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교리해설

[라은성 교수의 쉬운 교리해설] (10)영원한 작정과 비밀적 예정②

새벽지기1 2016. 7. 10. 22:58

‘하나님 선한 기쁨’이 궁극적 기초
 

개혁신학은 신앙고백에서 삼위일체에 관련된 질문을 물은 후, 그 하나님의 사역에 먼저 관심을 갖는다. 그 사역을 가리켜 교리적으로 ‘작정(decree)’이라 부른다. 작정이란, <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서> 7문과 <웨스트민스터 대교리문답서> 12문에서 답변을 발견할 수 있다. “영원한 계획으로서, 자신의 영광을 위해 천사들과 인간에게 일어날 모든 일을 미리 정하셨다”는 것이다. 이 계획은 불변적이며, 그분의 사랑에서 나온 것이다. 이 계획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인류의 일부를 영생으로, 나머지는 간과의 대상이다. 간과 또는 유기에 해당된 자는 심각한 불평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일은 자발적으로 행해지기 때문에 스스로의 죄로 인해 벌을 받기로 미리 정해져 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을 통해 하나님의 공의는 찬양을 받게 된다.

작정에 대한 내용은 다시금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3장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고백하고 있다. 인간에게 일어난 모든 일이 미리 정했다고 하면 불평할 수밖에 없다. 인간의 자유가 방해받는다는 것이다. 이 불평을 해소하기라도 하듯이, 1항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죄의 저자도 아니시고 피조물의 의지를 침해하지도 않는다”고 한다. 더욱이 영원한 작정 안에는 인간의, 즉 제2원인의 자유까지도 포함한다고 한다(<기독교강요> 1권 17장 9항). 지난 호에서 밝혔듯이 하나님의 작정 또는 예정은 하나님의 사역과 인간의 사역 둘 다를 동시에 인정해야 한다고 설명한 바 있다. 미리 정하셨지만, 인간의 자유까지도 그분의 작정 안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것을 숙명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요지부동할 것이기에 숙명이지 않느냐고 불평할 수 있다. 하지만 숙명은 비밀적 예정을 인간이 알고 있다는 것을 전제하지만, 예정은 인간이 인정할 뿐이지 인간에게는 언제나 비밀적이다.

그렇다고 그분의 예정을 예측, 예지, 예견, 예상 등의 단어 개념으로 오해해서는 결코 안 된다. 이런 자세는 아르미니우스파가 주로 도입하거나 자연신론자(Deist)가 사용하는 전형적인 도구들이다. 하나님을 인간으로 격하시켜 인간처럼 하나님도 예상되는 기준이나 조건을 가졌을 것이라고 착각에서 나온 억지 주장일 뿐이다(3항).

예정은 두 가지 측면을 갖고 있는데 하나는 영생이고, 다른 하나는 영벌이다. 여기에는 천사들만 아니라 인간도 포함되어 있다. 운명만 아니라 일어나는 모든 것이 미리 정해졌다는 것이고, 각각의 수도 미리 정해져 있지만 이것은 인간의 이해가 미칠 수 없는 것이고 누구의 조언이나 환경을 통해 변할 수도 없는 불변의 진리이다(4항).

그리고 인간처럼 제한된 시공간에서 이뤄진 예정이 아니기 때문에 시간의 개념을 적용시켜 ‘영원 전’이란 의미를 ‘태어나기 전’이라는 그릇된 이해를 갖곤 하는데, 이것은 아르미니우스파가 주로 채택하는 견해로서 ‘타락후선택론’에서 나온 추정이나 상상이다. 이 점에 관해 칼빈은 이미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되었다는 의미는 우리 편에서 어떤 실제적 가치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고, “우리를 선택하시도록 그분에게 감동 줄만한 것을 우리 안에서 결코 발견할 수 없다”고 한다고 밝혔다.(<기독교강요> 3권 22장 1항).

이와 같은 비밀적 예정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스런 공의를 찬양하기 위함이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3장 7항). 가장 공정하고 공평하신 하나님이시기에 모든 것의 심판자가 되신다. 게다가 영벌에 처하게 될 유기된 자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은 하나님에 대한 불평을 금하고 있다. 왜냐하면 지나친 처사라고 하나님께 불평하지만 자발적으로 행한 것에 대한 처사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예정은 비밀적이기에 인간이 깨달을 수 없고,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것은 자신이 자발적으로 행동했다는 사실 뿐이다. 또 선택된 자 역시도 무상적 은혜로 순종하게 되므로 자신의 것이라 자랑하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의 예정은 미리 정하신 것으로 마무리되어선 안 된다. 예정된 자를 정한 시간에 “말씀과 성령”을 통해 효과적으로 부른다. 그분의 부르심에 실수나 지연이 있을 수 없고 반드시 응답하게 되어 있다. 이것을 칼빈주의 ‘5대 항목’에서 “불가항력 은혜”라고 칭한다. 그분과 교제하도록 부르실 뿐 아니라 참된 믿음을 주셔서 자신이 죄인임을 비통하게 느껴 회개하도록 이끈다. 이 과정에서 그분의 무상적 자비함을 깨닫게 되는 동시에 자신의 모든 죄가 덮인 사실, 즉 용서의 사실을 확신하는 칭의를 인정하게 된다. 죄의 용서에만 머물지 않고 평생을 통해 거룩한 삶, 즉 성화를 통해 그분의 영원한 작정인 그분의 영광을 위한 삶을 살게 된다(3권 22장 3항).

끝으로 이런 선택의 궁극적 기초는 하나님의 선한 기쁨이다. “‘그 기쁘신 뜻대로’라는 말씀의 의미는 인간이 자신 안에 존재한다고 상상하는 선택의 모든 근거를 뒤집어엎으라는 의미다”(3권 22장 2항). 하나님의 비밀적 예정에 관련하여 인간이 그 어떤 상상력의 발휘를 금하는 의미로 ‘선한 기쁨’이란 단어를 개혁신앙인은 즐겨 사용하고 있다.


라은성 교수  opinion@kid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