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교리해설

[라은성 교수의 쉬운 교리해설] (11)선하신 창조자 하나님

새벽지기1 2016. 7. 12. 07:29


하나님은 창조자요 구속자이다
 

오늘의 주제는 ‘창조자 하나님’에 관한 내용이다. 창조자 하나님을 고백하면서 개혁신앙인은 무엇을 깨달아야 할까? 크게 두 가지이다. 누구를 위함이며, 창조의 방법에 대한 것이다.

하나님은 인류를 위함이다. 특별히 선택된 자를 위함이다. 그 방법은 ‘오직 말씀으로’이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면서 “좋았더라”고 말씀하신다. 이 의미는 어린이처럼 자신이 만든 것을 보고 마냥 좋아한다는 것이 아닐 것이다. 말씀대로 우주의 창조가 이뤄지는 것을 보고 그분이 좋아하셨다는 것은 감정적인 부분이 분명히 아닐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인간을 창조하시기 전에 준비하고 배려하는 모습이 마치 아버지가 자녀를 위해 준비하는 것과 같다는 의미에서 ‘좋다’고 하신 것이다. 이것을 성경은 그분의 선하심이라고 명명한다. 우리를 위해 창조하시기 전 모든 것을 준비하신 후 이끌고 돕고 보호하는 아버지 되심을 가리켜 구약성도는 그분의 ‘선하심’이라 고백했다.

또 그분은 무(無)에서 창조하셨다고 분명히 강조한다. “그분의 권능의 말씀으로 무에서 만드신 것”(<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서> 9문)이고, “태초에 자신의 권능의 말씀으로 무에서 세상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웨스트민스터 대교리문답서> 15문) 창조하셨고, “6일 동안 가시적인 것과 불가시적인 모든 것을 무에서 창조”(<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4장 1항)하셨다고 일치하게 고백한다. 우리를 위하는 아버지와 같은 전능하신 하나님은 섭리하시고 무에서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다.

창조에 관련하여 개혁신앙인이 깨달아야 하는 다른 하나는 하나님은 피조 세계에 자신을 계시하셨다는 것이다. 이 점은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롬 1:20)라는 말씀을 통해 알게 된다. 우리는 “태초에 그분의 영원한 권능, 지혜 및 선하심의 영광을 명시하시기 위해” 창조했다고 고백한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4장 1항). 이 의미는 누구도 하나님에 대해 들은 적이 없다는 핑계를 못하게 하는 면이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선택된 자가 인생을 살면서 가시적인 것을 통해 불가시적인 것을 잊지 않게 하고, 영원한 나라를 소망하도록 돕는 수단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선택된 자는 창조자 하나님에 대한 지식만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그 이유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창조자만 아니라 구속자로 반드시 알아야”하기 때문이다(<기독교강요> 1권 6장 1항). 이는 두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고, 양면성을 가진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의미하는 것도 결코 아니다. 창조자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곧 구속자 하나님을 안다는 것이고, 구속자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창조자 하나님을 안다는 것을 의미한다.

피조 세계를 통해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는 자는 구원하는 믿음을 소유한 자가 아니고, 구속자 하나님, 즉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세주로 영접하지도 않은 것임을 말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생명에서 죽음으로 전락했기에 그리스도 안에서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붙잡도록 하시는 믿음이 따르지 않으면 창조자 하나님에 대한 모든 지식은 무용지물이다”고 칼빈은 강조한 것이다(<기독교강요> 2권 6장 1항).

그리고 창조자 하나님에 대한 다른 큰 주제를 살펴본다. 하나는, 자기부인의 삶인데, 이것은 기독교인이 평생 실천하는 지상의 삶이다. 이 삶을 위한 첫 번째 원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영적 삶을 말하고(<기독교강요> 3권 7장 1항), 두 번째 원리가 “하나님을 자신의 창조자로 인정하는 삶”이다(<기독교강요> 3권 7장 2항). 이 의미는 하나님이 구세주며, 아버지로 고백한다면 그분이 필요 때마다 제공하실 것을 신뢰한다는 것이다. 또 그분이 제시한 방법으로 건강과 부를 획득하고 유지한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성급하게 세속적 삶에 매력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은 그분이 창조자 하나님이심으로 인정하는데 부족하든지, 아니면 불신한다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사도신경 첫 부분의 의미에 대한 질문에서 “그리스도와 그분의 아들로 인해 나의 하나님과 나의 아버지로서 몸과 영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나에게 제공하실 것을 확실히 믿는다”고 답변한 것이다(<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서> 26과 27문). 이것은 이어지는 주제인 하나님의 ‘섭리’와 관련을 맺는다.

창조자 하나님에 대한 고백은 결국 선하신 하나님께서 아버지로서 선택된 자의 삶을 항상 돕고 이끌고 보호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확신을 가지고 사도신경의 첫 부분 “전능하사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다고 우리는 고백한다. 다른 말로는 선하신 하나님, 아버지이신 하나님, 섭리의 하나님이라 표현할 수 있다.

라은성 교수  opinion@kid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