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목회론

목회론(9)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청지기'

새벽지기1 2016. 7. 5. 07:23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청지기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사역자들)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청지기)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청지기)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4:1-2)

사도는 자신이 올바로 인정받기를 매우 바랐습니다. 사역자들이 올바로 평가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지나치게 높게 생각하는 이들도 있고 또한 우리를 지나치게 낮게 생각하는 이도 있는데, 그들 모두 우리를 진정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여긴다면,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나, 우리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나 훨씬 나을 것입니다.


우리는 일꾼들(사역자들)입니다. 이 단어는 아주 존귀하게 들립니다. 그러나 그 단어를 달리 번역하게 되면, 사역자들은 사환(종)들입니다. 손님이 아니고 웨이터들입니다. 주인이 아니고 품꾼들입니다. 이 단어를 “배 밑창의 노예들”(under-rowers), 즉 배 밑창에서 노를 젓는 사람들로 번역하기도 했습니다. 노예선에서 노를 젓는 일은 정말 힘드는 일입니다. 그렇게 신속하게 노를 젓기 위해서 젖 먹던 힘까지 다합니다. 노예선에는 노를 젓는 층이 세 개가 있었습니다. 위층은 그래도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맨 밑층의 노예들은 뜨거운 열기와 땀 냄새 등으로 인해서 정말 쓰라린 괴로움을 당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수고로 말미암아 우리의 위대하신 대장군이 앞으로 나아가실 수 있고, 또한 그가 타신 교회라는 배가 앞으로 속히 전진할 수 있다면, 지극히 나쁜 처지에서 우리의 생명이 닳아 없어지더라도 만족하도록 합시다. 우리는 기꺼이 사슬에 매여 노를 저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인생을 다 드려서 주님의 배가 파도를 가르고 나아가도록 힘을 다할 것입니다. 우리는 선장들도 아니고, 노예선의 주인도 아닙니다. 그저 그리스도의 노 젓는 노예들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우리를 그냥 사역자나 혹은 사환들로만 부르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그리스도의”라는 말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의 사환이 아니라 주 예수님의 사환들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책임은 우리가 주님으로 부르는 바로 그분에게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위의 명령을 따릅니다. 우리의 섬김은 영광된 것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신발의 끈도 풀 자격이 없는 그분의 시중을 들도록 허락받았다는 사실에 큰 존귀를 느낍니다.

또한 우리를 가리켜 청지기라고 말씀합니다. 청지기가 무엇입니까? 그것이 우리의 직분입니다. 청지기들에게 요구되는 바가 무엇입니까? 그것이 바로 우리의 임무입니다.


1. 첫째로, 청지기는 사환(종)이요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환이 자기 스스로 ‘주인’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면, 정말 한심한 사태가 벌어집니다. 주인이 종들을 환대해 준다고 해서 종들이 그렇게도 우쭐대기를 잘 하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혼자서 우쭐대는 하급 관리가 되어 버린다면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겠습니까?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환들이지, 그가 남긴 유산을 지배하는 주인이 아닌 것입니다. 사역자들이 교회들을 위하여 있는 것이지, 교회들이 사역자들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서 수고할 때에 우리는 결코 교회를 우리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경영할 재산이나, 우리 자신의 취향에 맞게 가지치기를 할 수 있는 정원쯤으로 여겨서도 안됩니다.


우리가 우리의 올바른 위치를 지키는 데 조심을 다하지 않으면, 우리 주님은 우리를 책하기를 잊지 않으실 것이요 반드시 우리의 교만을 꺾으실 것입니다. 우리가 바른 위치를 지키지 않고 부당하게 높이 올려진 때문에 온갖 괴로움과 실패와 침체를 겪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여러분, 분수에 넘치게 여러분을 높이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 버릴 것입니다.


2. 청지기는 특별한 사환입니다.

