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교리해설

[라은성 교수의 쉬운 교리해설] (12)운과 우연이란 없다-섭리론

새벽지기1 2016. 7. 13. 07:42

불변하는 섭리가 늘 함께 한다

 

우연이나 운이라는 단어는 기독교인에게 금지된 단어이다. 그 이유에 관해 신앙고백서는 “우리가 믿기로는 선하신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신 후 그것들을 우연이나 운에 내버려두지 않고(요 5:17;히 1:3) 자신의 거룩한 뜻에 따라 그것들을 이끌고 지배하신다는 것이다”(<벨지카 신앙고백서> 13항)고 고백한다. 칼빈도 섭리에 대해 <기독교강요>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운으로 또는 운명론과 혼동해서는 결코 안 된다. 그 이유는 가증한 용어를 이용하여 하나님의 진리에 오명을 씌우려고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1권 16장 8항)고 했다.

우연이나 운이란 단어를 사용하지 말 것을 개혁신학에서 강조하는 이유는 ‘창조자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백서와 교리문답서는 창조에 이어서 섭리를 주제를 다루면서 운과 우연이란 단어를 사용하지 말 것을 강력하게 또 일관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섭리는 신앙생활에서 직면하는 매우 귀중한 주제이다. 먼저, 섭리의 정의다(<기독교강요> 1권 16장 4항). 창조에 이어 섭리의 사역에 대해 물으면 “그분의 가장 거룩하고, 가장 지혜롭고, 가장 능력 있게 모든 피조물과 그들의 행동을 보존하시고 치리하는 것”이라고 답할 수 있다(<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서> 11문). 이러한 답변은 <웨스트민스터 대교리문답서>도 거의 동일하다(18문). 그런데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서>에서는 하나를 덧붙여, “만사는 우연하게 일어나지 않고 그분의 부성적 손길에 의해 일어난다”고 한다(27문).

둘째, 섭리는 만사의 간섭과 개입이 아니라 ‘보호함’에 있다. 자녀를 위한 아버지의 보호함에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버지되심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고, 아버지의 보호함에 대해 하나님을 부르는 칭호는 “창조자 하나님”이다. 이런 면에서 창조와 섭리는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해도 무방하다. 또 섭리와 주권은 수레의 양바퀴이다. 섭리를 보호함으로, 주권은 이끄심에 관련시킬 수 있다. 그래서 교리에서는 주권에 관한 주제를 다루지 않는다. 그 주제가 섭리에 포함되기 때문이고 주권이 곧 섭리이기 때문이다.

셋째, 섭리 또는 주권은 인간의 모든 삶에 영향을 끼친다. 우주를 포함한 모든 피조물, 언행 및 사물이다. 여기에는 “천사와 인간의 모든 죄까지도 포함된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5장 1항). 더 나아가서 인간의 심정과 오성까지도 포함된다(5장 6항). 그야말로 영적인 영역과 육적인 영역만 아니라 교회와 국가의 영역까지도 포함되니 그야말로 포괄적이다. 그러다보면 우리의 자유를 억제하거나 간섭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는데, 결코 아니다. 그분의 섭리는 그분의 지혜와 권능으로 이뤄지고, 우리에게는 비밀적이고(<기독교강요> 1권 16장 9항) 자발적이다. 이는 그분의 섭리가 있다는 것이지, 우리가 그것을 의식해서 부자연스럽게 행하는 것이 아니고 너무나 자유롭게 태연하게 행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비밀적 사역을 섭리하고 우리가 명하고 있지만 그 사역의 절차나 진행을 우리가 인지하지 못한다.

넷째, 섭리 사상은 우리에게 어떤 유익이 있을까?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이다(<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서> 28문). “심정 안에 감춰진 부패와 기만의 강력한 힘을” 깨닫게 하셔서 우리를 겸손케 하는데 있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5장 5항;<기독교강요> 1권 17장 1항). 그 결과 모든 유혹을 대비하도록 만드는데 있다. 지상에 사는 동안 그분이 우리를 끝까지 보호하신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교리적으로 ‘성도의 견인’을 가질 수 있는 근거가 된다고 말할 수 있다.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질 수 있는 겸손의 힘은 그분이 섭리한다는 확신에 근거한다. 그분의 섭리는 공의로우시기에 성도의 억울함이나 원통함을 그분이 대신하여 복수하실 것이다(롬 12:19).

다섯째, 우리가 취해야 하는 3가지 섭리적 신앙 자세는 이렇다. ①과거만 아니라 미래와 관련시켜 숙고해야 한다. ②모든 것을 치리하실 때 수단을 사용하시기도 하고, 수단 없이 사용하시기도 하고, 더욱이 수단과 반대하여 행하시기도 함을 숙고해야 한다. ③하나님의 계획은 개인보다 교회를 더 중요하게 다루는 것을 숙고해야 한다(<기독교강요> 1권 17장 1항). 두 번째 항목에 관심을 가져보자. 우리가 인지하는 것은 수단을 사용하시는 경우다. 인지 못하는 경우를 비밀적이라 일컫는다. 그 수단에 따라 제1원인과 제2원인들이라 부른다. 당연히 제1원인은 하나님이시다. 제2원인들에는 자연과 인간 및 보이지 않는 영들까지도 포함된다. 하나님을 일컬어 제1원인이라 일컫는 이유는 모든 것의 답변이라는 것이다. 죄를 짓도록, 선을 행하도록 하는 단순한 동기부여가 아니라 완전한 이유라는 의미다. 이따금 하나님께서 후회한다는 표현을 성경에서 읽을 수 있는데 그 의미는 가시적인 해석과 인간적 표현이지 불변하시는 하나님의 속성에 아무런 해를 끼치지 못한다. 불변하시는 섭리가 아니면 우리의 소망은 허무한 것이 되고 만다.

라은성 교수  opinion@kid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