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존 오웬

내 안의 죄죽이기 (6) / 존 오웬,

새벽지기1 2016. 7. 16. 11:38


5. 죄를 죽인다는 의미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골3:15)


앞의 내용을 기초로 해서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성도들이 죄를 죽이려 할 때 발생하는 실제적인 문제와 질문들을 다루어 보기고 하자.

마음속에서 죄를 몰아내는 것이 죄를 죽인다는 의미가 아니다

죄를 죽이는 일은 죄를 완전히 도말하거나 근절시키고 파괴시켜 그것이 우리의 마음속에 더 이상 설 자리를 잃고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진실로 죄를 완전히 죽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마음속에 죄가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지 못하도록 그것을 억제하는 것뿐이다.


그리스도의 영과 은혜로 우리는 죄에 대해 괄목할 만한 승리를 거두고 엄청난 성공과 함께 죄를 거의 계속해서 죽일 수 있지만, 그것을 완전히 죽이고 제거하는 일은 이 땅의 삶에서는 가능하지 않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빌3:12).


바울은 온전한 사람이 아니라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힘썼던 불완전한 사람이었다. 그는 여전히 우리처럼 마지막 날에 그리스도의 권능으로 씻김을 받아야 하는, 죄로 더러워진 몸을 가진 자였다(21절). 그것이 유익한 것은 모든 일에 우리를 위해 최선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가 온전해 질 수 있기 때문이다(골2:10).


죄를 숨기려는 것이 죄를 죽인다는 의미가 아니다

죄를 죽인다는 것이 죄를 감춘다는 의미는 아니다. 외형적으로 죄의 행동을 포기하는 외식자를 보고 우리는 그를 변화된 사람으로 칭송할 수 있다. 그는 이전의 죄에다 저주스런 위선 죄를 덧붙인 자이다. 그는 전보다 훨씬 지옥의 문에 더 가까워진 셈이 된다. 이런 사람의 마음 속에는 거룩한 새로운 마음보다 더욱 교활한 마음이 자리잡게 된다.


차분한 성품이 죄를 죽인다는 의미가 아니다

사람들 중에는 천성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달리 다혈질적인 기질이나 참을 수 없는 격정 등이 없이 고요한 사람들이 있다. 일생동안 화를 거의 내지 않은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사람보다 오히려 때때로 화를 내는 사람이 죄를 죽이는 삶을 더욱 잘 실천한다고 말할 수 있다. 자신을 올바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솔직하게 자신 속에 있는 불신, 시기 또는 그 밖에 영적인 죄를 시인해야 할 것이다.


일시적으로 죄를 짓지 않는 것이 죄를 죽인다는 의미가 아니다

당신이 아무리 신앙을 고백하고 모든 불의의 행위를 버렸다 할지라도 여전히 당신 마음속에는 이전처럼 정욕이 강력하게 자리잡고 있다. 그 정욕의 물줄기를 잠시 딴 곳으로 전환시켰다 할지라도 그것은 다시 다른 형태로 위력을 발휘하며 나타나는 까닭은 은혜에서 떠난 인간의 속성 때문이다. 죄의 전환은 인간의 생활 방식, 관심, 관계, 그리고 계획에 영향을 받아 여러 형태를 취한다.


세월이 가면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신체의 변화도 전환되어 나타나는 죄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젊었을 때 정욕을 추구하던 사람이 나이가 들면서 정욕의 형태가 바뀌는 것도 죄의 전환이다. 교만한 삶을 살거나 바리새인적인 삶 대신에 외설적인 삶을 살아가는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자신이 특정한 죄의 형태를 피했다고 다른 모든 죄를 죽였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그는 단지 자신의 주인을 바꾸었을 뿐 여전히 죄의 종이다.


순간적으로 죄를 이긴 것이 죄를 죽인다는 의미가 아니다

첫 번째 상황은 자신 속에 있는 죄를 보고 극도의 슬픔을 느끼고 마음의 평화가 깨지며 양심의 가책을 느낀 사람이 그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분노를 사지 않을까 염려하게 되는 경우이다. 자신을 일깨우고, 죄와 자신에 대해 혐오감을 갖게 된다. 하나님께 나아가 생명을 위해 울부짖는다. 정욕과 싸우려는 자세를 취한다. 그러나 상황이 달라지면 고개를 들고 일어난다. 고린도교회의 죄상을 보면 그들이 처음에 얼마나 일치단결해서 죄를 무너뜨리려고 했는지를 알 수 있다(고후7:11). 죄는 잠시 몸을 낮춰 자취를 감춘다. 그러나 도둑같은 죄는 상황이 달라지면 다시 살아나서 이전처럼 행동을 개시한다.


두 번째 상황은 재난과 고통의 압박, 그리고 심판을 받는 상황이 올 때 그런 현재의 고통과 두려움, 그리고 위기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는 경우이다. 죄 지은 사람은 하나님의 분노로 벌을 받는 일을 가장 두려워한다. 그래서 그 분노를 피하기 위해 죄와 대항하기로 결심한다. 이 때 죄는 전혀 움직이지 않고 죽은 것처럼 행동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죄가 타격을 받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앞의 다짐들이 사라지게 되면 죄는 다시 등장하여 이전의 활력을 되찾는다. “이는 하나님께 향하는 저희 마음이 정함이 없으며 그의 언약에 성실치 아니하였음이로다”(시78:32-37).


결국 가련한 영혼들은 자신들을 계속적으로 속인다. 그래서 자신들 속에 죄가 강력하게 살아 있고 틈만 나면 자신들을 괴롭히는 상황에서도 그들은 자신들이 죄의 정욕을 죽였다고 착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