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교리해설

[라은성 교수의 쉬운 교리해설] (15)인간론③-중생된 상태

새벽지기1 2016. 7. 16. 11:30


마음이 계몽되고 의지가 갱생
 

지난 호에서 타락 후의 인간의 상태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인간의 모든 불행은 죄로부터 오는 것임을 알았다. 그 결과 인간성은 부패하여 모든 것은 이기적임을 설명했다. 이것은 인간은 결코 해결할 수 없고, 오직 성령 하나님만이 하신다.

영의 주요한 기능인 ‘마음(mind)’보다 ‘심정(heart)’이 훨씬 복잡하고 늘 변한다(<기독교강요> 3권 2장 36항). 당시 존경받던 학자 니고데모는 중생에 대한 그리스도의 설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그의 이해는 육적으로 다시 태어남과 영적으로 다시 태어남을 분별하지 못했다는 것이지만 기독교인이라 하더라도 중생에 대한 부족한 이해나 잘못된 이해의 경우가 있음을 흔히 본다. 기독교인은 타락 후의 상태에서 중생된 상태로 전환한 자들이다.

중생에 관련된 교리는 <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서> 29~31문; <웨스트민스터 대교리문답서> 58~59, 60, 66~68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0장 1~3항; <돌드레히트 신조> 3~4장 6, 10~16항, 거절 6~9항 및 <기독교강요> 2권 3장 등에서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특별히 자세한 내용은 <돌드레히트 신조> 3~4장에서 다루는데, 그 이유는 아르미니우스파 논쟁의 뜨거운 이슈들 중 하나가 바로 이 주제였기 때문이다. 중생은 흔히 내적(효과적) 부르심 또는 회심이라 불리기도 한다. <웨스트민스터 대교리문답서> 67문에서는 중생을 ‘효과적인 부르심’이라 언급한다. 또 <돌드레히트 신조> 3~4장은 중생이란 단어보다 ‘회심’이란 단어를 더 선호한다(12항).

중생은 전적으로 성령 하나님의 사역이다. <돌드레히트 신조> 3~4장 12항에서는 “외적 가르침에 의해서, 도덕적 확신에 의해서, 또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사역을 행한 후 다시 중생되거나 회심되는지 그러지 않는지가 인간의 능력에 달려 있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고 천명한다. 인간의 어떤 프로그램이나 노력도 믿음의 준비에 불과하지 인간을 전환시키진 못한다. 변화시킬 수 있다거나 변화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면 자신이 아르미니우스파임을 스스로 드러내는 셈이다.

하나님의 자녀, 즉 창세 전에 선택된 자만 중생된다. 이런 면을 <웨스트민스터 대교리문답서> 68문에서 과연 선택된 자만 부르심을 받느냐는 답변으로, “모든 선택된 자만 효과적으로 부르심을 받는다. 그러나 가끔 다른 사람들이 부르심을 받거나 외적으로 부르심을 받을 수 있고, 말씀의 사역에 의해 부르심을 받아 성령의 일부 일반적인 역사들을 경험할 수 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제안된 은혜를 고의적으로 무시하고 경멸하기 때문에 불신앙 가운데에 당연히 남게 되어 결코 예수 그리스도에게 참되게 나아오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지상의 교회에는 중생된 자들만 아니라 중생된 척 하는 자들도 함께 섞여 있다. 가라지와 알곡이 밭에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본인 외에는 자신이 선택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유기된 자도 자신을 철저하게 기만하거나 무지 가운데 있기 때문에 중생된 줄 알고 지낼 수 있다.

그렇다면 진정한 중생은 무엇일까? 중생에 대한 정의를 내려 보자. 교리에서 가장 중요한 문구는 영의 기능을 회복한다는 것이다. 의지를 갱생하여 하나님의 선하심을 향하도록 한다. 이런 점에 대해 하나님은 “자신이 기뻐하시는 때에 자신의 말씀과 성령으로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선택된 자들을 초청하시는데 구원을 받도록 마음을 계몽시키고 의지를 갱생하여 자발적으로 그분의 은혜를 수용하도록 한다”는 것이다(<웨스트민스터 대교리문답서> 67문).

이 과정에서 그리스도의 지식으로 마음이 계몽되고 의지가 갱생된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인간 자신의 내면의 세계를 꿰뚫어 보도록 하셔서 닫히고 강퍅한 심정을 부드럽게 하신다. 하나님을 거역했던 죽은 의지나 나쁜 의지를 살리고, 반항적인 의지를 자발적으로 순종하는 의지로 만드신다는 것이다(<돌드레히트 신조> 3~4항 11항). 하나님의 율법에 따라 살고자 하는 심정을 갖게 한다. 이 사역은 그분의 비밀적 사역이다. 인간은 결코 인지하지 못한다.

중생되었다고 확신을 가지는 자는 그 증표로 세례를 받는다. 그러면 비밀적으로 일어난 중생을 인간이 어떻게 인지할까? 그것은 선물로 받은 믿음으로 알 수 있다. 믿음 역시 인간의 어떤 노력으로도 얻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것은 회개이다. 회개를 진정으로 했다면 그분의 계명에 순종하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죄의 주도권으로부터 자유했지만 아직도 부패한 인간성 때문에 부단히 영적 갈등과 투쟁 속에 살 것이다. 그럼에도 심각한 죄에 빠지지 않고 그분에 대한 지식을 가지려고 부단히 노력하며 순종하려고 인내하며 따른다.

율법은 우리의 안내자가 되어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인지 스스로 증명해 나가도록 이끈다. 억지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기쁜 심정으로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배우려고 할 것이다.

라은성 교수  opinion@kid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