그에게는 다른 사환들을 감독하는 책무가 맡겨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일은 매우 힘든 일입니다. 우리의 교회원들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서로 다른 많은 이들의 마음을 지도하고 가르치고 위로하고 돕는 일이 어떻게 쉬운 일이겠습니까? 다스리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사람이어야 하고, 은혜로 자격을 갖춘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높은 지위를 유지하려면 그만큼 우월한 자질이 갖추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청지기는 밭가는 농군이나 머슴보다는 지식이 많아야 합니다. 사냥터지기나 짐꾼보다 높은 지성을 소유하여야 하며, 자기에게서 명령을 받는 메리나 존보다 훨씬 신뢰성 있는 성품을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청지기들로서 우리는 풍성한 은혜를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우리의 소임을 다하지 못하고 말 것입니다.


또한 다른 사환들이 우리를 본받을 것입니다. 청지기가 무디고 무기력하며 느려터지면 그 주위의 다른 사환들도 다 그렇게 되고, 결국 주인의 사업이 그 만큼 무기력해질 것입니다. 목사에게서 가르침 받는 교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목사에 그 교인’이라는 말이 참입니다. 오, 우리가 언제나 주 예수님을 섬기는 일에 활력이 넘치며 진지하여, 우리 교인들도 그와 똑같이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언젠가 한 청교도 목사에 대한 글을 읽어보았는데, 그분은 어찌나 생명이 충만했는지 그 교인들은 말하기를, 그가 마치 살아 있는 생물을 먹는 사람처럼 살았다고 했습니다. 오, 살아 있는 떡으로 우리의 생명이 유지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해지지 않으면, 우리가 동료 사환들을 잘 운용하는 좋은 청지기가 될 수 없습니다. 동료 사환들에게 열심과 온유함, 변함이 없는 성품, 열정, 순종으로 모범을 세워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 언제나 자기 부인을 실천해야 하고, 우리 스스로 가장 힘들고 가장 비천한 일을 택하여 시행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면에서도 동료들보다 높이 올라 있어야 합니다. 가장 소망이 없는 자들을 인도하고 가장 힘든 짐을 떠맡는 것이 우리의 일이 되어야 합니다.


3. 청지기들은 위대하신 주님의 명령을 직접 받는 사환들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매일 주인의 은밀한 사실(私室)로 들어가 명령을 받는 청지기들처럼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과 저는 “주여, 주께서 제게 원하시는 바를 알려 주옵소서”라고 항상 아뢰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올려보고 그의 뜻을 배우고 실천하기를 중단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진정한 임무를 그만두는 것이 될 것입니다. 주인과 한 번도 의사소통을 하지 않는 청지기가 있다면 그 사람을 과연 어떻게 처리하겠습니까? 품삯을 주고 내보낼 것입니다. 주인의 뜻이 아니라 자기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라면, 청지기로서 전혀 가치가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계속해서 하나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주님께로 나아가 그에게서 명령을 하달 받는 습관을 배양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청지기가 주인의 관심사에 전혀 개의치 않는다면, 혹은 그가 사악하여 주인의 명령을 변경시키거나 뒤집어 놓는다면, 혹은 불의한 종의 비유에 나오는 사람처럼 자기 마음대로 재물을 탕진한다면, 그 밑에 있는 사환들이 똑같이 그런 불충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4. 또한 청지기들은 항상 자기의 사무 현황을 주인에게 보고합니다.

그들이 일을 수행하는 동안 그 일이 계속 기록됩니다. 우리는 각자 자기 자신에게 이렇게 물어보아야 마땅합니다. “내가 설교하고 있으나, 과연 내가 하는 일이 무엇인가? 내 설교가 과연 올바른가? 주께서 전면에 내세워 강조하기를 바라시는 이 교리들을 강조해서 전하고 있는가? 주께서 바라시는 대로 내가 저 영혼들을 보살피고 있는가?”

이렇게 해서 각자의 삶 전체를 반성하고 다음과 같이 질문을 제기하는 것이 좋은 일일 것입니다. “나는 사사로운 기도에 충분한 시간을 소비하고 있는가? 성경을 필요한 만큼 열심히 연구하고 있는가? 여러 가지 모임을 위하여 바삐 움직이는데, 과연 이 모든 일에서 내가 주인의 명령을 이행하고 있는가? 일의 양보다는 일의 질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옳다면, 나는 과연 일의 양이 많은 것에 만족하면서 실제로는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오, 자주 주님께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과 우리의 임무 현황을 분명하게 보고 드리기를 바랍니다.


