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교리해설

[라은성 교수의 쉬운 교리해설] (14)인간론②-타락 후의 상태

새벽지기1 2016. 7. 15. 10:04

영의 회복은 오직 성령 하나님
 

십대들이 훔친 차로 질주하여 사람을 치고, 목사라는 자가 딸을 죽여 수개월 동안 방치하고, 사람을 죽여 조각내기도 하고, 행패를 부리고, 끝까지 거짓말하는 등 부정과 부패, 불법, 불의한 소식들이 끊이질 않는다. 도대체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을 어떻게 볼 것인가? 개혁신앙의 교리는 이런 점에 대해 신학적이고 성경적 답변을 정확하게 밝히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죄로 말미암는다. 그 죄의 정체를 밝혀본다.

첫째, 인간을 동물처럼 만들어버리는 “죄는 무엇인가?”(<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서> 14문과 <웨스트민스터 대교리문답서> 24문) 이에 대한 답변은 하나님의 율법에 미치지 못하거나 벗어나거나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율법이 기록되었던 것은 모세 때였지만, 최초의 인간이었던 아담과 하와 때의 율법은 곧 하나님의 신탁 또는 명령이었다. 그 명령에 대해 인류의 부모인 그들은 따르지 않고 무시했다. 그 결과 죄가 세상에 들어왔다.

둘째, 그들이 범한 죄의 행위의 구체적인 내용은? 바로 “금지된 실과를 먹은 것이다”(<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서> 15문) 금지한 것이 그들에게 율법이었다. <웨스트민스터 대교리문답서> 20문은 하나님의 율법의 내용을 자세히 열거하고 있고, 21문에서 “자신들의 의지의 자유가 있던 최초의 우리 부모는 사탄의 유혹으로 말미암아 금지된 열매를 먹음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였고, 그 결과 순결의 상태로 창조된 데에서 타락하고 말았다”고 한다. 한 마디로 그 죄의 내용은 의지적으로 그분의 명령을 어긴 것이다. 순전한 자유의지를 가진 그들은 자발적으로, 자의적으로, 그리고 자유롭게 어긴 ‘의도적인 불순종’이었다(<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서> 7문).

셋째, 칼빈은 최초의 범죄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선과 악에 대한 지식의 나무 열매를 먹지 말라는 금지는 순종의 시험이었다…그의 믿음을 증명하고 훈련시키기 위함이었다”(<기독교강요> 2권 1장 4항) 이러한 불순종의 죄는 유전적이든 출생법에 의해서든 우리 모두가 행하고 있다. 교리들마다 이것을 강조하는 이유는 누구나 그 자리에 서면 그들처럼 범할 것임을 의미하고, 우리를 지배하기에 이른 것임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그 결과 온갖 “영적으로 선한 것을 행할 마음이 없고, 무능하고, 전적으로 거역하고 모든 악한 것에 전적으로 또 지속적으로 기울어져 있다. 이것을 가리켜 흔히 ‘원죄’(原罪, original sin)라 부르는데, 여기서 모든 실제적 범죄들이 나온다”(<웨스트민스터 대교리문답서> 25문)

그렇다면 처음에 언급한 인간의 부패한 상황들을 이해할 수 있다. 교리에서는 원죄와 실제적 범죄들로 나누지만, 성경에서는 그저 ‘죄’라고만 언급한다. 그것으로 인해 육체적 일들이 일어나고, 온갖 범죄가 죄의 지배 하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넷째, 아우구스티누스는 노예적 의지라고 말했고, 칼빈도 이 개념을 그대로 수용한다. 그러면서 “죄가 자유의지를 어떻게 강탈했는지 알기 위해 영의 기능들을 알아야 한다”고 한다(2권 2장 2항). 죄가 세상과 우리 안에 들어와서 지배한다는 의미는 인간성이 전적으로 부패했다는 것을 의미하고, 인간성의 부패는 곧 영의 기능들의 부패를 의미한다. 부패의 기능 중 하나인 의지는 죄를 범하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고, 극단적 또는 자기중심적인 이기심으로 가득 차 있다. 자신을 내려놓지도 부인하지도 않는다. 자신의 의지적 결단과 선택이 그 무엇보다도 우선적이고, 심지어 창조자 하나님의 명령보다도 더 우선적이다.

다섯째, 영의 기능에는 크게 의지, 감성, 오성, 이성 및 지성이 있다. 이런 기능들은 자신을 위해서만 행해진다. 여기서 지성, 오성 및 이성보다 더 중요하고 복잡한 것은 심정(heart), 즉 의지와 감성이다. 심정은 시시때때로 변한다. 감성과 의지가 함께 심정에 속해 있기 때문에 감성을 변화시키면 의지도 함께 변하고, 세상은 미혹하지만 성경은 이것과는 반대 입장을 취한다. 의지의 전환은 인간의 능력으로 불가능하다. 이런 면을 칼빈은 2권 2장에서 부패한 인간성, 즉 의지, 오성 및 이성은 스스로 정화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 이는 인간의 어떤 가시적인 노력으로 감성은 변하나 의지적 변화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타락한 인간이 의지적 전환을 어떻게 일으킬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영의 기능의 회복은 오직 하나님의 사역만으로 일어날 뿐이다. 다시 말하면, 오직 성령 하나님의 사역뿐이다. 인간은 스스로를 기능의 회복에 대해 어느 정도 설득시킬 수 있을 뿐 심정까지 바꾸지 못한다. 그 이유는 인간 누구나 이기적이고, 누구도 죄의 지배 아래에서 부패한 인간성을 가지지 않는 자가 없기 때문이다. 단순히 이기적이지 않는 인물의 삶을 보고 우리는 어느 정도 감동을 느끼곤 한다. 하지만 참된 선을 향한 전환은 부패한 어떤 노력을 기울이더라도 구원에 있어 인간에게는 전적으로 불가능하다. 오직 성령 하나님만이 하신다.

라은성 교수  opinion@kid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