죽임으로써 마음 밭을 정결하게 하고 정욕의 잡초들이 생겨날 때마다 계속해서 뿌리를 뽑았다고 하자. 그리고 마음속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자라나도록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게 되면 마음속의 은혜들은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며 유용한 목적으로 사용받게 된다!

또한 죄를 죽이지 않는다면 신실할 수가 없다. 죄를 죽이는 사람만이 가장 확실한 신실함의 증거를 가질 수 있다. 이런 신실함은 우리가 누리는 평화의 커다란 기초가 된다. 죄를 죽이기 위해서는 영혼이 자아와 격렬하게 싸워야 한다. 그런 싸움에서 신실함이 나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