5. 이제 정말 중요한 문제에 이르렀습니다. 곧, 청지기는 주인의 재물을 책임 맡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가 가진 것은 모두가 그의 주인의 것입니다. 고귀한 것들이 그의 관리 아래 주어졌지만, 그로서는 그것들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그저 잘 보살피는 것뿐입니다. 주께서는 우리들 각자에게 특정한 재능들을 맡기셨습니다. 이것들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지식의 은사, 사상의 은사, 언변의 은사, 영향력의 은사 등은 우리가 자랑할 우리의 것이 아니고, 오직 주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것들입니다. 돈을 버는 것은 주님의 돈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본을 증식해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렇게 하고 있습니까? 은사와 역량이 증가하고 있습니까? 여러분, 여러분 자신을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자라는 형제도 있지만, 그냥 그대로 난쟁이처럼 발육이 되지 못한 채로 남아 있는 형제도 있습니다. 가장 필요하고도 유익이 되는 수고는 우리의 정신적이며 영적인 발전을 위하여 들이는 수고일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청지기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맡은” 사람들입니다. 바울은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된 복음이 자기에게 맡겨져 있음을 말씀합니다. 신실한 재산관리인이라면 언제나 근본 문서에 근거하여 그것에 따라서 정확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입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 저는 이 재산의 주인이 아닙니다. 그저 운영자로서 원칙에 따라서 운영해야 할 책임을 맡은 것뿐입니다”. 청지기들은 그들이 받은 명령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재산관리인은 그 재산관리의 조건들을 따라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지금 이 시대에서 복음을 수호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혹 이 임무를 위하여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 있다면, 바로 우리가 그런 사람입니다. 이 시대는 표류하는 시대입니다. 사람들이 자기들의 닻을 걷어올렸기 때문에,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이리저리 표류하고 있습니다. 지난 날, 아주 진보적인 사상가들이 정통 신앙을 쓸어버리려 했습니다만, 지금도 그들의 공격에서 우리는 살아남아 있습니다. 영광된 복음이여, 그대는 절대로 망하지 않으리라! 우리가 죽게 된다 해도 기꺼이 싸우다 죽을 것입니다. 우리가 개인적으로 사라져 간다면, 전도자들이 새로이 일어나 우리의 무덤 위에서 복음을 전할 것입니다. 복음은 죽음으로써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하튼, 이 싸움에서 혹시 우리가 승리를 거두지 못한다 할지라도, 최소한 정절은 지킬 것입니다.


6. 청지기는 주인의 재물을 그 계획에 따라서 분배하는 임무를 맡고 있습니다.

지혜로운 청지기는 진리의 비율을 균형 있게 유지할 것입니다. 새 것과 오래된 것을 골고루 베풀어 줄 것입니다. 언제나 교리만 전하지도, 언제나 실천만 전하지도, 또한 언제나 체험만 전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언제나 싸움만 설교하지도, 언제나 승리만 전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진리를 한쪽으로 치우쳐서 제시하지 않고, 일종의 입체경으로 보듯이 그렇게 진리를 사람들 앞에 “분명하게” 제시할 것입니다. 영적인 양식을 제대로 준비하려면 그 구성물들의 비율을 올바로 맞추어야 합니다. 설교에 균형이 없는 것 때문에 여러 교회들에게 얼마나 심각한 해가 끼쳐졌는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올바로 견지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을 위해서, 오직 주님만을 위해서, 여러분의 달란트를 사용하도록 조심하십시오. 다른 이들에게 영혼 구원자들이라 여김을 받기 위해서 영혼 구원자들이 되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우리 주님께는 불충(不忠)이 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건전한 사람으로 여김을 받을 것을 생각하고서 건전한 교리를 전한다거나, 혹은 다른 이들에게 기도하는 사람이라 인정받고자 하는 생각으로 열심히 기도한다면, 그것은 결국 예수님께 불성실한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로서는 오로지 우리 주님의 영광만을 발보고 온 마음을 다하여 그것만을 추구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의 복음과 우리 주님의 백성들과 우리 주님이 주신 달란트를 우리 주님을 위하여, 오직 그분만을 위하여 사용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7. 청지기는 또한 그 주인의 가족들의 호위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모든 이들의 유익을 구하고, 그들을 마치 여러분의 친자녀들처럼 사랑스럽게 여기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가 그의 택하신 자들을 사랑하기를 바라실 것입니다. 다른 누구보다도 우리가 먼저 형제들을 위하여 우리의 목숨을 내어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들이 그리스도께 속하여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모든 사람들을 마음을 다하여 사랑합시다. 괴로움을 당하고 고난을 당하는 자들을 돌보아 줍시다. 아버지 없는 고아들과 과부들을 찾아갑시다. 연약한 이들을 돌보아 줍시다. 우울증 있는 자들과 의기소침해 있는 자들을 참아 줍시다. 주님의 집의 모든 부분들을 다 돌아봅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은 청지기의 모습일 것입니다.


8. 청지기가 그 주인을 대표한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주인이 출타해 있는 동안에는, 모든 사람이 그 청지기에게 와서 명령을 받습니다. 그러니 청지기는 주인을 대표하는 자답게 처신해야 합니다. 주인을 대신해서 말할 때에는 자기 스스로 사사로이 말할 때보다는 훨씬 더 조심해야 하고 더 지혜롭게 이야기해야 합니다. 청지기가 자기의 말을 삼가 조심하지 않으면, 그 주인은 어쩔 수 없이 그에게, “자네는 자네 말을 하는 것이 낫겠네. 그러니 자네가 나를 대신하는 역할을 하도록 할 수가 없네”라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청지기 여러분, 우리가 주님의 길을 지키고 그의 진리를 선포하고 그의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면, 그로 말미암아 주 예수께서 해를 입으시게 됩니다. 사람들은 사환을 보고서 그 주인을 추측합니다. 사정이 그러니, 어떻게 변명하겠습니까? 청지기가 주인의 모습을 따라 처신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인과 청지기를, 주님과 그를 대신하는 종들을 서로 떼어서 생각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온유해야 합니다. 온유하신 예수님을 대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열심이 있어야 합니다. 열심이 옷을 입으신 주님을 대신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분명치 않을 때에 우리가 기댈 수 있는 최고의 인도자는 바로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라는 질문에 있습니다. 무슨 오락장에 가자는 유혹이 있을 때에, ‘우리 주께서 가셨다면 나도 가리라’라는 대답으로 그 유혹을 물리칠 수 있을 것입니다. 계시된 진리보다는 여러분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라고 종용받을 때라도, 예수님을 그대로 따르십시오. 그는 자기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아버지의 생각을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할 때에 여러분은 청지기로서 합당하게 처신하게 될 것입니다. 트집잡는 자들이여, 청지기를 탓하지 말라! 그 사람은 자기 상관의 명령에 따라 행했을 뿐입니다.


우리가 우리 십자가를 지고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의 발자취를 따랐다고 느낄 때에, 우리의 양심은 깨끗하며 우리의 마음은 평안한 것입니다. 오늘 당장은 아닐지라도 결국에 가서는, 순종이 독창적인 일 처리보다 낫고, 천재성보다는 가르침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훨씬 더 바람직하다는 것이 드러날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들을 알리고 그가 우리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신 그 일을 끝까지 이루기를 바라야 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후반부는 청지기로서 우리에게 주어진 의무들에 관한 것입니다. “맡은 자(청지기)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청지기에게 탁월할 것도, 동료들에게 좋게 보일 것도, 혹은 성공할 것도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에게 요구하는 것은 오로지 충성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작은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주님 자신이 우리의 지혜와 우리의 힘이 되셔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보기에는 간단할지 모르지만, 우리가 이 요구 사항을 이행하지 못하게 되는 원인이 매우 많습니다.


1. 마치 우리가 사환이 아니라 주인인 것처럼 행동해도 충성을 다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 어려움이 생겨도 사랑으로 참으면 곧바로 해결될 수가 있는데, 우리는 우리의 위엄을 따집니다. 그러면 문제가 지속됩니다. 우리도 원하기만 매우 지체 높고 힘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작을수록 부풀어오르기가 더욱더 쉽습니다. 어느 날 그의 주인이 화난 소작인에게 무례를 당했는데도, 그는 별로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는 그런 작은 일에 괘념할 만큼 지각이 없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의 청지기는 아무것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고, 모든 일에서 화를 발합니다. 여러분, 이것이 과연 정당한 일이겠습니까? 아마도 그 온유한 주인은 그의 격노한 청지기의 어깨에 손을 얹고서 이렇게 이야기할 것입니다. “자네는 이것도 못 견디겠나? 나는 이보다 훨씬 더한 것도 다 견뎠네”.


여러분, 우리 주님은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셨습니다(히12:3). 그런데 과연 우리가 스스로 지쳐버려야 되겠습니까? 우리 스스로 거만하게 행동한다면, 어떻게 온유하신 예수님의 청지기들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절대로 높은 말을 타지도 말고, 하나님의 맡기신 유산에 대해 주인으로서 처신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지 않으실 것이요, 따라서 우리가 교만에 빠지면 충성을 다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한 주인의 돈으로 이렇게저렇게 투기하기 시작해도 청지기로서의 임무를 다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자신의 돈이라면 물쓰듯해도 되겠지만, 우리 주님의 돈은 그럴 수 없습니다. 주께서 오시기까지 이리저리 투기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로 운영하는 것이 우리의 책무인 것입니다. 저는 제 주인의 복음으로 투기를 할 생각은 없습니다. 제 자신의 깊은 생각으로나, 철학자들과 더불어 높이 날아오름으로써 복음을 개선시키리라는 따위의 생각은 꿈도 꾸지 않습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의도를 갖고서라도 절대로 복음 이외의 다른 것은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희한한 가르침을 줌으로써 굉장히 열광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해도, 저는 그런 생각 자체를 혐오할 것입니다. 진리를 억누름으로써 부흥을 일으킨다는 것은 그야말로 속이는 행위요, 경건한 사기(詐欺)입니다. 그런 식의 처신을 통해서 주님께 유익을 끼치리라고 생각하지만 주님은 결코 그런 유익은 원치 않으시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주신 달란트를 정직하게 운용하고, 공정한 거래로 얻는 이익을 주께 드리는 것이 우리의 임무인 것입니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청지기이지 주인이 아닙니다. 그러니 우리의 이름으로가 아니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거래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임무는 신앙을 마음대로 꾸며내는 것이 아니라, 신앙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선포마저도 우리 자신의 권위로 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주님의 권위에 기초하여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과 더불어 일하는 일꾼들입니다. 그러니 우리 나름대로 독자적으로 행동하려 하지 말고, 언제나 마음을 낮추고 우리 주님과 친밀함을 유지하여야 할 것입니다.


2. 또한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자로 처신해도 우리의 맡은 소임을 저버릴 수가 있습니다.

청지기가 농군이 좋아하는 것이나 여자 사환의 변덕스런 마음을 살펴서 그대로 일을 처리하면, 모든 것이 잘못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속해서 본부에 의지해야 합니다. 주님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항상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항상 올바르고 참된 모습을 견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우리가 의식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곧 한쪽으로 왜곡되어 버리기 십상일 것입니다. 이 사람을 즐겁게 하느라 주춤하거나, 저 사람을 만족시켜 주느라 앞으로 달려가거나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좋아한다고 해도 한 발자국도 옮겨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든 사람들을 다 기쁘게 하려는 생각을 갖고 처신하고 있다면, 정말 굉장한 임무를 스스로 지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아첨을 해서는 안 됩니다. 분명한 말을 해야 합니다. 양심이 인정할 그런 말들 말입니다. 사람을 기쁘게 하면, 그것은 우리 주님을 불쾌하게 하는 일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스스로 꾸며내어 하는 일에 성공을 거두게 되면, 그것은 우리의 영원한 복리에 치명적인 악이 될 것입니다.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 해서도 안 될 것이고, 우리들 자신을 기쁘게 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아무리 어려워 보여도 우리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보다는 더 쉬운 일입니다. 오 청지기 여러분,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3. 게으르게 빈둥거리며 논다면, 우리가 충성된 청지기들일 수가 없을 것입니다.

열심히 일하는 일꾼이 아니면, 진정한 청지기가 아닙니다. 우리야말로 왕의 집에서 근면의 모범을 보여야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담 클라크(Adam Clarke: 1762?-1832)의 다음과 같은 명언을 좋아합니다. “일로 너 자신을 죽이고, 그 다음 너 자신이 다시 살아나도록 기도하라”. 우리가 게으름을 피우면, 하나님께나 사람에게나 절대로 우리의 임무를 행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진지하시고 성실해야 합니다. 무언가 삶의 목표를 갖고 있는 사람답게 사십시오. 설교를 삶의 최고의 행위로 아는 사람답게 설교하시기 바랍니다. 그 일이야말로 하늘 아래에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순전히 사기(詐欺)이상 아무것도 아닙니다. 만일 여러분이 주님의 지침을 성실하게 시행하지 않으면, 주께서 그의 포도원을 다른 사람에게 주실 것입니다. 주님은 자기를 위하여 하는 일을 하찮은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사람을 절대로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실 것이니 말입니다.


4. 주인의 재산을 잘못 운용해도, 우리에게 맡겨진 소임을 절대로 감당하는 것일 수가 없습니다.

우리에게 일정한 분량의 달란트와 힘과 영향력이 맡겨져 있으며, 우리는 이 맡겨진 돈을 한 가지 목적을 위해 사용해야 합니다. 그 목적은 바로 주인의 존귀와 영광을 증진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구해야 합니다. 사람들 누구나 자기의 정치적인 입장을 위해서 자신의 영향력을 최고로 발휘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어떠한 사역자도 교회에서의 자기 위치를 이용하여 자기 분파의 목적을 증진시킬 자유는 없습니다. 또한 그 어떠한 사역자도 자기의 능력이나 직분을 이용해서 그저 대중을 즐겁게 해 주기만 할 권한은 없습니다. 주께서는 영혼 구원을 위하여 우리를 보내셨습니다. 바로 그 목적을 이루는 모든 일이 우리의 사명의 범주에 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목적을 직접적으로 또한 분명하게 이루는 것이 우리의 주된 사역인 것입니다. 복음을 전함으로써 제 자신이 할 일을 한다면, 그것만해도 할 일이 충분히 많은 것입니다.


주인의 재산을 잘못 운영하게 되면, 횡령죄를 지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헌신이 참된 것이라면 여러분이 지닌 모든 재능은 주님의 것이요, 따라서 그것들을 여러분의 주님이 아닌 다른 존재를 위하여 사용한다면, 중죄(重罪)를 면치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을 위해 재산을 챙겨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제이, 제삼의 목표나 목적을 가져서도 안 됩니다. “오직 예수”가 여러분의 인생 전체의 동기요 모토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주인의 유익을 위하여 헌신하는 것이 청지기의 의무입니다. 그런데 다른 목표에 힘쓰는 나머지 이것을 잊는다면, 그 목표가 아무리 칭찬할 만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 사람은 충성된 청지기가 아닙니다. 우리는 두 가지 목표를 추구할 만큼 활력이 넘치지도 않습니다. 한 가지 목표에 전념해야 합니다. “나는 오직 한 가지 일만을 한다”라고 말하기를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상세한 내용들에 대해 마지막 감사가 이루어질 날이 올 것입니다. 그러니 청지기인 우리들은 우리의 삶의 구체적인 내용 하나하나에 대해서 주께서 살피실 것을 항상 직시해야 하는 것입니다.


5. 청지기로서 충성을 다하려면, 가족의 구성원 하나하나에 대해서, 또한 재산 하나하나에 대해서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교인들을 개별적으로 관찰하는 일, 그리고 더 나아가서 한 사람 한 사람마다 일일이 방문하는 일을 시행해야 할 것입니다. 만일 제 앞에 병이 여러 개 있는데, 소방 펌프를 가지고 장난치듯 물을 마구 쏟아 부으면 물이 병에 제대로 채워지겠습니까? 병에 물을 확실히 채우려면, 병을 하나씩 들고 조심스럽게 물을 부어 넣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양떼들을 하나씩 일일이 보살펴야 하는 것입니다. 개별적인 대화나 상담을 통해서는 물론, 개개인을 위한 기도를 통해서 그렇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교구 전체를 방문하며, 교인들을 심방하되, 아무도 잊지 말고, 아무도 실망하게 하지 말고, 주 앞에서 모든 사람들을 우리 마음에 담아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난한 자들이나 변덕스러운 자들이나, 실망에 빠져 있는 자들을 특별히 생각하도록 합시다. 우리의 그런 보살핌이 울타리가 되어 모든 양떼들을 보호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6. 한 가지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있습니다. 충성을 다하기 위해서는, 절대로 악을 묵인해서는 안 됩니다.

덕의 균형을 배우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쥐를 죽이기 위해서 곳간을 다 불태워 버리는 것입니다. 화가 나서 여러분 자신이 악을 없애는 것보다 오히려 악을 더 조장하는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린 아기를 조용히 하게 하라는 말에 유모는 즉시 그 아기를 창문 바깥으로 내던져 버립니다. 유모는 주의 말에 순종했고, 결국 그 아기를 조용히 하게 만들었습니다만, 그 유모는 결코 칭찬받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죄를 책망하지 않고 그냥 지나가도록 해서는 안 됩니다. 개인적인 모든 일에서는 양보하십시오. 하지만 진리와 거룩이 관련되는 사안에 대해서는 확고해야 합니다. 우리는 신실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엘리의 죄와 형벌을 초래하게 됩니다. 부자들과 영향력 있는 자들에게 정직하십시오. 흔들리며 불안정한 자들에게는 확고하십시오. 이들의 피가 우리에게 요구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7. 어떤 이들은 주께서 오신다는 것을 잊어버림으로써 그리스도의 청지기로서의 소임을 소홀히 하게 됩니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속삭입니다. ‘주께서 아직 오지 않으실 것이다. 아직도 성취되어야 할 예언들이 무수히 많고, 또한 지극히 평범한 안목으로 보면 그가 아예 오시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니 우리가 특별히 서둘러야 할 필요가 없다’.

여러분, ‘나의 주께서 그의 오심을 연기하신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불충한 종입니다. 시간이 짧습니다. 우리 주님이 문간에 서 계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온 힘을 다해서 일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시선을 그 결산에 다 고정시키고 매시간 최선을 다하여 일하여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사역에 대한 기록 때문에 부끄러움을 당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청지기직에 충성을 다하는 이 일을 위하여 많이 기도하여야 합니다. 불충에 대한 형벌이 무시무시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모든 충성된 청지기들에게 심히 큰 상급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전진할 수밖에 없습니다. 희생이 아무리 크다 해도 뒤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기억하십시오. 누구도 억지로 여러분을 목사가 되게 만든 사람은 없습니다. 여러분이 이 거룩한 직분에 강제로 들어온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자신이 선택해서 지금 여기 있는 것입니다. 젊은 시절, 이 거룩한 직분을 사모하였고, 이 직분을 감당하는 데에서 행복을 찾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여러분, 끝까지 충성하실 수 있겠습니까? 주의 잔을 함께 마시며, 주께서 받으신 세례를 함께 받으실 수 있겠습니까? 이제 나아와 어린 양께서 가는 곳마다 어디든지 따라가는 자들의 반열에 들기를 바랍니다.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라는 주님의 말씀을 듣는다면, 그것이야말로 복일 것입니다.